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물들이는 '색의 전령사'
세상을 물들이는 '색의 전령사'
  • 정은영
  • 승인 2013.03.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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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염색가 선 갤러리 이선애씨

‘어느 가을에 풍경’ 입간판에 쓰인 글이 고상하다. 그대로 전해오는 느낌은 코스모스 핀 가을이 생각나고, 무서리 내린 한적한 산자락에서 만난 들국화 향내가 난다. 그리고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러나 지금은 화사한 봄이다. 이번 주말은 벚꽃의 향연이 시작될 것 같다. 벚꽃도 천연 염색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란다. 웅촌 검단에서 정족산과 천성산을 품은 공방을 열고 자연색에 빠진 이선애 천연 염색가이자 선 갤러리 관장(58)을 만났다.

▲ 울주군 웅촌면 검단에서 전통염색을 하고 있는 이선애씨가 전통염색의 가장 기본은 자연의 색을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를 찾아간 날은 하늘이 너무 파랬다. 그러나 공방에 도착해서 보니 천성산 마루 금에 구름이 걸려 있다. 푸른 하늘에 살짝 덧칠하듯 걸쳐진 구름, 자연 풍광이 일품이다. 울산시내에서 출발하기 전, 바쁜가 물었더니 오후 5시쯤 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넉넉하게 오후 4시께 웅촌 검단 그의 공방을 찾아 나섰다.

봄날 치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바람이 멈출 때 마다 그 틈새로 내리 쬐는 햇볕은 오월이다. 예전에는 공방과 갤러리 입구 간판이 ‘내 마음 물들이고’였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가을에 풍경’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검단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선 갤러리는 초봄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의 붉은 노을이 너무 곱다. 꽃샘추위라지만 따뜻한 봄볕이 화단의 꽃 대궁을 밀어 올리느라 분주하다. 선 갤러리로 들어서자 한국화가 한진숙씨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그림 속 홍매가 예쁘게 피었다.

2010년 6월 ‘내 마음 물들이고’ 라는 수필집을 냈던 이선애 관장은 ‘네 마음 물들이고’ 공방의 일부였던 선 갤러리를 지난해 확장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다.

울산시내에서 살다 13년 전 웅촌 운암산 자락에서 작업을 하다 7년 전에 지금의 터로 이사했다. 지난해 초까지 시내에서 출퇴근을 했고 1년 전, 선 갤러리를 새로 지으면서 아예 이곳으로 전부를 옮겨온 이 관장은 갤러리 관장이기 보다 천연 염색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를 만난 2층 천연염색 작품의 전시실은 자연의 색으로 만들어진 한복, 차탁 보, 스카프 등등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여남은 명 여인들이 작품을 보고 있는 바람에 인터뷰는 전시실 옆 공간에서 이뤄졌다. 살짝 전시실 내부를 훔쳐봤다. 작품으로 걸린 여인들의 치마가 곱다. 하늘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공방 다탁에 마주앉았다. 수년전 이곳을 찾았을 때 마당에는 길게 줄이 처져 있었고 자연 염색천이 햇볕을 받아 곱게 물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차량들이 가득하다.

그는 “진짜 가을에 오시면 이 주변은 가을빛에 물든 자연으로 인해 황홀하다”고 한다. 그리고 검단 들판의 황금빛 나락은 정족산 산색과 어울려서 선경이라고 하니 그 때 다시 와볼 생각을 낸다.

지금 선 갤러리 주변 산야는 하루가 다르게 연두 빛으로 채색되고 있다. 봄볕을 쬐던 노인은 “요새 하루는 여름 열흘과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길은 지름길이다. 논두렁 잔디에도 푸른 물이 올랐다.

