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7.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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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다방
▲영생약국은 울산에서 도로망의 깃점이 됐다. 2층에 한성 다방이 영업하고 있다.

폭염이 절정이다. 울산이 전국에서 폭염 순위를 매기면 등 수 안에 든다고 한다. 지난 월요일부터 울산은 열대야가 시작됐다. 벌써 6일째다. 올해는 여름이 일찍 시작됐고 늦게 끝날 것으로 기상대는 예보하고 있다.

찜통더위에 자칫 더위라도 먹을까 걱정이다. 울산시내 간선도로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오존수치가 반짝인다. 낮 동안 바깥 일정을 삼가라는 주의가 눈길을 끈다. 목이 마르다. 얼음이 아삭아삭한 냉커피를 마시고 싶다.

시내를 둘러봐도 곳곳은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뿐이다. 일회용 비닐 컵에 담겨져 판매되는 냉커피는 간편해서 좋기는 한데 어째 좀 어색하다. 오늘 찾아가는 다방은 옛날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던 월평 한성 다방이다.

울산은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발전해오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발전축이 남구로 넘어오면서 논밭에 도시계획선이 그어졌고 남구가 순식간에 번화해버렸다.

중구 우정동에서 태화교를 건너서 남구로 오면 행정동은 신정동인데도 사람들은 월평이라고 불렀다. 태화로터리가 월평 중심이었다. 태화로터리를 중심으로 강변도로, 시청방향, 공업탑 방향으로 주요 간선도로가 나눠진다. 그 간선도로 중 번잡한 도로가 시청방향이다. 상업 시설들이 활발하게 들어섰다.

▲한성다방 입구 간판이다. 핑크색 간판이 흘러간 추억을 되살려준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울산 살면서 월평 영생 양국을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었다. 약국치고는 대단한 명성을 갖고 있다. 중구는 옥교동 동신약국이 유명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 방향을 선택할 때 영생약국 하면 대부분 기사들이 알아들었다.

태화로터리 주변에는 현재도 영업하고 있는 태화호텔이 있다. 나머지 건물들이 우뚝한 주상복합아파트로 인해 사라지고 없다.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 터는 7층 상업시설 건물이 있었고 이 건물 바로 뒤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을 때는 태화로터리 일대가 제법 북적였다. 주변에는 다방들이 무수했다.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에도 다방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여기쯤 다방이 있었는데”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과겊 다방을 물었더니 이상한 눈초리다.

하는 수 없이 시청 방향 도로를 따라 다방을 찾아 나섰는데 영생 약국까지 ‘가나 다방’과 ‘한성 다방’이 유일하다. 다방을 찾는 것이 무슨 보물을 찾는 듯하다. 가끔은 다방 흔적이 남아있을 경우 무슨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갑다.

도로 건너편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영생약국 2층 한성 다방을 카메라로 찍고 또 찍는데도 즐겁다. 한성 다방은 이 주변에서 오래된 다방이다. 영생 약국 2층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울산에서 유명했던 영생 약국이다. 2층에 한성 다방이 있다.

그래서 한 때는 유명한 다방으로 이름이 났었다고 했다. 지금은 장사가 잘 됐던 그때를 추억하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다방을 찾는 손님들이 근래 들어 뜸하다. 지난해 여름보다 손님이 더 없다. 커피 배달은 옛날이야기다. 요즘은 손님이 와서 커피 달라고 하면 주고 그대로 앉아 있으면 있게 내버려둔다.

손님이 “커피” 하면 한잔 갖다 준다. 옛날처럼 커피 한잔 팔려고 아가씨들이 설쳐대던 시절은 이미 가고 없다. 여태 해오던 장사를 접기가 뭣해서 그냥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아는 사람들 찾아와서 놀다 가는 곳이 요즘 다방이다.

한때 이 다방이 잘 나가던 시절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했었다고 단골들은 추억한다. 한성 다방은 월평에서 살았던 사람은 대부분 다 알고 있다. 1980년대 말 처녀 총각이 맞선을 보던 그 때가 제일 잘 나가던 때였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삼산으로 옮겨가고 나면서 태화로터리 주변은 한동안 슬럼화로 인해 상권이 기진맥진 했다. 잘 나가던 돼지국밥집들이 사라졌고 골목 여관들이 죽을 썼다. 술집들도 삼산으로 옮겨가자 제일 먼저 숙박업소들이 월대 손님을 받는 등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일대 여관들은 요즘 대부분 월대 손님을 받고 있다. 여관손님들이 커피를 배달시키던 그 시절이 그리운 추억이 됐다. 이미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수년전부터 명퇴 대열에 합류한 7080 세대들은 다방들이 사라지면서 갈 곳을 잃어 버렸다고 하소연이다. 친구들과 약속을 하려고 해도 아는 다방이 없다.

한성 다방은 7080 세대들에게 귀한 공간이다. ‘영생약국 2층’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다방에서 약속을 하면 걱정이 없다. 7080세대들이 잘 나가던 시절, 태화로터리 주변은 ‘밤이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한성 다방이 있었다. 유성처럼 사라진 수많은 다방들이 월평을 휩쓸었다. 그 다방들은 어디로 갔을까, 코미디언 이경규의 유행어처럼 ‘별들에게 물어봐’라고 하면 정답일까. 추억은 별빛처럼 아스라이 그 때를 주마등으로 되살린다.

▲시청방향 상가건물, 한때는 울산 최고 상업지역이다.

사람들은 가고 없지만 그래도 추억은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부흥하면서 다방은 이제 시간이 정지돼 버린 공간이 됐다. 돌지 않는 풍차가 돼 버린 그 시절 단골 다방 마담이나 아가씨들의 분칠한 얼굴을 떠 올리고는 웃는다.

다방 담배 재떨이가 꽁초로 수북하던 시절이 그립다. 사귀는 오빠를 기다리며 성냥개비로 매미 집을 짓던 소녀는 없다. 그래도 태화강은 말없이 흐른다. 한성 다방이 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것이 희망인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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