〈26〉한라에서 백두 찬연한 풍경이야기 담는 남광진 사진작가
〈26〉한라에서 백두 찬연한 풍경이야기 담는 남광진 사진작가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4.06.0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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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악사진 시작
산 풍경 인생살이와 닮아
비워냄과 기다림의 시간
사진은 삶의 특별한 선물
남광진 사진작가가 지리산 고리봉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남광진 사진작가가 지리산 고리봉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아름다움은 늘 카메라 렌즈에 갇혀 있다. 산에 마음을 빼앗겨 걸음은 늘 그곳으로 향한다. 예정되어 있듯 이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산의 사계절에 마음을 묻고 산지 오래다. 때가 되면 저절로 피고 저절로 지는 산에서는 흔들림도, 욕심도 없이 변하면서도 변함없는 절대 선(善)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산이 거기 있어 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마음에 담고 살면서 우선순위로 산에 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한라에서 백두의 풍경이야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 늘 행복한 남광진 사진작가를 지난달 20일 북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현대 모비스를 정년퇴직하고 산의 풍경이야기를 담기 위해 산에 오른다. 

“퇴직 후 가족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 10년 동안은 사진 촬영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선포했더니 가족들은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하고 싶은 것을 맘껏 즐기라며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산의 풍경을 흠모하고 산악 사진에 매료된 그는 2006년 회갑과 퇴직 기념으로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첫 번째 전시 후 10년이 지난 2017년 칠순에 즈음하여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너머 자신의 생각을 넣어 검정하듯 관람하는 것이 약간의 두려움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산 사진 촬영 작업은 우리 인생살이와 닮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고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일 때 원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며 “발품을 많이 팔아야 좋은 기회가 오고 그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 산악 사진의 진리인 것을 깨닫는다”고 사진을 인생에 비유했다. 

■풍경이야기는 삶의 흔적

“여러 가지 장비로 결코 가볍지 않은 배낭의 무게와 사연이 많은 산행길이지만 산은 오를 때  마다 반겨주고 건강과 즐거움을 안겨준다”며 “꽃이 피면 질 때까지, 가을이면 단풍잎이 떨어질 때까지, 겨울에는 영하의 혹한에도 긴 기다림을 인내하며 카메라와 함께 보낸 흔적을 풍경이야기에 담는다”며 결함 없는 작품의 소중한 가치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남보다 좋은 작품을 찍겠다는 것은 욕심이다”면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의 섭리는 거역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즐기면서 산 사진에 임하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일년에 만족한 작품 4점씩, 10년에 40점이 되면 전시, 출판, 영상으로 발표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한 삶을 살자는 것이 목표다.

“활동하는 많은 사진작가들이 있지만 6회의 전시회를 가진 사람이 드물다”며 “여섯 번의 전시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만족한 삶”이라며 도움을 아끼지 않은 가족들에게 감사했다.

“물론 힘들게 촬영한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할 때 안타깝고 마음 아프지만 그것 또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후배들은 깊은 내공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남작가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며 놀라워하지만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움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아웅다웅 살아도 한 세월 지나면 부질없다”면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자였던 적이 없지만 단 한 번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 본 적 없다”며 질리도록 어지러워 멀어지고 싶은 세상과 달리 삶의 깊이가 산을 닮았다.

■고마운 아내

30-40년 전에는 동네 사진관에서 흑백 카메라를 대여해 주고 사진을 찍어 반납하면 인하해주던 시절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진관을 드나들 일이 잦았던 그는 마음 맞는 몇 명과 동호회를 결성했고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사진작가가 된 계기다. 24시간을 스탠바이하고 기상이 가장 좋을 때 카메라 셔터를 눌러 작품을 만들지만 기상악화로 사진을 못 찍는 경우가 80% 이상이라고 한다.

“새해 일출은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사진에 담는 것은 더욱 어려워 발품을 많이 팔고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수 있다”며 힘겨운 과정을 토로했다.

“홍도에서 날아가는 갈매기를 촬영하려고 새만 보고 좇아가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면서 “뛰어가다 직감으로 멈추었는데 한걸음만 더 떼었어도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며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필사적으로 몰입했던 때를 반추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우중입산’을 해야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며 냉철한 사유 속에 뜨겁게 폭발하는 산악 사진작가의 혼을 흔근하게 적셨다.

