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 트라우마
오르막 트라우마
  • 우진숙
  • 승인 2013.04.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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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진숙 강남교육지원청 행정국장
내가 운전면허증을 딴 것은 1986년 2월이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교직원들이 단체로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단체로 학과시험을 보아 합격을 했고 실기시험에서 한번 낙방하고는 내버려 두었다.

시간은 흘러 학과시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루면 학과시험을 다시 쳐야하기에 나는 얼마 남지 않는 기간에 반드시 면허증을 따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그때 8개월 만삭의 몸이었고 어둔했지만 안간힘을 쓰며 연습한 결과 신기하게도 1종 보통면허 실기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첫째 딸이 태어났고 6년 뒤에는 둘째딸도 태어났다.

그 때는 집에 자가용도 없던 시절이라 그냥 장롱면허증만 들고 있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차를 운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저 만치 멀게만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눈물겨웠는지 아침저녁으로 아이 돌보는 사람과 교대하던 일은 지금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불편은 물론 궂은 날은 고충이 더욱 심했다.

아침에 택시잡기는 과히 전쟁수준이었고 출근 때마다 숨이 차게 뛰어다녔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저 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국가가 나서고 사회의 보육지원시스템도 선진화된 복지국가가 되었다.

이십여 년 전 드디어 집에 자가용은 마련했지만 직접 운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접고 편하게 남의 차 신세를 지며 살았다. 그러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운전대를 잡아야겠다고 맘먹은 것은 불과 10년 전이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또 직장이 바뀌면 카풀도 어려워질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즉시 도로연수를 받았다.

집에 있던 중고차를 연습 삼아 몰기 시작했고 신통하게 배짱도 생겼다. 얼마간은 겁 없이 도로를 달리고, 끼워들고, 자유자재로 운전하며 다녔는데 어느 날 내가 살던 아파트 앞 신호대에서 작은 사고가 생겼다. 빨간 불이 파란 불로 바뀌어 출발하려는데 차가 뒤로 밀리어 뒤에 바짝 붙어 있던 차와 부딪치는 사고였다.

야무진 남편이 내게 가르쳐준 운전수칙이 실수를 범하게 한 것이었다. 약간 오르막에 중립으로 대기하고 있었는데 차가 뒤로 밀리자 순간 기어를 잘못 조작했고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아 뒤에 있던 차를 들이박는 사단이 생겨났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타고 있던 차는 중고라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지만 상대 차는 범퍼가 좀 찌그러졌지만 잘 이해를 해줘서 서로가 좋게 합의를 했다. 그 후로부터 나에겐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가 생겨났던 것이다.

특히 사고가 난 그 장소 그 길은 늘 피해 돌아서 다녔고 어딜 가나 오르막만 보이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고 얼굴과 등에는 식은땀이 송송 맺혔다.

그것도 오르막을 계속해서 올라가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신호등이나 장애물이 있어 멈추어야할 때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다. 시간이 길어지면 그와 같은 증상을 더욱 심하게 느끼게 된다.

나처럼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에게 울산의 도로환경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북부순환도로, 성안 길 외에는 크게 오르막이 없으며 건물주차장 좁은 출입구나 대형마트와 백화점 이용 시 약간 긴장을 하지만 그래도 운전하기에는 편안한 여건이다.

지난달 작은 딸이 부산에 있는 원룸으로 이사를 하는데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 바람에 또 진땀을 뺐다. 언제쯤 이런 트라우마를 지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에는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시골길, 비탈길, 골목길, 둘레길, 올레길, 산길, 들길, 논두렁길, 바닷길,,,,,,, 온갖 종류의 다양한 길들이 있는데 어느 길을 가더라도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살이는 만만치가 않고 모두가 맘먹은 대로 되지도 않는다. 각자 나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본다. 절대 과욕 부리지 말고 반칙하지 말고 남들에게 선행을 베풀며 사는 무장을 해야겠다.

나의 행동과 언행이 타인에게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고 상처주지 않아야겠다. 피하고 싶은 트라우마, 기억하고 싶지 않는 과거, 뇌리에 박힌 깊은 상처는 어디서 어떻게 말끔히 치유할 수 있으려나? (강남교육지원청 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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