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유머
성자의 유머
  • 강경수
  • 승인 2013.06.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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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성자라고 하는 예수나 석가모니하면 근엄한 표정이 먼저 떠오른다.

공자 또한 마찬가지다.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고 함부로 대면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예수는 하늘에만 있는 줄 알고,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줄 여긴다. 부처님 또한 지극히 높은 곳에 있는 분처럼 느껴진다.

예수나 석가 이 두 성자는 꿇어 엎드려 빌기만 하는 대상으로 안다. 공자도 이들 못지않은 현자로 숭상받는다. 그러나 이들 성자를 엄숙하게만 생각한다는 것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실제의 행적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기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유머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중 속에서의 예수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고 열두제자들을 곧잘 웃기곤 했다. 공자 또한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자세를 흩트리기 일쑤였고, 유머에 능란했다.

석가모니하면 부처상을 떠올리다 보니 딱딱하고 한없이 지엄한 존재로 알지만 사실은 그렇치 않다. ‘염화시중’의 고사에는 석가모니의 인간미와 유머가 소개돼 있다.

어느날 석가모니는 제자들 앞에 연꽃을 불쑥 내밀었다. 아무도 스승의 진의를 모르고 어리벙벙할 때 ‘가설’ 이라는 제자가 그 뜻을 헤아려 빙그레 웃었다. 숙제를 푼 가섭에게 스승 또한 미소로 치하했다.

연꽃을 사이에 두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고가는 미소를 석가모니는 가르치려했던 것이다. 또 언젠가 욕바가지를 퍼부어도 잠자코 있는 석가모니에게 화가 난 사람이 “왜 대꾸를 않느냐”고 따졌다.

그때서야 석가모니는 이런 유머로 대답했다. “손님들을 위해 차려놓은 음식을 그 손님이 먹지 않으면 별 수 없이 주인이 먹는 수밖에 없지 않소? 당신이 나에게 욕을 해도 내가 듣지 않으면 당신이 차려 놓은 욕을 당신이 먹을 수 밖에...”

위엄과 권위의 상징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신자들을 향해 ‘가치의 위기’를 역설했다. 평소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해온 교황은 “사람들이 투자수익이 떨어지는 것은 비극이라 여기지만, 굶주리고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는 데 대해서는 아무 느낌을 갖지 않는다”며 “우리는 지금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가치의 위기’ 를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오늘날 추위로 얼어죽은 노숙자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꺼리가 되지 않고, 뉴스는 스캔들이요, 스캔들이 곧 뉴스가 되는 세상”이라고 탄식했다.

바로 교황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의 위기론’이다. 세계와 세상사람들을 향한 교황의 통탄은 다시 자신의 카톨릭교회와 신자들의 각성 촉구로 이어진다.

“우리는 찻잔을 앞에 놓고 신학이나 논하는 점잖고 위엄을 떠는 신자들이 돼선 안된다”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용감한 신자가 돼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어 신자들과 함께 자아비판에 나선다. “종종 교회가 바깥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토로다.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 이번 교황의 성베드로 광장 설교는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카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교황이 지적한 ‘가치의 위기’에 공감했으리라 생각된다.

자신의 설교가 너무 비판적이고 교훈적이였다고 판단했던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유의 유머로 말미를 장식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제단앞에서 기도할 때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 때가 있다”며 “ 이 정도의 불충을 아마 주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웃음꽃을 피웠다. 역시 성자는 성자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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