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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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5.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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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의 현대인물
▲ 온양은 신라시대 공수현으로 울산에 속해 있었고 공수현의 소재지가 지금의 남창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이다. 정.관.학계에 인물이 많다.

온양은 신라시대 공수현으로 울산에 속해 있었고 공수현의 소재지가 지금의 남창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이다. 먼저 정계인물을 들어보자. 재헌 국회의원을 지낸 최봉식(崔奉植)은 1892년 온양 출신으로 한학을 수학하고 온양면장을 지낸 다음 재헌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한국의 정치사상 가장 험난한 야당의 고통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면서 수많은 탄압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를 극복해 냈던 야당 투사 최형우(崔炯佑) 전 내무부장관도 서생 출신이다. 최형우 전 장관은 1935년생으로 동국대학교 정치과를 졸업하고 국회 입법조사국에서 잠시 근무한 바 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부단하게 그 길로 걷기 시작하면서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대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격이 강직한 그의 정치 수업기간은 대부분 철권정치가 펼쳐지던 시대였다.

온갖 탄압과 유혹, 고문 등을 겪으면서도 모두 꿋꿋하게 이겨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공을 세웠지만 막상 자신이 평생을 두고 꿈꾸었던 대권은 잡지 못하고 병마로 인해 아쉽게 정계를 떠난 불우한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그가 겪었던 가시밭길 같던 정치행로는 이루다 적을 수 없지만 대략 간추려 보면 전국 범청련 민주수호 투쟁위원회 사무총장, 신민당 제4지구당(울산)위원장, 신민당 중앙당 사무차장, 제8대와 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내무부 장관이 되었다.

최형우 전 장관은 내무부 장관에 그칠 인물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정치적인 위치에 있어도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정치적인 여력을 갖춘 특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병마로 인해 정치를 접어야 한 것은 곧 울산의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울산광역시 승격에도 절대적인 지렛대가 된 인물 이었다. 울산광역시가 승격 될 때 까지 무수히 거쳐야 했던 장애요인을 모두 밀쳐 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김영삼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고 여기에 공약으로 내세운 울산광역시 승격을 김영삼 대통령이 의지를 내보이며 이를 승인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6대와 8대, 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임식(金任植)은 청량면 출신이다. 김임식은 1923년생으로 민주공화당 원내 부총무, 민주공화당 부산 시당 위원장, 국회 재무분과 위원장, 동의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명예정치학 박사였다.

제3대 국회의원을 지낸 안준기는 온양 출신이다. 안준기는 변호사로 부산시 변호사회 회장을 지냈지만 충청북도 진천군수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경제기획원 고위관료를 두루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지낸 차화준은 청량면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진주시장, 울주군수, 강원부지사, 경남부지사를 역임한 다음 국회의원이 된 박진구 전 의원도 온양 출신이다.

울산의 야당인으로 윤희준, 노재규, 김상두 등과 함께 기획의 재사(才士)였던 임종식도 온양 출신이다. 또 통일당의 중앙상위 위원장, 제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재우와 교통부 장관을 지낸 김석관(金錫寬)도 서생면 출신이다. 국제라이온스클럽 지구총재와 울산혈액원장을 지낸 내과 전문의 의학박사 김진수도 서생출신이다.

감사원 국장을 지내고 은혜학원 이사장이었던 이채호는 온양 출신이다. 중앙정보부장의 비서실장과 수산업 협동조합 중앙회 부회장을 지낸 이장우는 서생 출신이다.

법조계의 인물로는 청량면의 이수원(李樹源), 이영기(李英基)가 있다. 이수원은 1914년생으로 부산 제2상업(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다음 재무국, 사세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함으로서 부산지방법원과 부산지검의 사법시보로 있었다.

 

▲ 온양은 신라시대 공수현으로 울산에 속해 있었고 공수현의 소재지가 지금의 남창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이다. 정.관.학계에 인물이 많다.우측 시계방향부터 김석관, 김임식, 김지웅, 김진수, 박정태, 박진구, 이영기, 차화준, 최형우씨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판사,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를 지내고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이영기는 1929년생으로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국학대학 법정학부를 졸업한 다음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부산지검 검사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육군 법무관, 서울 지검 검사, 부산지검 밀양지청장, 대검찰청 수사국 과장 겸 서울지검 검사, 서울지검 부장검사를 역임했다.

학계의 인물로는 온양출신의 이병돈이 있다. 이병돈은 1928년생으로 부산 수산대학과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부산수산대학교 교수, 부산 수산대학원 원장, 한국 해양학회장, 한국 수산학회장, 한국과학 연구원 부설 해양연구소장, 한국 선박해양 연구원 부소장을 역임했다. 정부로부터 동백장을 수훈한 인물이다.

경상남도 교육감 비서실장을 지내고 울산시 교육장을 거쳐 울산광역시 제2대 교육감을 지낸 김지웅 시인도 온양출신이다. 그는 부산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고 동의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은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 서울신문사 편집부장, 경향신문사 편집부국장을 지낸 이규은은 1934년생으로 청량면 출신이다. 다음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역임한 박정태와 한국일보 기자와 한울일보 사장을 거쳐 울산 중앙방송 사장인 박재영은 청량 출신이다.

남달리 후덕한 인간미를 가져 주재기자였다가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역임하게 된 박정태는 야당 성향으로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공으로 최형우 전 장관의 천거를 받았다.

또한 중앙케이블의 박재영도 국제로타리클럽과 적십자운동에 열성을 다했고 기자시절엔 사리에 어긋난 일과 불우한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정을 베풀었던 민완기자였다.최종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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