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7.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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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다방

1층에서 항공다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커피 항공’이라는 글자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미 오래전 멈추어버린 고장 난 시계처럼 다방 흔적은 남아 있었다.

▲하얀벽에 새겨진 항공 다방 글씨,시간은 이미 거기서 멈추었다.

항공 다방은 울산시청 주변에서 유명했던 다방이다. 울산시청 후문 3층 건물 지하에 항공다방이 있었다. 울산시청에서 업무를 위해 찾은 사람들이 이 다방에서 대기하기도 했고 각종 민원 상담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락 거렸다.

항공다방이 입주했던 건물은 현재 넝쿨나무가 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한항공 울산영업소가 입주하면서 지하에 다방이 생겨나게 됐고 자연스레 이름도 항공 다방이 됐지만 대한항공 울산영업소 자리에 지금은 태진 관광이 다시 문을 열었고 유리창에 태극모양의 선팅이 대한항공 울산영업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항공 다방은 이름에서 비행기 냄새가 난다. 1970년 11월 울산시 북구 송정동에 지금의 공항을 건설해 개항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수준으로 보통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해 서울 출장을 다닐 만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1973년 휴항 했다가 그 이듬해인 1974년 아예 공항을 폐쇄 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울산 시민들이 울산공항 개항을 요구하면서 1984년 재 개항 했다. 개항 후 대한 항공이 울산과 서울 노선을 개설했고 울산 시청 옆 3층 건물 1층에 대한항공 울산 영업소가 생겼다. 울산 서울 간 노선이 생기자 울산 사람들의 울산공항 이용은 급증했다. 서울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긴급히 서울 출장을 가야하는 사람들은 비행기 표를 제때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없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제법 끗발이 있어야 했다. 그들이 끗발 있는 사람들을 만난 공간 또한 항공 다방이다.

항공 다방은 이런 저런 이유와 더불어 울산시청이 있어서 늘 북적였다. 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진을 친 곳도 항공 다방이다. 시청 뒷문 주변에는 중앙 언론사 지사(사무실)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

 ▲ 태진관광 간판이 있는 1층에 대한항공 울산영업소가 있었다. 유리창에 아직도 남아있는 태극문양 흔적이 대한항공 영업소 였음을 알수 있게 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주요 단골이었다. 시청 출입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는 장소로 항공 다방을 선택했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항공 다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바람에 항공 다방은 중요 정보원들도 수시로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 됐다.

항공 다방은 시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위치적 요인이 한몫을 했지만 내부 공간이 여유가 있어서 대화를 나누기에 편했던 것도 항공 다방이 복잡하게 된 이유가 됐다.

영업이 잘 되던 항공 다방도 시대의 변화라는 파고를 넘기에는 힘이 들었던가 싶다. 울산 시민 전부가 바랐던 광역시 승격도 항공 다방의 몰락 요인이 됐다. 특히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하기 이전인 1997년 7월 15일 이전까지만 해도 항공 다방은 손님들이 많았다.

그러나 울산시가 광역시 승격이후 기초자치 단체 업무가 구청과 군청으로 이관되면서 민원인이 크게 줄었다. 이때부터 항공 다방은 슬럼화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행기 운항 대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이때부터 영업수지가 악화됐다.

뭐니 뭐니 해도 항공 다방이 문을 닫은 큰 이유는 울산시 의사당 2층에 휴게실이 만들어졌고 시청 내 곳곳에 자판기가 설치된 것이다.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마셔야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고 하던 단골들, 출근 도장을 찍듯이 항공 다방을 찾던 그들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 했다.

결국 사회적 변화의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항공 다방은 문을 닫게 됐다. 그러나 추억 속에는 아직도 항공 다방이 살아 있다. 항공 다방을 생각하면 커피 향의 부드러운 여운이 남는다. 간혹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항공 다방 이야기를 하면 단번에 아는 체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은 항공 다방의 존재 가치를 알고 있음이다. 울산을 움직인 수많은 일들이 항공 다방에서 이뤄졌다고 그는 추억 한다. 새파랗던 젊음은 온데간데없지만 항공 다방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1층에 대한항공 울산 영업소가 있어서 항공 다방은 더 유명해 졌지만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면서 우쭐해 했던 사람들은 KTX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 가서 업무를 본다.

 ▲시청 구관의 모습, 항공 다방은 울산시청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본 증인이다.

KTX 고속열차 때문에 비행기 승객이 줄어들면서 비행기도 뜸 하게 울산 공항을 오르내린다. 그 틈새로 연습용 비행기들이 자주 ‘앵앵’ 소리를 내며 울산 하늘에서 비행 연습이 한창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가버린 것 같다.

항공 다방은 울산시청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다. 비행기 타는 사람들이 우쭐 하던 시대의 역사는 이미 가고 없지만 그래도 항공 다방 시대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제법이다. 이들에게 향수로 남은 항공 다방은 오래전에 문을 닫아 거미줄이 가득하고 큰 도로에서 다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됐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말이 있다. 세월이 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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