이 관장은 잡풀도 아름다운 천연 염색의 재료로서 훌륭하다고 했다. 그는 공방에서 마주 뵈는 천성산과 정족산이 천연 염색 재료를 구하는 보물창고라고 했다. 그곳에 가서 마음껏 염색재료를 채집하는 시간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선 갤러리는 다양한 봄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울주군의 관심도 높다. 3년전 선 갤러리 개관이후 현재까지 45회째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또 ‘내 마음 물들이고’공방은 울산시 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진로체험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방학기간을 제외하고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들은 염색은 기본이고 도자기 만들기와 한지를 재료로 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게 된다.

웅촌 검단에 이런 천연 염색 공방이나 갤러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기준점이 한 단계 높아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웅촌 지역에만 80여명의 작가가 공방을 비롯해 화실을 운영하고 있단다.

그가 천연 염색에 매료된 때는 오래 전 이었다고 한다. 대학시절부터 천연염색을 전공했고 33년 전 결혼하고 울산으로 와서 본격적인 천연염색에 빠졌다. 13년째 공방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3년 전 문을 연 선 갤러리는 한국화전을 비롯해 공예전, 도예 전을 선 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지난해 다양한 작품의 전시 설치를 위해 기존 ‘내 마음 물들이고’와 연결한 3층의 선 갤러리 문화관을 지었다. 이곳은 전시공간뿐만이 아니라 여러모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움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내 마음 물들이고’ 공방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것에 대한 내 무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작품이라도 좋다는 생각뿐이니 내 스스로가 자연 색에는 까막눈임을 인정해야 한다. 내 수준은 쉽게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작품의 평가 역시 제로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제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 자리를 맴돌 뿐이다.

그는 천연염색의 가장 기본은 자연의 색을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어른들의 시각으로 자연의 색을 재현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그들의 눈높이에서 자연의 색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촘촘한 바느질이 돋보인다. 천연염색공예가 이선애 관장은 근래 들어 눈코 뜰 사이가 없이 바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 갤러리를 찾아오고, 이 관장은 이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기도 하고 차 대접을 하기도 한다.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 천연염색의 바다에 풍덩 소리가 나도록 빠진다고 하니, 누구라도 자연과 마주하면 빠져들게 되나 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언제냐고 물었더니 몇 번이고 주무르기를 계속한 끝에 원하던 색이 나왔을 때라고 했다. 솔방울이나 쑥, 개 모시 풀잎, 애기 똥 풀 등을 비롯해 염색재료 역시 다양하다. 이들을 채집한 이후부터는 마음도 정갈해야 한다. 원하던 색감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정말 누구에게 보여주기도 아까울 만큼 정이 간다고 한다.

울주군 공예협회 회원으로, 울주군 소재 천연 염색 공방으로는 가장 신뢰를 받는다. 이 관장은 “울산시내에서 살 때는 공간적 어려움 등으로 천연 염색에 지장을 받았으나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 그런 불편이 사라져 작가로서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고 말했다.

신 건물인 선 갤러리는 주로 외부 작가들이 전시회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체 3층 건물로 지어진 신 건물은 기존 ‘내 마음 물들이고’의 간판이 있었던 천연 염색공방과 층간 연결을 해서 전체적으로 한 공간 사용이 가능하게 돼 있다.

선 갤러리로 가는 길은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다 웅촌면 사무소 가기 전 오른편으로 난 오르막길을 선택하면 가장 빠른 코스다. 검단리는 청동기 시대 집단 거주지인 검단 유적으로 유명하다. 검단리 유적은 울산지역의 대표적 환호형 집단 주거지다. 선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서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를 눈이 시리게 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그는 이곳이 검단유적으로 인해 개발이 늦어서 그나마 지금의 자연이 보존되고 있는 것이 참 좋다고 했다. 난 고향은 두동면이지만 검단을 택한 이유는 교통이 편리한 점도 있다고 했다. 부산과 울산, 통도사까지가 승용차로 30여분이면 가능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찾는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도 괜찮다. 혼자라면 선 갤러리 쉼터에서 따뜻한 차를 마신 후 마음 내키는 대로 전시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느긋하게 선 갤러리를 찾는다면 천성산 바람과 함께 진한 감동을 가슴에 안고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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