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종갓집’ 옛 명성 어디로…여전히 썰렁한 원도심
[이슈 진단] ‘종갓집’ 옛 명성 어디로…여전히 썰렁한 원도심
  • 정두은 기자
  • 승인 2024.10.22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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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상권 중심지이던 중구, 
1990년대 이후 인구 감소
6년여 걸친 도시재생 불구
원도심엔 ‘임대 광고’ 즐비

새로운 시도는 계속 이어져
빈 점포 예술공장으로 변신
휴양·도시개발 전환기 맞아
한산한 문화의 거리
한산한 문화의 거리

조선시대 동헌과 객사가 있던 ‘종갓집’ 중구는 울산에서 옛 모습을 비교적 간직한 곳이다. 지금도 ‘울산다움’이 느껴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중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곳이 중구 중앙동 일대다. 1990년대까지 ‘시내’라고 불리며 지역 발전과 상권을 주도했다.

택시를 타고 “시내 갑시다”라고 하면 운전기사 열이면 열 모두 이곳에 내려 줬다. 평일 저녁이면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업체에서 퇴근한 근로자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으로 가득 찼고, 주말 길거리는 친구, 가족 등 나들이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울산역이 지금의 남구 삼산동 태화강역으로 이전하고, 1997년 광역시 승격에 따른 행정구역 개편과 대형 백화점이 연달아 삼산동에 들어서면서 원도심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방치된 건물과 버려진 폐가 등이 늘어나면서 슬럼화가 진행됐다. 상권은 쇠퇴해 과거의 영광만 추억하는 처지가 됐다. 1985년 3만457명이었던 중앙동 인구는 2010년에는 절반 이하인 1만3093명으로 줄었다. 

■원도심 곳곳 점포 임대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못 받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변할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 했죠.”

중구 성남동119안전센터에서 뉴코아아울렛성남점까지 약 500m에 걸쳐 조성된 ‘젊음의 거리’와 청년 예술인들이 입주한 ‘문화의 거리’는 예전 저녁 시간대만 되면 밀려드는 인파에 몸을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은 번화가였다.

하지만 지난 16일 취재진이 찾은 이들 거리는 대체로 한산한 편이었다.

넓고 좁은 골목이 줄줄이 연결된 거리마다 사람들 발길이 뜸했다.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관람객은 없고 작품만 덩그러니 있었다. 

반면, 눈길을 돌릴 때마다 마주친 것은 ‘임대’ 문구다. 

연이어 붙어 있는 상가, 마주 보고 있는 가게에 함께 임대 광고가 붙은 경우도 많았고, 3층짜리 건물 통째 임대로 나온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상인들은 “장사를 하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몇 년째 임대가 붙은 곳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에 따르면 원도심의 소형 상가 공실률은 10.8%(올해 2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9%(2022년 1분기), 집합상가 공실률은 25.8%(올해 2분기)에 이른다.

화랑을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사람이 안 오니 버티지 못해 빈 점포가 늘고 있다”며 “거리에 활기를 불어주게끔 젊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문화 행사를 많이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도심 쇠락은 중구 인구 감소와 흐름을 같이 한다.

1980년대 중구는 남구와 함께 울산을 키워온 중심이었으나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진장동·효문동·송정동·양정동을 신설된 북구에 넘겨줬다. 이후에도 도시가 남구와 북구를 중심으로 확장하면서 중구 인구는 빠져나갔다.

최근 10년가량을 비교해도 중구는 울산 5개 구·군 중 인구 감소 폭이 가장 크다. 2015년 24만4481명에서 올해 8월 기준 20만7362명으로 15.2%가 줄었다.

■원도심 ‘도시재생 바람’

“중구의 중심이 중앙동이다 보니 여기를 살려야 지역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구는 원도심 도시재생사업 추진의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6년 국토부의 도시재생 지원 대상에 선정된 ‘울산, 중구로다(中具路多)’ 도시재생사업은 2016년부터 2022년 6월까지 6년 6개월간 원도심 일대에서 이뤄졌다. 

총사업비 182억 원이 투입된 이 사업은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방문객을 늘릴 방책으로 거점시설물 조성 및 보행환경 개선에 주안점을 뒀다. 

특히 주요 상권이었던 ‘젊음의 거리’와 ‘문화의 거리’ 일대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낡은 건물 옥상에는 휴게 공간을 조성해 지역 문화인들의 공연장으로 꾸몄다. 젊음의 거리 등에는 조형물과 조명, 음향, 통신 장비를 설치해 클럽형 야시장을 조성했다.

노점상을 철거한 자리에는 7080 복고풍 테마거리인 맨발의 청춘길을 조성해 볼거리를 추가했다.