“설악산에서는 오직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16일을 표류했고 최장기간은 한 달 정도 표류한 적 있다”며 “산은 천의 얼굴이기 때문에 인내하고 대기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좋은 작품은 그만큼 정성과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접근이 용이한 전북 진안의 마이산, 대둔산, 덕유산을 좋아하며 덕유산 설경이 가장 아름다워 겨울에는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김없이 찾는 곳이다.

남광진 사진작가가 찍은 덕유산의 철쭉. 
남광진 사진작가의 작품 '5월의 꽃 덕유산의 철쭉'

“백두산의 맑은 천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기 드물지만 한 번의 걸음으로 맑은 천지를 담을 수 있어 행복했다”며 그때의 환희에 젖었다.

“산은 주변 환경만 달라질 뿐 늘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면서 “배움을 주는 좋은 스승이라 산에 오르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사진은 특별하고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며 “사용하던 카메라가 파손되어 다시 구입해야 했는데 아내가 어려운 형편에 꼭 구입해야 되겠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며칠 후 내가 살던 연립주택이 700만원 하던 시절에 신문지에 천만 원을 싸서 카메라를 구입하라고 내밀었다”고 한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모았을지 그것을 주는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서둘러 서울로 가서 카메라를 샀다”고 무심히 말했지만 뭉클한 마음이 소용돌이 치고 있음을 어림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진촬영차 집을 비운다고 하면 큰 산처럼 품어주는 마음 깊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면서 “내 사진은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아내의 순박한 믿음으로 탄생되었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가 큰 버팀목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인생의 특별한 선물

남 작가에게 사진은 인생을 즐기는 도구다. “해외의 산도 여러 차례 가봤지만 웅장하기만 할뿐 우리나라 산처럼 아기자기하고 계절마다 아름다움으로 물들인 산은 드물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작품이 될 만한 사진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명징하게 직조된 풍광과 마주 해도 특별하게 가슴이 뛴다기보다 덤덤하고 처연하게 자신의 일을 한다. 누구나 보는 비슷한 풍경에서 차별화된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그만의 특기다. 산에 올라 마음에 드는 사진이 안 나왔을 때는 비싼 보약 한 첩 먹었다며 다음을 기약하는 희망과 인내를 산처럼 쌓아 놓아 실망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빠른 판단을 해서 그 속에 내 역할이 없으면 복기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주는 은은한 긍정과 비움도 산을 통해 얻은 진리다. 

“사진은 여러 장르가 있으며 같은 산 사진을 촬영해도 관점이 다르고 내가 보고, 느낀 감정을 관람객이 그대로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촬영한다”고 말했다.

“최고의 순간을 포착하여 찰나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을 때 희열을 느끼며 밝음과 어둠의 중간을 경험치로 180도의 넓은 각도를 시야에 담는 것이 특기”라고 촬영기법을 설명했다.

“일출 30분 전부터 여명이 시작되는데 그때부터 촬영 포인트에 셋팅을 해서 이슬이 마르기 전에 작업이 끝나야 한다”며 좋은 사진은 무리수가 따름을 시사했다. 

동료 작가들로부터 산신령이라 불리는 그는 여건이 되면 울산문화예술회관 전관을 빌려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올해 78세가 된 남 작가는 “풍경이야기로 세상을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며 “사진이 아니더라도 고유문화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는 나라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늘, 땅, 사물 삼박자가 맞아야 좋은 작품이 되는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며 사진의 완성도에 대한 강한 집념을 깊이 새기고 있었다. ‘한 편의 시를 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이 되어서야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시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듯 사진도 마찬가지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은 세상을 두루 여행하라고 열린 바다로 조각배를 밀어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남 작가에게 사진은 인생의 특별한 선물이 되어 심장을 뛰게 한다. 산악 사진으로 인생을 활짝 꽃 피우는 남광진 사진작가의 아름다운 풍경이야기가 삶의 소중한 흔적으로 남길 바란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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