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찬양자와 뉴라이트
정치적 음모,
역사 왜곡과 정체성 비틀기
언뜻 들으면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라는 말은 당연해 보인다. 그가 초대 대통령이었고 건국이라는 말이 썩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건국, 건국절, 건국 운동, 건국 과정 등 용어는 단순히 학문적 정치적 주장을 넘어 보수와 진보, 보수 내부, 민족주의자와 뉴라이트 간의 격렬한 이념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가치와 제도를 퇴행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승만 대통령의 평가는 호불호와 역사관의 차이, 그리고 사실 인지의 정도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한편에서는 “통일국가 건설을 저해하고 민주주의 발달을 억압한 시대착오적 독재자”로, 다른 한편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이자 한민족의 독립과 번영의 기초를 다진 국부”로. 더 구체적으로 보면 비판자들은 이승만을 ‘권력욕에 눈먼 미국의 앞잡이’ ‘무책임하고 잔인한 인물’ ‘정치적 악한’으로 묘사하고, 분단 책임, 친일파 중용, 독립운동가 탄압, 헌정 유린, 부정부패, 양민학살 등을 실책으로 지적한다. 이에 반해 숭배자들은 이승만을 ‘외교의 신’ ‘한국의 워싱턴’ ‘대한민국의 국부, 아시아의 지도자, 20세기 영웅’으로 칭송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도입, 농지 개혁, 교육 개혁, 한미방위 조약 등을 업적으로 치켜세운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에는 나름의 장점과 약점이 있다. 그러나 균형감을 잃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신뢰가 떨어진다.
이승만의 평가와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은 교묘하게 얽혀 있다. 1948년 이전의 이승만과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친일적’ 뉴라이트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하지만 1948년 이후의 이승만과 그의 찬양자 및 뉴라이트는 반공과 독재의 품에서 화학적으로 결합했다. 그런 점에서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과 뉴라이트의 ‘건국절’은 진화된 ‘야합’인 셈이다. 그들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왜 북한은 ‘국가’ 수립이라 하느냐? 라며 색깔을 덧씌운다. 그리고 건국절 주장이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친일을 미화”하려 한다는 공격에 대응해서는 1919년에서 1948년을 ‘건국 과정’으로 보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습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에도 반영되어있다. 최근 뉴라이트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뉴라이트가 역사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그러나 역사전쟁은 늘 그렇듯 간단치가 않다. 더구나 사실과 논리와 역사관이 오류로 가득한 주장을 시민이 쉽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저간의 다툼 속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그러나 주목받지 못한 점을 짚어둔다.
첫째, 1919년에서 1948년까지, 즉 1919년 대한민국의 독립선언 및 임시정부(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수립, 1945년 해방, 1948년 대한민국의 정부(New Government) 수립, 그리고 유엔과 미국의 승인 과정에서 우리의 지도자들과 미국 및 유엔은 ‘건국(Nation Building)’이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역사적, 논리적, 현실적, 그리고 국제법적으로 해당 사항이 없다는 의미다. 건국 관련 주장들이 ‘궤변’에 불과하다고 비판받는 까닭이다.
둘째, 이승만이 해방 직전 미국 정부에 사용한 공식 직함은 ‘충칭 망명 한국임시정부의 워싱턴 한국위원부 공식 대표’였다. 그는 이 직함으로 미국의 극동국장, 국무장관, 그리고 대통령에게 여러 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과 대일전 참전, 전후 처리 과정 및 관련 국제기구 참여를 요청했다. 1945년 7월 21일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호소하면서 “전후 불가피하게 국제평화를 깨뜨리고 러시아와 한국의 우호적 관계를 해치게 할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한국에서의 내전(civil war) 가능성을 제거하고, 공동의 적 일본에 맞선 대규모 싸움에서 한국인이 몫을 다할 기회를 달라”고 썼다. 미국은 한국임시정부가 “한국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당시 한국인의 대표로서 간주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이승만의 요청을 거부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은 한국임시정부 승인 외교의 논리적 연장선에서 어떻게 ‘정부(National Government)’를 수립하고, 군정권을 이양받고, 정부를 승인받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여곡절 끝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그 정부를 12월 12일에는 유엔이, 1949년 1월 1일에는 미국이 공식 승인함으로써 마침내 대한민국은 독립국(international person)이 되었다.
요컨대 ‘건국 대통령’ ‘1948년 건국’ ‘독립운동이 건국 운동’ 등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 이승만에게는 건국 개념 자체가 없었다. 1948년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의 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저들은 억지 주장을 노골적으로 편다. 혹시 그 목적이 “한국은 독립운동가들이 건설한 국가가 아니다... 식민지 시기에 성장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해서 건설하였다”라는 뉴라이트의 인식을 공식화 제도화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기우(杞憂)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