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정은영기자
  • 승인 2013.03.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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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가로수 다방-

1차선 7번 국도가 울산의 중심도로였던 시대는 울산 공단이 들어서기 이전이다. 지난해 6월1일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가진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공업센터 기공식을 가진 울산은 급속한 산업화가 시작됐다. 날개를 단 업종은 단연 다방이었다.

번영로 복산동 제일교회 입구에서 진입해 우정동 삼거리로 연결되는 일차선 일방통행이 돼버린 7번국도, 그 길과 시계탑이 만나는 사거리를 중심으로 과거 상업은행이 있었고 울산상공회의소가 있었다. 한때는 울산의 중심이었고 그 덕분에 울산에서는 이곳이 다방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70년대에서 80년대 말까지 약 20여 년 간 이 곳에는 50여 곳의 다방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다방이 있었지만 구 상업은행 맞은 편 2층에 자리한 가로수 다방이 점잖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중앙시장 골목에는 월성다방이 있었고 성남동 구 대우증권이 있던 주변에 모아 음악 감상실이 젊은이들의 휴게문화를 이끌었다. 시계탑 사거리를 중심으로 석촌다방, 가로수다방, 건너편의 종로다방, 고궁다방들도 원 도심 문화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필자도 인근의 모아 음악 감상실을 들락거리면서 가끔은 들렀던 다방이 가로수였다. 정년을 넘긴 노년의 신사들이 멋쟁이 지팡이를 짚고 오는 모습들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화려한 체크 남방에 체크 바지, 멜빵을 걸친 노인들이 두세 명씩 와서는 햇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던 모습들이 지금은 추억이 됐다.

다방은 늘 담배 연기로 안개를 피웠고 그 사이를 분주한 아가씨들이 커피를 날랐다. 오전 10시 이전에는 모닝커피라고 해서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우고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단골들이었다. 다방에서도 단골들에게는 특별한 대우를 했었다.

마담의 단골 중심 영업수단이 효과를 발휘해선지는 몰라도 원 도심에서 유명세를 날렸던 가로수 다방은 늘 자리가 부족했다. 마담도 지성인으로 알려졌고 아가씨들도 손님들에게 차를 얻어 마시기 위해 치근대지 않아서 좋았던 몇 안 돼는 수준급 다방으로 그 시절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보다도 가로수 다방은 위치가 주변 다방들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상업은행을 마주하는 7번국도 사거리 코너 2층이라는 이점으로 다방에 들어서면 갑갑하지 않아서 오래 있어도 지루함이 덜했다.

기억하건데 언젠가 한 번 찾은 가로수 다방에서 식어버린 커피 잔을 놓고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사람이 있었다. 다방 아가씨의 말로는 증권사에 자주 오면서 들리는 손님인데 오늘은 손해를 본 것 같다고 귀띔 했다. 손님의 얼굴을 보고 오늘의 증권시세를 가늠할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대단한 관상가가 따로 없었다.

70년대 당시는 30분이나 1시간 마다 전화기를 들고 증권거래소에서 불러주는 시세결과를 칠판에 분필로 썼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증권 객장은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다음 시세를 보기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그 때는 시간마다 다시 쓰는 시세 판이 투자자를 울리고 웃게 했다. 상승 종목을 산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하락종목을 샀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객장을 빠져나와 인근의 가로수 다방에서 나머지 시간을 때웠던 시절, 가로수 다방은 마음 상한 이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가로수 다방은 지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언제쯤 없어진지도 주변사람들조차 몰랐다. 건물도 새로 지어졌고 창가에 앉아 연인을 기다리던 청춘들도, 담배를 피우던 노신사들도 흔적이 없다.

옥교동 시계탑 사거리를 중심으로 사방은 지난해 중구청이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면서 말끔해졌다. 전주도 지하화 했고 보도블록도 교체됐다. 울산다리에서 울산초등까지 길이 문화의 중심거리가 되면서 과거의 흔적들은 쓰레기처럼 치워졌다.

사실은 치워진 그것이 문화의 거리 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대는 새로 문을 연 다방 스타일 커피 점들이 다행히 과거의 기억들을 추억으로 들춰내게 한다. 서양 커피 전문점들의 커피 한잔 값이 5천원에서 7천원이라면 여기서는 대부분이 3천5백 원을 넘지 않는다.

엊그제 오후 구 상업은행 앞에서 맞은편 2층의 가로수 다방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전통 차 전문점 간판이 달려 있고 창에는 몇 가지 차의 이름들이 옛날처럼 1층 사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추억은 오래된 것일수록 빛난다는 말이 있다. 벌써 20년 쯤 전의 기억들이 농익은 추억이 돼서 거리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근래 들어 7080 세대들의 추억 속에 있는 다방들은 한곳, 두 곳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흔적조차 지워지고 없다. 가로수 다방도 마찬가지다. 옛날이 그리워서, 그 때 만났던 얼굴들이 생각이 나서 찾아가 보면 이미 도로가 돼 있거나 높은 건물이 낯설다.

울산 4개 구와 1개군 가운데 가장 노인인구가 많은 울주군은 이달 내내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추억의 다방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달 말까지 계속되는 추억의 다방은 범서 천상, 옛날 범서중학교가 있었던 곳과 지금의 범서초등학교 사이에 있는 울주문화예술회관내 휴게실이다. 추억의 다방은 커피처럼 주문한 음악을 헤드폰을 쓴 DJ가 틀어준다.

한 번 쯤은 찾아갈 볼 만 하다는 것이 벌써 단골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점은 시내에서 다소 먼 것이 흠이지만 찾아가 보면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만큼 잊혔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현재의 삶이 어렵거나 아니면 즐거울 때 새록새록 커피 향처럼 추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가로수 다방 역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명소다. 다른 도시들은 과거 흔적들을 되돌리기 위한 사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빛바랜 간판의 서점들을 복원하는 도시들도 많다.

그러나 다방 하면 퇴폐문화 비슷한 인상들을 갖고 있는 바람에 선뜻 복원하자는 말들이 없다. 이제는 말해도 된다. 다방은 퇴폐문화의 산실이 아니다. 다양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자리했음을 알아야 한다.

연말이면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가는 기금마련 행사도 다방이 대표적이었다. 불우이웃돕기 일일다방은 대학생들의 연말 단골 메뉴였다. 70년대 당시 울산에는 울산공과대학(현, 울산대학교)나 울산공업전문대학(현, 울산과학대학교)밖에 없었다.

이들 대학교 학생들은 학교가 있는 무거동이 아닌 중구 옥교동이나 성남동 다방에서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을 열었다. 자리를 제공한 다방 마담들도 그날은 쉬어야 했는데 아가씨들을 출근시켜 대학생들의 일일찻집을 지원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 옛날이여’이선희의 노래 같지만 복합문화공간으로 추억의 다방은 복원돼야 한다. 가로수 다방을 복원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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