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고뚜리
용고뚜리
  • 강경수
  • 승인 2012.08.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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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천하고 요사한 풀, 독이되고 화가 될 뿐
이전에는 담배를 남초(南草)라 불렀다. 천한 풀이라 해서 천초라 하기도 했고, 요초(妖草)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 맛과 중독성이 요사스럽기 때문이었다. 지금에야 금연 움직임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담배 유해론이 대두됐었다.

정조 때 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순암선생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담배는 경전에도 나와 있지 않고 의학본초에도 적혀 있지 않은 요상한 풀”이라고 정의했다. 한 때 그도 담배를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열이 날 때는 맛이 쓰고, 독이 있어 현기증을 일으키며 화기 때문에 담(쓸개)에 치명적”이라 했다.

또 “피고 싶으면 길가는 아무에게 이를 구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심지어 부녀자나 종에게까지 손을 벌리게 되는 상놈의 천초”라 욕했다. 비단 순암선생뿐 아니라 그 시절 많은 선비들이 담배가 남녀와 존비의 유별을 깨뜨리는 ‘천한 풀’이라며 멀리했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담배는 정력을 죽이고 뼈를 무르게 하며 시력과 정신을 약화시키고 결국 목숨을 줄이는 해초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때나 지금이나 담배를 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호품이면서도 중독성 때문이었다.

담배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몰매를 맞을 말이지만 지금도 애연가(실상은 중독자)로 자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담배가 ‘사색의 어머니’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정신노동을 하는 흡연자라면 담배의 그 신통하고 영묘한 마력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이 산만하고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한 개비의 담배로부터 구원을 받은 경험말이다. 어쨋든 끊기는 끊어야 하는 것이 담배지만 옹골차지 못해서인지 단연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담배와의 결별을 몇 차례나 시도했으나 대부분 ‘도루아미타불’이 되는 것이 십상팔구다. 담배 끊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자조적인 넋두리를 했을까.

94세 전 슈미트 서독 수상 줄 담배 문 채 사랑에 빠져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다. 나는 벌써 백번 이상 금연을 했으니까 말이다.” 한 술 더 떠 애연가들은 말한다. 인간의 고독은 철학을 낳는 바탕이 되었고 그 고독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담배라는 것이다.

또 영국의 어느 작가는 파이프는 철학자의 입에서 지혜를 끄집어내고 어리석은 사람의 입을 막는다고 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 치고 자살한 사람은 없다는 골초 사회학자도 있다.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는 “담배는 신사의 정열이며 담배없이 산다는 것은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갈파했다.

 미국의 담배회사나 우리의 담배인삼공사에서는 ‘홍보대사’로 위촉할 인물이지만 비흡연자들에는 ‘시대의 미개인’으로 낙인찍힐 일이다. 나 역시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조차 해본 적이 없는 미개인이지만 애연가들을 위로해 줄 모처럼의 희소식이 있어 소개한다.

헬무트 전 서독 총리의 얘기다. 올해 아흔넷이지만 그는 아직도 건강하고 독일에서 부동의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담배도 2등가라면 서러워할 용고뚜리(골초)다. 그와 담배에 얽인 일화는 지금도 심심찮게 외신을 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담배는 그냥 ‘심심초’가 아니라 항상 손에서 떠나지 않는 지팡이와도 같은 존재다. 줄담배로 유명한 그는 기자회견도 담배를 문 채 할 정도다. 지금도 한 손에는 지팡이를, 또 한 손에는 담배를 쥔 채 공공장소에서 끽연을 한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지만 아무도 그의 흡연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혹시 노망이 들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한번도 금연을 시도해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흔넷의 그가 최근 57년간 비서로 있던 79세의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흡연과 노익장은 무관한성 싶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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