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다시 불붙은 울산 등 비수도권 그린벨트 개발
[이슈 진단] 다시 불붙은 울산 등 비수도권 그린벨트 개발
  • 정두은 기자
  • 승인 2024.10.18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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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규제 20년 만에 변화 물꼬
대폭적 규제 완화...개발 관심 재점화

1·2등급 대체지 확보 실효성 논란에
비수도권 “제도 개선 필요” 한목소리
영호남 8개 시도지사들이 지난 7월 8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 대정부 성명서를 체결했다. 성명서에는 울산시가 줄곧 요구해온 그린벨트 해제 요건 완화 등이 담겼다.
영호남 8개 시도지사들이 지난 7월 8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 대정부 성명서를 체결했다. 성명서에는 울산시가 줄곧 요구해온 그린벨트 해제 요건 완화 등이 담겼다.

그간 ‘신성 불가침’으로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올해 들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정부가 올해 2월 울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그린벨트로 묶인 땅을 풀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담은 토지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다. 

이에 따라 울산 등 비수도권에서는 해제 가능 총량과 무관하게 그린벨트를 풀 수 있고, 필요에 따라 환경평가 1‧2등급지의 해제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환경 보존과 더불어 대체지 마련의 낮은 실효성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규제 완화로 개발 본격화

개발제한구역, 일명 그린벨트 제도는 반세기가 넘는 동안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수많은 조정이 이뤄졌다. 

특히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린벨트 조정을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제한’보다는 주민 민원 해소와 도시 용지 공급을 위한 ‘유연한 해제’로 정책이 바뀌었다.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고 녹지를 보호하기 위해 1971년 1월 수도권을 시작으로 도입된 그린벨트는 전 국토의 5.4%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울산권, 부산권, 대구권 등 7개 광역도시권 내 3793㎢가 남아 있다. 국토 면적의 3.8%다. 

지정된 지 반세기를 넘어선 그린벨트 정책이 올해 본격적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해 7월 비수도권 시·도지사가 직접 해제할 수 있는 그린벨트 규모를 30만 ㎡ 이하에서 100만 ㎡ 미만으로 확대한 데 이어 올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그린벨트 대폭 해제를 발표했다.

규제 완화로 인해 국가 및 지역전략사업으로 승인을 받으면, 지자체가 보유한 그린벨트 해제 총량을 소진하지 않고서도 녹지를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보존 가치가 높은 환경등급 1·2등급지도 대체지 마련 등 조건을 충족하면 해제가 가능하다.

이번 정부의 그린벨트 정책 변화는 2001~2003년 7개 중소도시 그린벨트가 전면 해제된 이후 20년 만의 대대적 변화다. 

그린벨트 규제 완화는 그린벨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방 소멸’, ‘인구 절벽’이 화두가 된 시대와 상황 변화에 맞게 그린벨트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정책을 조정해 지방이 첨단산업 육성과 균형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동안 비수도권 지자체장들은 기업 유치를 위해 그린벨트 규제 개선을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해 왔다.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총량 면적이 있지만 굵직한 현안사업 같은 것을 하고 나면 해제 총량이 소진돼 첨단산업단지 조성 자체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2등급 대체지 확보 ‘관건’

국토부가 지난 4월 개정한 ‘광역도시계획수립 지침’ 및 ‘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을 위한 도시‧군관리계획 변경안 수립지침’에 따르면 지역전략사업으로 선정되면, 사업 수행 시 그린벨트 해제 총량을 예외로 인정받는다. 

특히 보존 가치가 높은 환경평가 1·2등급지는 원칙적으로 그린벨트 해제가 허용되지 않았지만, 국가·지역전략사업으로 추진하는 경우 그린벨트 신규 대체지 지정을 조건으로 해제가 허용된다.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선 지역전략사업 지정과 함께 해제될 구역과 동일 면적의 대체지 제시가 필수요건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서 예외를 인정할 지역전략사업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하겠다고 했다. 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신청부터 중도위 심의까지 1년 이내에 완료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보존 등급이 높아 원칙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도 필요하다면 해제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역개발에 물꼬를 터 줄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전략사업 발굴에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촘촘한 후속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울산시는 우선 해제 가능 총량과 상관없는 지역전략사업으로 북울산역세권 개발사업 등 5개 사업을 지난 5월 국토부에 신청했다. 

문제는 대체지 확보에 대한 실효성이다. 지난해 기준 울산권 그린벨트의 경우 전제 면적 268㎢ 중 81%가 1·2등급지에 해당한다. 창원·대구·대전권 등도 1·2등급지가 78~88%에 이른다. 

