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정은영
  • 승인 2013.04.09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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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 엊그제는 태풍에 버금가는 계절성 호우가 남해안 일대에 쏟아졌다. 강원도를 비롯해 중서부 일대는 적설량이 15㎝에 달했다. 남부는 이미 벚꽃이 지는 계절이다. 강원도 산간지방의 상추밭은 눈을 머리에 이고 올 봄을 내내 보내는 중이다. 가지산과 신불산을 비롯한 영남 알프스도 설산이 됐다.

이런 계절을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는 말이 딱 맞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시기에 추위가 함께 몰려왔다. 사람들은 봄 인줄 알았다가 세탁소에 맡겨둔 겨울용 점퍼를 다시 찾아왔다. 계절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울산에서 4월에 눈이 내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배꽃이 설해를 입어서 수확량이 줄면 어떡하나 농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 모든 기상이변은 북극지방이 따뜻해져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엘니뇨현상이다. 이는 극지방의 빙하가 인간의 에너지 사용 과다로 녹아내리면서 나타나는 기상이변이다.

엊그제 호우와 폭설은 북쪽의 차가운 기온이 내려오면서 남쪽의 따뜻한 기온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남쪽지방은 폭우가 내렸고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중서부 지방은 눈이 내린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면서 나타나는 재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래불사춘, 이는 자연 현상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이다. 특히 민간집단과 공공기관 간의 약속은 중하다. 봄 인줄 알았는데 눈이 내려버린 안타까운 이들이 있다. 울주군 청량면 오대·오천 마을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지난 2월27일부터 울산시청 서편 한국은행 울산지점 앞 인도에서 북과 꽹과리를 동원해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이 집회가 이들에게 봄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집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들에게 집회이유를 물었다. 약속이 안 지켜져서 그렇다고 한다. 대답이 오히려 간단해서 미안했다. 울산시가 이주민들에게 이주지역 택지 비를 3.3㎡당 100만원에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만 지키면 당장 집회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대부분이 늙어서 집회를 할 힘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지난 8일 월요일 오후에는 목청 좋은 중년의 아줌마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마을 콩쿠르처럼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몇 곡을 이어서 불렀다. 그러나 한참을 듣다보니 듣는 사람들이 괜히 미안해졌다.

이들이 집회하는 이유는 해당기관의 약속 위반이다. 오대·오천 마을 이주민들은 청량면 율리에 조성되고 있는 택지가 내년 4월 완공되면 좋은 집을 지어 입주 하려고 기다렸는데 분양을 앞두고 택지공급가가 인상돼 버렸다는 것이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살 수 있다는 희망이 택지공급가 상승으로 무너지면서 이들은 집회장소로 나오고 있다.

이주민 가구는 모두 91세대라고 했다. 현재는 몸이 아픈 사람들도 많다. 원래 이 마을은 모기가 많아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지역이다. 시가 당초 살던 땅을 3.3㎡당 100만원에 팔면 이주해 갈 율리 택지도 그렇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중간에 공사주체가 시에서 시도시공사로 바뀌면서 택지 값이 올랐고 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약속을 어긴 측은 아무 말이 없다. 빨리 끝날 줄 알았던 집회도 언제까지 갈지 종잡을 수 없다. 집회 참가 노인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집회가 끝이 나고 주민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양측이 대화에 나서야 하는데 이마저도 신통치가 않다.

집회비용도 바닥이 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점심을 싸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한다. 집회를 시작할 때 며칠은 쇠고기 국밥도 먹었다. 지금은 아낄 수 있는 비용은 아껴야 하기에 점심때가 되면 걱정이다.

그러나 시작한 것이 돼놔서 어쩌지 못하고 하루하루 북과 꽹과리를 치며 간신히 넘기고 있다. 이렇게 가면 결국 이주민들이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참담하다. 울산시가 당초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이들은 절망하게 될 것이다. 집회 시작 때는 관심을 보였던 지방 언론에서도 근래 들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주민들은 집회장인 울산시청 서문 주변에 벚꽃이 핀 걸 보고 봄인 줄 알았는데 영남 알프스에 한겨울처럼 눈이 내렸다는 뉴스에 화들짝 놀랐다. 춘래불사춘이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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