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낙화에도 뜻이 있듯 세상에 온 이유가 봉사인 손경숙 이사장
〈32〉낙화에도 뜻이 있듯 세상에 온 이유가 봉사인 손경숙 이사장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4.09.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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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의 식사가 있고
기대어 쉴 곳이 되어
따뜻한 행복을 느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해바라기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함께 하는 사람들’ 손경숙 이사장.
해바라기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함께 하는 사람들’ 손경숙 이사장.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아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의 일부다.

그는 부와 명예 등 사회적 성공보다 웃음, 존경, 사랑, 찬사, 아름다움, 행복을 성공이라 일컫는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지금의 세태와는 대비되고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한다. 

이 시에서 말한 삶의 태도로 해바라기처럼 한 곳만 바라보며 환하게 노란 정열을 불태우는  사회복지법인 ‘함께 하는 사람들’ 손경숙 이사장을 지난 29일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은 가을이 오는 길이라고 귀띔하듯 더 높고 파랗게 채색되고 있었다. 잠자리 떼의 비행이 자유로운 소공원에는 식사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쓸쓸한 삶을 달래는 모습이 현실보다 흐릿한 흑백사진에 투영되었다.

중구 소재 사회복지법인 ‘함께하는 사람들’에서 만난 그는 시에서 말한 성공을 이룬 사람처럼 편안하고 소탈했다.

“나는 봉사자가 아니라 남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외면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취하할 일도 아니라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드러내지 않아도 눈길이 가는 야생화를 닮았다.

중구에는 무료급식소가 11곳 있다. 그 중 ‘태화 경로식당’은 하루에 120-15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한다. 

“좋은 인연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촉촉해지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어야 인생이 인생다워지고 즐거우며 쓸쓸한 삶이 가득 채워진다”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부연했다. 좋은 인연으로 신뢰를 쌓고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은 성공의 조건을 갖춘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과 예정된 필연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날이면 으레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며 “못 오면 사는 게 얼마나 바쁘고 힘들면 못 올까 생각하고 오면 반갑게 맞이하라고 했다”며 “기다리는 마음은 또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싶은 마음에 직접 꽃을 사서 달아 드리곤 한다”며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다독이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 되었다. 

“마음을 헤아려 동참해주는 봉사자들에게 깊이 감사하다”며 “저 분들이 있어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부강해졌다”면서 “어르신들은 조금 일찍 태어나 세월을 잘못 만난 탓에 고생만 했으니 그만한 대접을 받아도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손 내밀어 주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너른 품을 지녔다. 

그는 끼니를 굶다시피 하는 노숙자들에게 결핍된 자극의 양만큼 채워주기 위해 마음은 늘 그곳에 머물러 있다.

지인들은 “노숙자들에게 미친 너를 어떻게 구해 낼 수 있겠냐”고 안타까워하지만 “다 잘 살고 싶고, 행복 하고 싶고, 존경받고 싶지만 그런 삶이 아니어서 너무 안타깝다”며 오히려 쌀 한 포대만 기증하라고 부탁한다“고 했다. 그 말에 지인들은 황당하기도 하고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큰 뜻에 존경심이 들어 흔쾌히 쌀을 기부했다.

울산 중구 무료급식소 ‘태화 경로식당’앞 소공원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울산 중구 무료급식소 ‘태화 경로식당’앞 소공원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노숙자들에게 하루 중 한 끼가 될 소중한 식량을 받은 기쁨은 내가 배불리 먹은 것 보다 더 든든하다”며 작고 소중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인한 실직자와 노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경실련을 주축으로 울산지역의 시민단체들과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3개 종단이 합심하여 ‘울산실업극복센터’를 개설했다.

중앙실업극복운동본부로부터 지원되는 생계비 지원 외에도 많은 실직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과 의료지원 등이 절실했다.

지역 종교단체와 지역민들의 헌신적 참여와 지원으로 2년간 한시적 운영을 마치고 센터는 업무를 종료하고 해산했다.

그러나 주민등록 말소 상태로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병원에 입원 또는 치료 중인 환자들과 차가운 겨울 한뎃잠을 자면서 견뎌야 하는 노숙인들을 외면한 채 센터를 접을 수는 없어 급식을 포함한 도시락 지원과 의료지원 사업, 한글학교 등을 계속 운영하게 되었다.