결국 비수도권 지자체 대부분이 그린벨트 해제 개발 시 대체지를 확보해야 하는 셈인데, 이 경우 대체지 선정 과정에서 토지소유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나아가 대체지 선정 자체가 어려워 아예 신규 개발사업 계획을 철회하는 등 제도 개선의 의미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울산시 개발제한구역 위치도
울산시 개발제한구역 위치도

1·2등급지 해제 후 대체지를 찾아 그린벨트로 지정하려면 사실상 사유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공유지에 신규로 지정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가능한 대체지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영·호남 8개 시도지사들은 지난 7월 8일 그린벨트 지역전략사업 대체지 지정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김두겸 시장은 “국가 전략사업 선정을 위해서는 환경평가 1·2등급 면적만큼의 대체지 지정이 필요한데, 대체지에 편입되는 토지소유자 동의서를 의무화하고 있어 지역 현안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당초 얻고자 했던 성과를 실제 거둘 수 있느냐 하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 유치가 안 되거나 설령 기업이 들어서도 기대한 만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나지 않고 난개발만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지자체 주도로 이뤄진 대규모 사업들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경우가 적잖았다.

■“환경 등급 재조정 나서야”

지자체가 보유한 해제 가능 총량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제 가능 총량은 2008년 설정된 이후 지금까지 변동 없이 유지 중인데, 총량을 80% 가까이 사용한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아직 절반도 소화하지 못한 곳들도 있다.

해제 가능 총량은 2004~2007년 ‘2020년 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권역별로 부여됐다. 전국 총량은 531.6㎢이며, 이 중 울산권은 38.1㎢를 부여받았다.

국토부와 울산시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2021년 기준 울산권은 14.9㎢(38.7%)를 소진해 23㎢ 가량의 해제 가능 총량을 남겨두고 있다. 이는 전국 7개 권역의 총량 소진율 중 최저 수준이다. 

최고 소진율을 보인 부산권은 80.5㎢ 중 64.4㎢(79.9%)를 이미 사용했고, 수도권은 78.3%, 광주권은 70.7%, 대구권은 63%로 뒤를 이었다. 대전권(40.9%)은 40%선을 넘었다.

울산권 소진율이 저조한 것은 그만큼 개발 가용지가 많지 않은 탓이다. 울산은 그린벨트의 81%가 환경평가 등급에서 해제 협의가 어려운 상위 1·2등급 임야다. 

‘해제 가능’을 뜻하는 3~5등급 임야도 소규모로 산재하거나 구역 정형화가 어려운 한계 등으로 인해 해제가 쉽지 않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울산은 산지가 많고 1·2등급지 비중도 넓다”며 “전국적으로 총량을 계속 늘여주는 것보다 환경등급을 지자체 상황에 맞춰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도시발전 장애물, 울산권 GB

대기업에 다니다 2년 전 퇴직한 A씨. 그는 최근 울산을 떠나 인근 경주에 전원주택을 지어 정착했다. 울산은 땅값이 비싸고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갖추기가 너무 까다롭다는 게 이유다. A씨 같은 퇴직자에게 원하는 택지를 공급하지 못한 이유 중에는 울산시의 정책 부재 못지 않게 그린벨트 탓도 크다.

그린벨트는 도심의 무분별한 난개발과 팽창을 막고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도시 허파 구실을 하지만, 울산의 그린벨트는 다른 시·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울산 그린벨트는 울산시 전체면적(1061.2㎢)의 4분의 1가량에 이른다. 1962년 공업지구(울산·온산 2개공단) 지정 이후 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자 정부는 1972년 당시 기초단체인 울산시와 울주군 경계를 너비 5㎞가량의 거대한 녹지띠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통상 그린벨트는 도심 주변부를 따라 설정돼 도시를 둘러싸는 형태로 묶이는데, 유독 울산은 도심을 가로질러 공간을 분절하는 형태여서 도시발전의 장애물로 전락했다. 

지금도 울산 도심을 그린벨트가 에워싸고 있어 근교의 야트막한 민둥산조차 개발할 수 없다.

이에 김두겸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울산권 그린벨트 해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시장은 “울산은 1962년 공업지구 지정과 1997년 광역시 승격 등 두 번의 큰 전환점을 통해 도약했지만, 지금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며 “두 번의 전환점에 버금가는 해법이 필요한데, 그 해법을 그린벨트 해제에서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시장은 “무작정 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수조사를 통해 환경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지역은 확실히 보존하고, 보존가치가 없는 곳은 해제해 산업 및 주거단지를 조성하겠다”며 “그린벨트 해제는 일자리 창출과 정주여건 개선 등 산업수도의 옛 명성을 되찾는 모든 청사진의 시작과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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