중앙길은 보행로와 차도를 분리해 보행 환경을 개선했다. 원도심 상권을 태화강까지 확대하고자 강변과 연결된 나들문, 조망시설, 보행데크 등도 정비했다. 쉼터 공간 등 공원을 곳곳에 조성했다.

중구 관계자는 “원도심 전반의 보행 환경이 개선되고, 골목길이 깨끗해지고, 공원이 생겨났다”며 “이를 통해 지역상권 활성화와 유동인구 증가 등을 꾀했다”고 말했다.

중구가 2021년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절반 가까이 도시재생사업 후 원도심 방문 횟수가 늘어났다. 절반 이상은 원도심 이용 만족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울산시도 원도심 살리기에 적극적이다. 원도심 내 낡은 곳곳을 리모델링해 빈 점포는 청년들을 위한 창작공간과 갤러리, 화실, 공연장 등 청년 예술인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지난 6월 5일 문화의 거리에 문을 연 ‘예술공장 성남’이 대표적이다. 2개동 1~4층 규모인 이곳에는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개별 작업실 뿐 아니라 다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동 공간이 마련됐다.  

시는 이들 공간을 통해 청년 예술가들이 생각을 공유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정기 전시회, 공연 등을 제공하고 있다.

황방산 맨발 등산로
황방산 맨발 등산로

■문화예술 저변 확대 

원도심 문화의 거리에 가보면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예상외로 꽤 많다. 

예술인들이 행사 기획 단계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 풍토 조성 탓이다.

지난해 예술인들이 공방·작업실 등을 개방해 문화 체험을 제공한 오픈하우스 행사는 152회, 자생적 문화행사는 290회 열렸다. 

올해는 문화의 거리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상설전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첫째 주에는 문화의 거리 오색마켓’, 셋째 주에는 문화의 거리 상인회와 함께하는 ‘예술작당 문화마켓’, 마지막 주에는 ‘문화예술업종 오픈하우스’가 열린다.

민·관 협력 문화행사도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시립미술관 연계 원도심 갤러리 도장찍기 여행(스탬프투어), 문화점빵, 2024 현대미술제, 태화강마두희축제, 성남동 골목정원 여행, 시립미술관 가는 길, 열린 광장 등이 대표적이다.

중구는 문화의 거리에 다양한 문화예술업종 유치로 원도심을 활성화하고자 지난해 3월 울산시립미술관 앞 장춘로와 보세거리 일부 구간을 문화의 거리로 추가 지정했다. 

지난해 9월에는 문화예술업종 종사자에게 임차료·행사비 지원을 위해 ‘울산시 중구 문화의 거리 조성 지원조례 시행규칙’을 개정, 문화예술업종 행사비 지원 비율을 기존 60%에서 80%로 확대했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예술인 간의 교류 증진과 지역 문화·예술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자 중구와 울산시립미술관, 문화예술업종 각 분과 대표 등 10명으로 결성한 ‘문화예술업종 운영자협의회’를 발족했다. 

운영자협의회는 문화의 거리에 입주한 60여 문화예술업종 관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한다. 각종 지원시책 홍보,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문화행사 참여도 이끌고 있다.

김정규 문화예술업종 운영자협의회 회장은 “매달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업종 운영자협의회 회의를 열어 문화의 거리 현안과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링’ 콘셉트 등 시설 확충

중구는 도심 속 태화강, 접근성이 좋은 입화산, 황방산을 보유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쉬고, 즐길 거리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머물고, 살고 싶은 도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대표 행사인 ‘태화강마두희축제’만 보더라도 축제 장소를 기존 원도심에서 인근 태화강까지 늘리고 수상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면서 방문객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축제가 열린 사흘간(6월 14∼16일) 30만6000명 정도가 다녀갔다. 이는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맨발 걷기’ 열풍이 불면서 황톳길로 유명한 황방산 등산로에는 지난해 100만 명이 방문했다.

중구는 이런 분위기를 몰아 도심 속에 위치한 입화산을 중심으로 관광 자원을 늘리고 있다.

인구 증가를 위한 도시개발사업도 잇따라 추진 중이다.

다운동 일대가 지난해 ‘도심융합특구’로 지정되면서 개발제한구역 18만9027㎡가 해제되고 내년부터 2034년까지 탄소중립 특화 연구집적단지와 기후테크산업 개발·실증 클러스터, 산학연 융합·혁신 기지 등이 조성된다.

장현동 일대는 토지주택공사가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비 1467억 원을 투입해 장현도시첨단산업단지(31만6968㎡)를 개발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자동차 관련 첨단산업, 혁신도시 입주 기관 연관 기업이 들어선다.

중구 관계자는 “이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신산업 기업들이 들어서고 휴양지가 확충돼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며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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