“기업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한 결과”라며 “기업이나 개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지원을 약속하고 운영에도 흔쾌히 동참해 주었다”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도움주신 분들을 상기시켰다. “지역 사찰에서는 노숙인들의 점심을 준비할 수 있는 쌀을 지속적으로 보내주기도 했다“면서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도움의 손길이 하나로 모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날만 새면 “어떻게 살까요”라며 긴 한숨을 내 쉬는 어르신들을 보며 “내 앞에 온 것을 좋은 인연이라 생각하며 보듬고 살자”면서 내 삶은 그들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기댈 곳 없는 어르신들이 잠시 기대어 쉴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꽉 찬 하루를 보내며 지칠 만도 했지만 모질게 내공을 쌓아왔기에 단단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가야 하는 진취적인 뚝심이 지금까지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침이면 직립보행이 가능해진 손자가 버린 유모차에 삶의 하중을 실어 힘겨운 하루를 밀어내는 어르신들이 바람 같은 안부를 물으며 급식관 앞에 모여든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친구도 만나고 한 끼 식사도 해결할 수 있는 ‘태화 경로식당’으로 오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린 그들의 시간은 일방적이고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무심하다.

■쌀을 구하러 가는 길

잘 닦여진 신작로보다 푸서리 길이 더 많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들이 많다.

한 번은 아래층 급식관에서 인터폰이 울려 받았는데 쌀이 2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박한 목소리였다. 2포면 하루 분량이다. 내일 중으로 쌀을 구해 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이미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여러 차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을 내밀 수는 없었다. 고민을 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사찰의 스님이 생각나 무거운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스님은 몸이 안 좋아 일찍 쉬러 들어가셨다고 했다. 차마 스님을 뵙게 해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눈이 흐려져 가시거리가 아득하기만 했다. 매일 아침이면 한뎃잠을 잔 노숙인들이 한 끼 식사가 있고 마음의 의지처가 되어줄 ‘목련의 집’으로 몰려올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왔다. 별이 초롱하고 달이 시리게 맑은 날이면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 때 일이 떠오른다며 “어려울 때마다 기적처럼 해결되어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과 함께 여섯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학비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밝고 꿈 많았던 소녀가 변화된 환경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며 “담임선생님에 이어 수학, 과학 선생님까지 학비를 대납 해주시고 늘 격려해주셨다”고 가슴에 품은 고마움을 전했다. 

서러움과 고마움으로 점철된 그 때를 떠올리며 마음에 내린 씨앗에 또 다른 인연이 도래해 고마움을 실천하고 있다.

“먼 후일 그들의 가슴에도 행여 행복을 피워내는 세 잎 클로버 파란 새움이 돋으면 맑은 물로 가꾸어 필요한 이웃과 나누며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학생들의 앞날을 응원했다.

■오른쪽 눈 실명

몇 년 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좋지 않은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데 오른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응급실로 갔지만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실명했다는 말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갑자기 나에게 닥친 불행으로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고, 그 일이 내 삶을 살찌우고 주변을 유익하게 한다면 잘 사는게 아닐까 싶어 후회 없이 한 생 잘 살고 가리라 마음먹었다”고 했다.

꽃이 피고 이울 듯 고개 떨구며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와 인연이 닿은 이유를 되새기며 헛헛한 가슴을 달래본다.

그의 따뜻한 성정은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삶이 고달픈 사람들에게 언제나 베풀고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이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중구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올해부터 함월문학상을 신규로 제정하여 문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내 밑에 송곳이 여럿 있어야 내가 가는 길이 더 올바르다”며 “내 앞에 온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그가 곱게 내려앉은 노을처럼 아름다웠다.

세상을 밝히는 견고한 사다리가 되어 주기 위해 한 곳만 바라보고 살았던 지난한 여정에서 긴장했던 삶의 중심을 벗어나 마음 열어 활짝 웃어보길 바란다. 온 가슴을 알차게 채우며 여물어가는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향한 정념의 사리가 그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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