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7.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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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방
▲건물이 노후됐다. 그러나 다방 안의 정감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7월 초순이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장마 비가 후줄근하게 아침나절을 적셨다. 오늘 하루 시간당 40㎜정도 비가 내릴 것 같다는 기상대의 예보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으슬으슬한 몸살기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런 날은 옛날 다방에서 초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 한잔이 제격일 것 같다. 어디로 가볼까 하는데 퍼뜩 떠오른 곳이 있다. 중구 교동 향교 인근의 하늘다방이다.

하늘 다방은 교동 향교에서 우정동으로 넘어오는 야트막한 고개 아래 있다. 성신 고에서 우정동으로 4차선 도로가 나면서 5번 시내버스가 다녔다고 해서 일명 5번 도로로 불리어진 향교 앞 도로변 하늘 다방은 도심에서 비껴난 일명 변두리 다방이다.

목욕탕 건물 2층 코너 일부가 다방인 이 건물은 교회와 이발소 등이 입주해 있는 복합 건물이다. 다방 입구도 목욕탕 입구와 비슷한 위치다. 목욕탕 다방 같은 느낌이다. 도로에서 곧바로 들어가는 다방 입구는 퇴색된 하늘색 타일이 군데군데 깨진 상태였다.

하늘다방에서 중구 원 도심으로 연결된 길은 돼지목살로 유명한 먹자골목이다. 이 골목이 대롱처럼 원 도심으로 나가는 빨대 역할을 한다. 하늘다방은 우정동과도 인접해 있지만 느낌은 한적하다. 향교와 유림회관이 고전적 분위기를 잡고 있는 것도 하늘 다방이 촌스러움을 면하기 어렵게 한다.

하늘 다방을 누가 찾을까 했지만 아직도 영업하고 있다는 것만도 대단하다. 목욕탕 단골들이 친구를 만나는 유일한 공간이다. 향교 어른들은 다방을 찾지 않지만 이 근방에서는 하늘다방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하늘 다방에서 울산향교를 본 모습이다. 다방을 개업했을 때나 지금이나 한산하기는 매일반이다.

요즘은 배달도 거의 없다. 사무실마다 커피 자판기가 설치되면서 다방 손님이 줄었고 그래서 한때는 폐업위기에 처했지만 그냥 주변 단골들이 소일삼아 이용하는 공간으로 아직껏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늘다방이 여태 존속할 수 있는 것은 외국 브랜드 커피점이 입주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는 것. 향교와 유림회관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큰 유동인구집단이다. 향교 주변 지역은 개발이 미진한 상태이고 자동차 정비 점들이 몇 곳 있을 뿐이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갔더니 손님이 거의 없다. 하늘 다방은 아직도 커피 한잔에 2천500원이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반나절을 놀다가 가는 할아버지도 있다. 하늘 다방은 어른들의 휴식공간이다.

옛날에는 다방마다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때는 다방 아가씨를 다방 레지라고 불렀다. 그 레지 아가씨가 손님에게 커피를 얻어 마시면서 다방 매출을 올렸다. 자연스레 손님과 레지 아가씨의 추문은 소문 날 수밖에 없었다.

잘 나가는 레지는 하루에 손님한테 얻어 마시는 커피 잔 수가 수십 잔에 이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신분이 낮아진 외래어들이 많다. 레지를 비롯해 마담, 그리고 살롱 등등이다.

마담 역시 프랑스어로 마드무아젤 즉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술집이나 다방에서 영업하는 주인을 부를 때의 호칭으로 변질됐다. 살롱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는 술집이름의 대표적 고유명사가 됐다.

▲하늘다방 건물이 현수막 등으로 복잡하다. 하늘 다방이 처한 오늘의 현실이다. 6---한 건물에 목욕탕과 이발소 등이 함께 영업을 한다.

한때 티켓 다방이 전국을 휩쓸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레지 아가씨들의 설움이 많았다. 울산에서도 티켓 다방이 많았던 지역으로 언양이 도마 위에 올라 호된 대가를 치른 적도 있다. 티켓 다방은 그냥 다방 간판만 걸어놓고 아가씨들을 커피 배달 명목으로 오토바이를 태워 보냈던 시절이다.

그 후 다방은 휴게 음식점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외국계 브랜드 커피 점의 등쌀에 밀려서 존재 가치마저 잃어버린 상황이다. 그나마 울산에서 살아남은 다방들은 한 결 같이 뒷골목에서 촌 다방냄새를 풍기는 곳들이다. 그 중 하늘 다방은 낡았지만 깨끗하고 깔끔한 분위기다.

하늘 다방은 유리창에 다방 전화번호는 선팅 해 놓았는데 휴대폰 번호가 없다. 그만큼 급하게 찾는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다. 손님이라고 오면 커피를 팔고 손님이 없어도 다방 문을 열어놓고 느긋하다.

하늘 다방처럼 울산에서 아직도 도심 곳곳에 남은 다방들은 목장 우유를 판다. 참으로 정감이 넘친다. 그러나 지난 7월1일부터 다방도 금연구역이 되면서 영업에 지장이 클 것 같다고 마담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냥 금연석과 흡연석을 지정해 놓고 영업을 하면 됐던 시절이 또 한 번 추억 속으로 사라지면서 다방 주인들은 그 때를 부러워하게 됐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면서 다방 영업이 또 한 번 요동칠 것 같다고 우려한다.

우리가 늘 하는 말 중에 “그 때가 좋았다”는 말이 있다. 어제가 추억이 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지금 다방은 너무 삭막하다. 아가씨들을 두고 영업하는 다방은 울산에서 흔치 않다. 일 할 아가씨도 없지만 고용할 마담도 없다.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바닥을 기고 있는데 허름한 다방도 한세월 지난 것 같다는 것이 다방 주인들의 하소연이다. 햇볕이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다가 ‘후드득’ 비가 내린다. “쨍, 하고 해 뜰 날”이 우리시대 다방에는 없을 것 같다.

 ▲유림회관이 하늘다방 주변에서 가장 큰 유동인구를 갖고 있다.

젊은이가 찾지 않는 사업은 접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하늘 다방을 둘러서 시내로 내려오는데 여우비가 또 “후드득” 내린다. 변두리로 내몰린 다방들이 언젠가는 백기를 들고 외국계 브랜드 커피 점에 항복을 선언할 것 같다. 다만 그 시기가 빨라지느냐 늦어지느냐 만 남았을 뿐이다.

다방 이라는 이름은 이미 잃어버린 유물이 됐다. 그래도 다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파란 하늘이 그리운 장마철에 하늘 다방은 이름만 들어도 청량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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