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을 아십니까
울주군을 아십니까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5.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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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현대인물 (언양읍을 중심으로)
▲ 지난 3월9일 언양 상북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현장을 찾은 강길부 국회의원이 잿더미가 돼버린 신화마을 현장에서 참담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일대를 돌아보고 있다.

울주군의 인물을 두고 특성을 들라면 각계에 걸쳐 출중한 인물이 고르게 났다는 것이다.

그 축소판이 곧 언양의 인물들이다. 이를 테면 군 장성들이나 종교계, 정계의 인물들이 그렇다. 삼남면 출신으로 육군의 4성 장군 이던 신말업은 언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 16기로 군에서 절대적인 신임과 군인으로서의 귀감이 된 인물이다.

또 웅촌 출신으로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오경환(吳景煥)도 해군 4성장군 이었다. 이렇게 한 고을에서 4성 장군이 두 사람이나 나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여기다 세계적 영적지도자인 개신교의 조용기 목사도 언양 출신으로 신말업장군과 언양초등학교 동기생이다.

불교지도자로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성수스님과 오고산 스님이 있다. 정계와 재계 또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일본 신호(神戶)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제2대 국회의원과 참의원, 무임소장관을 지낸 오위영(吳偉泳)은 신탁은행 두취(頭取)를 지냈고 장면 정부시절 민주당 신파로 당시 제2인자 역할을 했던 재사(才士)였다.

제헌 국회의원과 제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수선은 1915년 언양 출신으로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이름을 떨치던 그는 울산의 선거사상 신화를 남긴 인물이다. 자유당 정권이 막바지에 이르러 금권, 강권 선거를 할 때였다.

자유당의 안덕기 후보가 개표초장에 내내 득표를 앞서갔다. 그러나 새벽녘에 이르러 그만 뒤집어 지면서 김수선이 당선되고 말았다. 그 이후 ‘세간에는 잘 나가다가 나자빠진 안덕기를 닳았나’ 하는 속어가 유행되기도 하였다.

깔끔하면서 정직한 정치가로 통했던 최영근도 정계에서 두각을 내보였고 울산의 야당사에 빼놓을 수 없는 정치가였다. 그 아래서 뒷날 최형우, 심완구 등이 정치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최영근은 1922년생으로 두동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중퇴하고 경상남도 도의원, 민주당 경남 도당위원장, 제5대와 6대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정무차관, 제일생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특히 그는 바둑에 취미가 있어 당시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의원들로 울산 의 정해영 의원과 이후락 비서실장과 바둑을 같이 두면서 동향인의 우의를 지켜갔다.

제4대 국회의원 이었던 안덕기도 삼남면 출신이다. 또 이후락의 후광을 입고 제9대 국회의원이 됐던 김원규(金元圭) 전의원도 언양 출신이다. 울산군청 양정계 서기였던 그는 타고난 입담과 유머로 좌중을 휘어잡는 재주가 있어 이후락 비서실장의 부름을 늘 받게 되었고 결국 측근이 되어 울산잠사주식회사 사장이 되었다가 훗날 국회의원이 되었다.

전 국회의원 권기술도 언양 출신이다. 권기술은 언양읍 평리에서 출생했다. 평리경로당에 세워진 송덕비가 말해 주듯이 그는 국회의원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권기술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 했으며 정계에 뛰어들어 민주화추진협의회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제15대, 16대 국회의원으로 재임 중 한나라당 예산결산위원 간사 등을 역임, 지역발전에 공을 남겼다.

언양에서는 법조인물이 많이 나왔다. 제주지검 검사장을 지내고 초대 관세청장을 지낸 이택규(李宅珪)는 두서 출신이다. 1922년생인 그는 전문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한 다음 고등문관 예비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했다.

부산지방검찰청 사법관 시보로 출발하여 청주, 부산, 서울 지검의 부장 검사 등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강직하기로 유명하다는 소문이 많을 뿐 아니라 청렴한 인물이라고 이후락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천거하자 대통령은 “응, 임자의 동향이지”하고 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다음 줄곧 법조인의 길을 걸었던 박원호(朴元鎬)는 1917년 언양에서 출생했다. 일본 중앙대학 전문부 법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법학부를 수료했다. 서울지검, 대구지검, 부산지검의 검사를 거쳐 청주 고검 차장검사, 전주지검 검사장, 대구 지검장, 부산지검장, 대검찰청 사무부장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약하던 이흥록은 언양의 천재라 불리던 인물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41년째 행사인 지난 2011년 5월 삼동면 둔기리 고향마을잔치 행사장에 나와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롯데그룹 제공)

다음은 경제계를 돌아보자.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롯데그룹의 총수 신격호는 삼남면 출신으로 언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 이공과를 졸업했다. 롯데그룹을 창설 후 일본 롯데그룹회장과 한국 롯데그룹회장, 롯데물산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지내고 정부로부터 철탑산업훈장 외 많은 공로훈장을 받았다. 삼도물산의 창업주 김만중도 언양 출신이다.

일본 사카모도 방직회사를 설립하고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서갑호(徐甲虎)는 1915년 언양에서 출생했다. 언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일본으로 가서 사업을 벌였던 그는 한국으로 와서 방림방적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등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민 훈장 목련장, 동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을 5회나 수상했다.

관계와 학계 언론계 문화계는 다음으로 미루고 정계의 인물로 현역 국회의원인 강길부 의원을 소개한다.

건설부 차관 등 건설부의 요직을 다 거치고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힌 강길부 의원은 상북면 향산리 출신이다.향산 초등학교와 상북중학교, 언양농고를 졸업한 토박이 울주인으로 성균관대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했다. 명석한 두뇌로 항상 학업에 선두를 달렸던 강 의원은 보통고시와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후 건설부에서 건설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대통령 건설교통비서관, 한국감정원 원장, 건설교통부차관을 역임한 바 있어 개각이 있을 때마다 늘 입각설에 오르는 언양이 낳은 큰 인물이다. 최종두/(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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