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6.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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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차 다방-
▲ 커피잔에 김이 모락모락 향기처럼 피어나는 그림이 정겹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마는 길게 오는 비다. 중간 중간에 햇볕이 나다가 비가 쏟아지는, 습도가 높아서 생활하는데 불편이 많은 계절이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은 엽차 잔을 날라주는 다방에서 커피나 한잔 하면 좋은데 마땅한 다방이 없을까. 그렇다고 커피 전문점은 아직 낯설다. 곰곰 생각하다 찾아간 곳이 반구동 사거리에서 중구청 방향으로 50m쯤에 있는 ‘역마차 다방’ 이다.

이 다방은 1980년대 초, 중구 반구 2동 지역이 구획정리 되면서 생겨난 다방이다. 그 때는 주변 상가들에 아침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생수를 배달해 주던 아가씨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이 이 다방 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데 최근 볼 수 가 없다. 오토바이에 커피를 담아 배달하던 아가씨들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역마차 다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커피 전문점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정이 커피향처럼 샘 솟는 곳이다.

역마차 다방은 이 자리에서 30년은 버틴 것 같다. 이름이 다른 다방들에 비해 서구적이다. 그래서 잘 알려졌는지도 모른다. ‘역마차 다방’은 이름만 들어도 광활한 미국 서부의 배경들이 눈에 선 하다. 시가(담배)를 입에 문 존 웨인이 말안장에 앉아서 장총을 손질하며 아름다운 석양을 비켜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역마차는 반구동 로터리(현재 사거리)를 중심으로 대여섯 곳의 다방들 가운데서는 변두리에 속했다. 한때 반구동 로터리 주변은 건물마다 다방이 있었다. 영업이 잘 됐던 ‘물레방아’ 다방을 비롯해 몇 곳의 다방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 이름이 독특한 다방이 역마차 다방이다. 그러나 반구동 로터리가 사거리로 교통신호체계가 바뀌면서 다방들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 곳도 없다.

더욱이 지하 다방은 시내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껏 간판을 달고 있는 역마차 다방은 울산에서 보기 드문 지하다방이라서 눈길을 끈다. 커피 전문점들의 시가전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하다방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역마차 다방건물은 새로 수리를 해서인지 깨끗했다. 한때는 이 건물에 토지구획정리조합 등이 입주해 있어서 커피는 그런대로 배달이 많았다. 지금도 역마차 다방은 주변에서 유일한 다방이라 그런지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커피 한잔 값이 커피 전문점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다방이 인기였던 시절, 다방들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아가씨들이 많았다. 역마차 다방도 배달을 많이 나갔다. 그 시절 다방을 했던 사람들은 주인이나 아가씨나 수입은 비슷했다고 한다. 아가씨가 월 150만원을 받을 때 주인도 월수입이 150만원 정도였고 이 정도 임금 수준은 퇴직금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대기업 근로자 보다 높았다고 기억한다.

다방 마다 아가씨들이 많았고 한 다방에서 1개월이나 3개월 일하는 것이 보편화 돼 있어서 다방 아가씨들의 이동은 매우 많았다. 이들은 직업소개소에서 알선하는 다방으로 매월 자리를 옮겨서 일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다방마다 아가씨들을 구하지 못해서 직업소개소에 팁을 주면서 까지 일 잘하는 아가씨를 보내 달라고 애걸복걸 했던 시절은 이제 추억이 됐다.

▲ 반구로터리 방향이다. 한때는 눈앞에 철길 건널목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추억이다.

커피를 배달했던 아가씨들은 어디로 갔을까. 역마차 영화처럼 모두들 노을 지는 석양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을까. 오늘따라 비는 더 많이 추적인다. 근래 들어 다방은 중년을 넘은 노인들의 휴게소 같다.

역마차 다방을 생각하면 한 때 최고 인기를 누렸던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원로가수 명국환이 1950년대에 부른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는 서부영화의 인기와 함께 7080 세대들에게는 영순위 대중가요였다.

‘아리조나 카우보이’가사를 보면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 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안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 달려라 역마차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활한 아메리카 서부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장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 노래를 부르는 맛이다. 지금도 텔레비전의 주말 명화극장을 볼 때가 있다.

그 덕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끔 판매하는 서부영화 3편에 1만원 하는 CD를 구입해서 틈나는 대로 다시 한 번 영화를 본다. 서부영화는 7080세대들에게 청춘시절을 상기시키는 명약이다.

텔레비전이 제대로 보급되기 이전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대단했다. ‘역마차’는 1939년 존 포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존 케러딘, 앤디 데빈, 클레어 트레버, 존 웨인 등이 출연했던 영화다. 당시로서는 빅 히트를 했고 한국에서도 명국환 등이 이 영화의 배경음악을 번안해 인기를 구가했다.

인터넷을 뒤적여서 영화의 줄거리를 찾았다. 톤토를 떠나 로즈버그로 향하는 역마차 안에는 각양각색의 인물이 타고 있다.

마을에서 쫓겨난 매춘부 달라스(클레어 트레버 분)와 남편을 만나러 여행길에 오른 부인, 면허를 박탁당한 개똥 철학자이자 알콜 중독자인 의사 분(토마스 미첼 분), 언변 좋은 사기 도박꾼 햇 필드(존 캐러딘 분), 사기꾼 은행가, 위스키 장사꾼, 보안관 등등….그리고 여기에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찾고 있는 탈옥수 링고 키드(존 웨인 분)가 합류한다.

▲ 계단을 내려서면 다방이다. 여름에는 시큼한 곰팡내가 나지만 냉커피 한잔이면 웃음이 번지는 공간이다.

보안관은 감옥에서 탈출한 링고 키드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만 진짜 위험은 링고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 제로니모를 위시한 아파치 무리가 역마차를 공격한 것이다. 역마차가 아파치들의 공격을 받는 동안 범법자 링고는 자신을 버린 사회를 위해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다.

어쨌거나 역마차 다방이 커피전문점들이 벌이는 커피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역마차 다방이 개업할 때, 잘 나가던 청춘들이 이제는 아름다운 노을처럼 석양 나그네가 됐다. 그들이 단골이다.

이 다방에서 주말의 명화로 ‘역마차를 볼 수 있다면 다방은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역마차 다방’이라는 이름이 보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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