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에 대한 냉대, 그리고 핀잔
흡연자에 대한 냉대, 그리고 핀잔
  • 강경수
  • 승인 2013.09.23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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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얘기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애연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물론 내노라하는 골초들이 실험대상이었다.

눈을 가리고 여러 종류의 담배를 연달아 피우게 했다. 평소 자기가 즐겨 피우는 담배를 알아맞히도록 한 것이다.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알아맞힌 사람은 30% 정도에 불과했다. 우연히 맞힌 것을 감안하면 열 명 중 한 두 사람 정도만 담배 맛을 제대로 식별했다는 결론이다.

이 실험을 통해 한 담배만 피우는 애연가들은 버릇일 뿐 맛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분이나 광고의 이미지에 의해 특정담배를 선호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실험이 있었던 당시 미국의 담배들은 그 질이 이미 평준화되어 있었다.

그러니 담배의 맛을 제대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애서 이와 같은 실험을 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전매청에서 생산되는 담배를 놓고 실험을 했다면 90% 이상이 그 맛을 알아맞혔을 듯싶다.

미국 담배가 고급 저급의 질적 차이가 아니라 취향의 차이로 식별이 어려웠다면 우리 담배는 값에 따라 그 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 애연가들이 어떤 담배를 피우던 그것은 개성의 차이이지 사회적 신분의 격차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우선 담배 값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우리나라 담배는 개성이 아니라 신분의 선택과도 같았다. 값에 따라 담배질의 계층이 분류되므로 그것을 피우는 사람에게도 자연히 신분의 등급이 생겼던 것이다.

담배 하나를 두고도 이처럼 신분의 차이가 명확했던 시절이었다. 담배 그 자체가 만병의 근원이고 해악인 요즈음에 무슨 난데없는 ‘담배타령’이냐 할지 몰라도 담배에 대한 추억이 새삼스러워 한번 반추해보는 것이다.

1970년을 전후해 우리나라 전매청은 담배장사로 크게 재미를 봤다. 나라 재정에 큰 보탬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담배 단속에 혈안이였고 국산담배 값 올리기를 밥 먹듯 해왔다. 최고급 담배 이름이 수시로 바뀌고, 그 때마다 덩달아 값도 뛰었다.

특히 ‘청자’라는 담배가 나오자 그것이 상류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돈이 있다고 청자를 마음대로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약삭빠르고 발이 넓어야 그 담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담배 하나 피우는 데도 처세술이 필요했고 뒷거래가 통했다. 맛도 맛이려니와 청자를 입에 물 정도가 돼야 상류로 대접받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우리 국산담배도 질이 높아져 국산담배 끼리의 맛 구별도 쉽지 않고 미국담배와의 차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담배 때문에 빚어진 신분등급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담배의 질이니, 맛이니, 신분차이니가 문제가 아니라 담배를 피우느냐 피우지 않느냐가 화두가 되고 있다. 흡연층과 비흡연층의 신분등급조사까지 등장하는 세태다.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담배와 관련한 이색적인 연구결과를 내놨다. ‘우리나라 성인 및 청소년의 흡연 현황’이라는 보고서이다.

결론은 이렇다. 교육수준과 소득이 낮을수록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것이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많이 배우고 부자인 사람들보다 담배와 더 가까이 한다는 얘기다.

소득을 4단계로 나눠 상위 1분위의 남자 흡연율이 43.2%라면 하위계층은 52.9%로 10% 포인트 격차가 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 기초생활수급자의 흡연율은 72.5%로 평균 흡연율보다 30%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수입원도 없이 정부의 보조금에 의지하고 사는 남자들이 애궂게 담배만 작살낸다는 조사결과다. 교육 수준에 따른 흡연율 격차 또한 예사롭지 않다.대졸 이상 학력의 남자 흡연율이 47.0%인 반면 초졸 이하 학력 남자는 6.4% 높은 53.4%로 드러났다. 못 배운 설움을 담배로 달랜다는 얘길까.

심리학자들의 분석대로라면 흡연의 대체적인 동기는 ‘불안’ 이라는 것이다. 무언지 모르는 중압감과 울적한 좌절감, 그리고 그런 사회분위기가 흡연인구를 늘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일 수록 골초라니, 핀잔도 가지가지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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