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의 성지' 문수사
'문수보살의 성지' 문수사
  • 최경호
  • 승인 2013.03.27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00여 년 전 신라 원성왕 때 연회국사가 창건
▲ 울산을 대표하는 명산 문수산 8부 능선쯤에 위치하고 있는 문수사, 긴 겨울의 침묵을 깨듯 휴일을 맞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울산을 대표하는 산 중의 산, 문수산 중턱에는 1300여 년 전 신라 원성왕 때 연회국사에 의해 창건된 전통사찰 지정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 말사 문수사가 있다.

문수사를 품고 있는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시대엔 영축산이라 불렸다. 조선조에 와서 문수산이라 불렸으며, 일명 청량산으로 불리어지는 산이지만 모두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문수산은 문수보살이 사는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왔고,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여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문수사는 울산을 대표하는 명산인 문수산(해발 600m) 중턱 8부 능선쯤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문수사에는 긴 겨울의 침묵을 깨듯 휴일을 맞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문수사, 문수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여러 갈래 길이 있다.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옷을 갈아입는 문수산! 정상에서 느끼는 기운보다 문수사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참으로 더 높기만 하다.

문수사로 올라가는 길목엔 영해마을이 있는데 길가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수산 정상을 다녀온 사람들과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길가에 쭉 늘어선 차들이 마치 대답이라도 할 듯 즐비하게 서 있다.

간간히 논두렁에 둘러앉아 봄향기 가득한 쑥을 캐는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기도 하고, 어느 식당가에서 마련해 둔 마당에서 문수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족구에 한참이다. 굽이굽이 산길 따라 사람들의 발길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산 중턱부분에 주차장이 있다. 그곳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다시 한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문수사가 한눈에 보인다.

문수사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 없다. 범종각 밑이 경내로 드나드는 유일한 문이다.범종루에는 1987년, 롯데 신격호 회장의 시주로 조성한 범종이 봉안되었다.

'대웅전' 은 1982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시주로 신축되었다고 한다.

울산의 문수보살 성지(聖地)

우리나라에서 '문수보살 성지(聖地)'를 꼽는다면 단연 '오대산'을 지목하지만 삼국유사에 의하면 "울산의 문수성지"가 생긴 다음과 같은 유래를 전하고 있어 흥미롭게 생각해본다.

신라 원성왕 때 연회라는 스님이 토굴에 은거하면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있는 연꽃이 피어 지는 날이 없었다.원성왕이 이 사연을 듣고 스님을 국사로 봉하려고 하자 이를 번거로이 여긴 스님은 짐을 싸서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문수보살과 변재처녀를 만나 인연을 어길수 없음을 깨닫고 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스님은 문수보살을 만났던 곳에 암자를 지어 '문수암'이라고 했다.

이러한 유래로 인해 '문수사'가 자리한 산 역시 "문수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 산에는 문수보살이 항상 머문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 문수사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 없다. 범종각 밑이 경내로 드나드는 유일한 문이다. 범종루에는 1987년, 롯데 신격호 회장의 시주로 조성한 범종이 봉안되었다.

따라서 울산의 문수성지로 알려지게 된 문수사에는 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마침, 공양간에는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사람들로 길게 한 줄로 섰다. 법당에서 절을 올리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무엇보다 시래깃국의 구수한 맛이 피곤하던 몸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 땀을 흘린 뒤의 상쾌한 바람보다 오히려 밥 한 그릇의 따뜻함이 더 간절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지었다는 대웅전은 모습부터가 아름답다. 1982년에 신축된 대웅전은 밑에 돌을 3단으로 바친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는데 사방 돌계단에 새겨넣은 연꽃 무늬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자리는 옛날부터 대웅전이 있었던 자리였다.

문수사 극락전을 돌아 오르면 미륵전이 있다. 커다란 암벽 위에 '미륵 부처님'이 계신다. 형체가 너무 파괴되어 그 원형을 유추하는 것마저 힘들 정도이다. 당초 이 돌부처는 청송사탑 인근에 있던 것을 청하스님이 발견해 이곳으로 가져온 것이다.

특히 이 암벽 위, 문댐돌에 동전을 붙여 놓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하여 많은 사람이 동전을 붙이곤 하였지만 법당을 신축하면서 문댐돌은 앞쪽 일부분만 남아져 있다. 바위에 시커먼 부분이 동전을 붙이기 위해 동전을 문댐돌 바닥에 비빈 흔적이다.

그리고 ‘삼성각’에는 각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소원들을 빌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끊이질 않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니 역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의 지맥이 울산의 문수산으로 이어져, 국내최고의 사찰을 품고 있는 영축산의 기운을 이어받은 문수산이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도 한국 최고의 재벌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마 범종루를 시주하지 않았나 짐작이 간다.

울산의 정상에 자리를 차지한 문수사. 풍수지리로 보아도 문수사는 명당에 자리라 하여 날씨가 쌀쌀해도 추위를 잊게 하는 강력한 기감을 느낄 수 있다.

문수사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의 풍경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야말로 아름답다. 늘 산사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게 푸르다. 푸르다 못해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다. 아마도 산사를 찾은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 완연한 봄이 오지 않았지만 산사에도 분명 봄의 소리는 들린다. 산사에서 잠시 머물다 문수산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산사를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가벼운 걸음으로 산사를 내려왔다. 아직도 군데군데 쑥과 냉이를 캐는 사람들이 많다. 마을 길가 군데군데 문수산 미나리를 다듬어 팔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산사를 내려오는 길, 동동주에 파전 한 접시가 추억을 만들어준다. 이른 봄의 향이 가득한 문수사에는 지금 꿈을 향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