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08.0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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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신선, 그리고 한일 다방
▲ 한때는 부산가는 주요 간선도로를 물고 있어서 손님들이 많았다. 다방 앞에 배달용 오토바이가 다방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울산지역에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있다. 경북 포항은 섭씨 36도를 넘는다고 했다. 한마디로 햇볕은 찬란하다. 햇볕이 강할수록 활기를 띄는 것도 있다.

우리집 베란다 벤자민이다. 이 나무는 겨울 내내 그냥 푸르딩딩 하게 살아만 있다. 하지만 여름이 시작되고 불볕 뉴스가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할 무렵부터 단연 잎에 윤기가 묻어난다. 성장속도 역시 대단하다. 하루 만에 다 커버릴 생각인지 잎이 쑥쑥 빠져 나온다.

무더운 날의 연속이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덥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울 것은 확실하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도심을 벗어나 보기로 했다. 울산시내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시골 냄새가 나는 울주군 청량면 덕하로 갔다.

▲ 아씨다방에서 본 청량면 사무소 방향이다. 외곽도로 개통이후 거리는 한산하다.

덕하는 리(里) 단위인데도 청량면 보다 더 알려진 곳이다. 청량면 면청사가 있고 파출소를 비롯해 다양한 면 단위 기관이 몰려 있는 덕하는 눈앞 들판을 건너 울산석유화학지원공단이 보이는 울산 관문이다.

온산공단을 가려면 덕하는 당연히 거쳐야 한다. 도시와 시골의 완충지역 덕하는 반촌이다. 5일장인 덕하 장은 시골장이라기 보다 도심 장터 같다. 장날은 덕하 인근 사람들이 장터로 다 몰려든다. 돼지새끼도 갖고 나오고 병아리, 고양이 등등 안 나오는 것이 없다. 만물시장이다.

시골에서는 할 일없이도 장날이면 어김없이 장터에 나와 다방에 들러고커피도 한 잔 하는 분위기 있는 사람들이 많다. 덕하 장은 파출소 옆에 덕하역이 있어서 인근 농산물이 수월하게 모인다.

▲ 청량면 사무소 정문을 마주보고 2층에 한일다방이 있다. 영업을 하는지 한하는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조용하다.

덕하역은 부산에서 포항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 역이다. 덕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방도 다른 반촌보다 성업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울산에서 덕하로 가려면 공업탑 로터리를 지나야 한다. 승용차로 5분여를 달리면 문을 닫은 덕하 검문소가 니온다. 직진하면 바로 온산공단과 덕하 장터로 연결되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가면 먼저 파출소가 나오고 덕하역이 나온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이 도로를 물고 지어진 건물 1층의 아씨 다방 간판이다. 건물 분위기로 봐서 오래된 것 같다. 다방 출입문에 ‘에어컨 가동’이라고 붙여 놓았다. 정겹다.

경제개발 시대에 시내에서도 영업용 택시에 유행처럼 에어컨 가동을 붙인 시절이 있었다. 오래된 옛 이야기 같지만 따져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아직도 다방 역시 영업을 위해 에어컨 가동을 붙여 놓았다고 생각하니 웃음도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하다. 다방 문 앞에는 배달용 오토바이 한 대가 낮잠을 자고 있다. 아씨 다방을 지나면서 왼편으로 청량면 사무소 안내 간판이 보이고 코너를 돌면서 중국집 2층이 신선다방이다.

신선 다방은 면사무소 출입구에 위치에 손님이 있을 것 같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출입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다방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신선 다방이라고 간판을 별도로 크게 달았다.

▲ 간판이 쓸쓸하다.

이외에도 면소 정문 건너편에 다소 초라한 한일다방이 있다. 낡은 건물 2층 한일 다방은 다방으로 오르는 출입구를 찾는 것도 보물찾기만큼 재밌다. 덕하에는 다방이 제법 많다. 이유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유동인구가 많고 인근 지역 물류 집단지이기 때문이다.

덕하는 울산에서 부산 해운대 방향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다. 지금은 덕하 뒤편으로 울산 부산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 있고, 이제는 고속도로 까지 개통되면서 차량이 물밀듯했던 덕하 장터 주변은 도리어 한적해졌다. 간혹 면사무소나 농협에 볼일이 있을 때만 덕하 장터로 들어오는 손님이 있을 뿐이다.

엊그제 울주군 범서읍 사무소 주변에서 다방을 찾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과거 범서읍 사무소 주변에는 분명히 다방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 이 지역에서 다방은 흔적을 감추었다.

범서읍 보다 규모가 작은 청량면 덕하는 아직도 다방이 성업 중이다.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아 많지는 않지만 배달도 간간히 있는 것 같다. 사용목적을 달성하고 있음이다.

티켓 다방이 유행병처럼 번질 때, 덕하에서도 티켓 다방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은 지난일이다. 덕하 지역 다방들이 살아남은 것은 외국계 커피점이 입점할 만큼의 인구 규모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빠르게 흐르는 변화의 물결에서 비껴나 있다. 다방 입구에 남아있는 옛날 장식들에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고장 난 시계를 보는듯하다.

도심은 서양식 커피점에서 돈을 내고 스틱을 들고 와서 기다리면 스틱에서 종소리가 들리고 스틱을 들고 가면 좀 전에 돈을 냈던 커피를 내 준다. 그런 분위기는 7080 세대들에게 어색하다. 그러나 덕하에서는 다방에 들어가면 먼저 마담이 빙수를 한 컵 가득 준다.

▲ 청량면 사무소로 꺾여드는 위치에 있다. 한산한 것은 시골 다방 전체가 겪어야 하는 위기다.

시원한 에어컨바람에 땀을 식히고 커피를 주문하면 마담이나 레지 아가씨가 날라다 준다. 과거처럼 차를 얻어 마시기 위해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냉 커피” 하면 각 얼음이 둥둥 뜨는 커피 향 마저 얼어버린 잔을 내 온다. 낭만이 있는 풍경이다.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런 풍경도 사라질 것이다.

다방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초라한 건물이 198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 같다. 살아 남은 다방들이 근대적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것 같다는 초라한 생각을 해 본다. 오는 길에 보니 청량면 파출소 담장의 능수화가 활짝 피었다. 목가적인 풍경이다. 가끔 부산에서 포항으로 가는 동해남부선 열차가 기적을 울린다. 아름다운 소설속의 그림이다.

덕하는 개발 제한구역에 오랫동안 묶이면서 시골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다. 다방이 공단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오래 남았으면 싶다. 아씨 다방, 신선 다방, 한일 다방 듣고 또 들어도 아름답지 않은가. 비료와 농약을 사러 나온 중년남자가 다방에서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 정신이 몽롱했던 그 때가 그리워진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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