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태의 숲 이야기 〈5〉
김민태의 숲 이야기 〈5〉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4.09.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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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한 몸 되고픈 억새의 꿈
김민태 시인·숲해설가
김민태 시인·숲해설가

■갈대와 억새

억새는 말 그대로 억센 새에서 억새가 되었다. 줄여서 새라고도 하는데 대부분의 억새를 닮은 이름 끝에는 새라는 말을 붙인다. 대중가요의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에 나오는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참억새다. 으악새는 억새의 철원지방 사투리다. 갈대의 순정도 사실 억새의 순정인데 작사자가 참억새를 잘못 알고 썼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갈대보다 참억새가 아름답고 흰 빛깔이어서 서정적인 이미지가 갈대보다 훨씬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억새의 종류는 참억새, 얼룩억새, 가는잎억새, 물억새, 털개억새, 개억새, 억새아제비 등 17종류가 있다. 억새의 꽃말은 은퇴, 세력, 억세다 등이다.

참억새는 한반도 전역에서 자라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키는 1~2m다. 줄기는 원기둥(빨대) 모양이고 약간 굵다. 잎은 길이 40~70cm의 줄 모양으로 너비는 1~2cm이며, 끝 부위는 갈수록 뾰족하고 까슬까슬하다. 가을에 줄기 끝에서 산방꽃차례를 이루어 작은 꽃이삭이 빽빽이 달린다. 

벼는 동아시아 지역의 중심 식물로 신성하게 여겨져 온 식물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참억새의 지위(지금은 거의 그 지위가 사라졌지만)는 옛적에는 벼와 동등한 취급을 받아 마을마다 새 터를 관리하는 장소가 있었다. 왜냐하면 참억새로 지붕을 이었기 때문이다. 줄기는 단단하여 농촌 부잣집에서는 집의 지붕을 교체할 때 참억새 줄기를 엮어서 지붕을 이었다. 짚으로 이은 지붕은 1년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억새 지붕은 3~5년 정도 버틴다.

참억새
참억새

■가을의 주인공 참억새

우리나라 가을의 모습을 단풍 다음으로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 참억새다. 바람에 흔들리는 참억새 이삭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의 하나다. 억새가 있어 가을바람은 매우 중요하다. 억새는 바람에 실어 꽃가루를 나르기 때문이다.

참억새가 수술과 암술을 내밀며 꽃을 피우면 가지런히 모여 있던 꽃이삭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이렇게 해서 바람을 받기 쉽게 만들고 자신의 꽃가루를 바람에 실어 옮기는 한편 바람을 타고 온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기도 한다. 꽃이 지면 퍼져 있던 참억새의 이삭은 닫히고, 다시 가지런해진다. 바람에 의해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함이다. 씨앗이 익는 동안 능선의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분다. 씨앗이 익으면 억새는 다시 한 번 이삭을 사방으로 펼친다. 이번에는 바람에 태워 씨앗을 날려 보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바람에 맡겨 씨앗 퍼트리기를 마치면 억새는 가을이 끝남과 동시에 시든다. 그러나 규산질을 다량으로 함유한 참억새는 줄기가 단단해서 시들어도 꼿꼿한 자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강추위 속에서도 참억새는 뿌리에 새로운 싹을 준비한다. 봄을 기다리며 새싹은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다. 혹독한 겨울의 산 능선에서 참억새의 새싹은 정열의 붉은 색을 지니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꼿꼿이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그저 숭고할 따름이다. 산자락이나 밭둑에서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자연스럽게 하늘거리는 참억새 밭을 역광으로 보면, 투명하게 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모습으로 보이다 풍성하면서도 수더분한 모습으로 참억새는 여지없는 가을잔치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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