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을 유발한 벌
수치심을 유발한 벌
  • 강경수
  • 승인 2013.05.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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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 중 가장 원천적이고 선행적인 것은 수치심과 공포감이라고 한다. 한때 영화로도 선을 보였던 야생아 인간복귀 스토리는 인간의 수치심을 확인시켜 준 실화다.

1800년 초 파리 근교 숲속에서 열두 셋 쯤 되 보이는 남자아이가 발견됐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행동거지는 영락없이 산짐승인, 야생아였다. 한 젊은 의사가 이 야생아를 인간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12살에 발견돼 마흔까지 살았던 이 야생아는 결국 완전한 인간으로 복귀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성은 회복됐다. 그건 수치심이었다. 많은 실험 끝에 간신히 성과를 본 것이 바로 수치감정의 회복이었다.

옷을 갈아 입히기 위해 바지를 벗기려면 한사코 거절했고, 강제로 벗기려면 눈을 감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건 특별한 교육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자 저절로 수치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 있어 수치심보다 더한 형벌은 없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본능적 집착 때문이다. 옛날 우리 향약에서도 위약자에게 가하는 형벌중 가장 무거운 것이 양반의 경우 마을 한 가운데에 하루종일 서있게 하는 것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해 수치심을 유발하는 벌칙이었다.

그보다 덜한 형벌이 상놈에게 가하는 태형, 바로 공포심 유발이었다. 도 조선시대 무당조합이나 기생학교에서 규약을 어긴 무당이나 기생에게는 한 쪽 유방을 노출시킨 채 종일 서 있게 했다. 부젓가락으로 지지는 낙형은 그보다 한수 아래 벌이었다. 우리 나잇살의 사람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 숙제 안해 온 벌(누범일 경우)로 아랫도리옷을 종종 벗었다.

선생의 경험에서 때리고 겁주는 것보다 벗기는 것이 약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어떤 가학행위 가운데 수치 유발만큼 가혹한 것은 없다.

최근 인권위와 서울행정법원이 예배 중 신도들에게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준 50대 목사에게 징계 권고결정을 내렸다.

이 목사는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던 중 “하와가 사과 2개를 몰래 따 삼켰는데 배속에서 점점 올라와 가슴이 됐다.”며 “여자 가슴이 호떡 뚜껑(가슴 가리개) 2개를 덮고 다니는 것은 죄의 결과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말했다.

또 그보다 앞선 다른 설교에서도 “여자의 치마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발끈한 신도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목사는 “성회롱 의도도, 해당발언을 한 적도 없다”고 발뺌했다.

결국 신도들의 진정과 목사의 맞대응은 ‘목사의 판정패, 여신도들의 성적 수치심 인정’으로 결론이 났다. 여자의 수치심이 바로 여자의 자존심이란 것을 이 목사는 정녕 몰랐던 것이다.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꼭 입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다더니 이번에는 70대 노인네 얘기다. 울산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저 습쓸하다.

최근 울산지법은 9살.11살 여자아이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72세 A모씨에게 벌금 500만원과 40시간 성폭력교육 이수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유죄 선고 판결은 논리적이고 장황한 데 반해 사건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고 간결하다.

길 가던 손녀 또래 초등학생 아이를 양팔로 껴안고 “사랑합니다”와 함께 볼에 입맞춤을 했다는 죄목이다. A씨는 자신의 손녀들에게 하는 식으로 단순 애정표현을 했을뿐, 추행 의사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스킨쉽’에 대해 “피해 아동들이 당황하고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성에 대한 인식이 깨어가는 과정에 있어 A씨의 돌발행위는 강제추행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A씨의 무죄 주장대로 라면 입맞춤을 한 아이들이 철부지이고 그냥 귀여운 손녀와 같아야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초등학교 3.4학년 여학생은 성교육이 필요 없을 만큼 성숙하다.

수치심과 공포감을 터득한 요즘 아이들을 몰랐던 것이 A씨의 유죄이유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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