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10.0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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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다방
▲ 그 시절 산호부동산공인중새소 앞을 지나 지하 산호다방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8월도 며칠 남지않은 최근 울산시 남구 고사동이 섭씨 40도까지 기온이 치솟았다. 톱뉴스로 등장한 울산 가마솥 더위는 81년만의 대 기록을 세웠다. 이런 더위를 두고 옛 어른들은 ‘첩을 팔아 더위를 산다’고 했다.

다방 열전을 쓰기는 써야 하는데 마땅한 다방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 다방이 없다. 최소한 한때는 이름을 날렸던 다방이면 좋다. 7080 세대들의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 한곳이 떠올랐다. 남구 무거동 신복 로터리로 가는 방향, 산호아파트 입구에 있었던 산호 다방이다.

산호아파트가 2005년 철거에 들어가면서 산호 다방은 그 보다 좀 늦게 2007년쯤에 상가 건물과 함께 철거됐다. 산호 다방 흔적을 찾기 위해 무거동으로 가는 중에 mbc라디오에서는 추억의 다방 코너가 웃음을 배달하고 있었다.

▲ 아파트 전체 전경이다. 왼편 건물에 임대 현수막이 많다. 커피 전문점이 들어설 것 같다는 주민들의 말이다.

우리들의 삶속에 다방이 깊이 들어앉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올해 초에는 울주군이 범서읍 울주 문화예술회관에서 추억의 다방을 열었다. 관객이 넘쳤다고 한다. 다방은 기성세대의 전유물 같지만 그들의 삶을 지탱해준 정신적 공간이라고 하는 데는 어떤 변명이 있을 수 없음이다.

산호다방은 울산시 남구 삼호동 산호아파트 단지 입구 상가건물 지하에 있었다. 산호아파트의 이름을 따서 산호 다방으로 간판을 내건 이 다방은 삼호동 지역에서 제법 알려진 다방이다.

198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산호 아파트가 지어진 신복 로터리 일대는 한적한 농촌 풍경이었다. 처서를 앞둔 지금쯤이면 산호아파트 주변 들판은 키 재기를 하는 벼들이 볼만 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고 삼호초등학교가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농촌에 다방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산호아파트가 건축되면서 지역 유일 산호다방이 생겨났다. 또 삼호지구가 토지구획정리 되면서 주변에 부동산 업소가 들어섰고 산호다방이 성업했다.

마땅히 이 지역 사람들이 마땅히 약속장소가 없던 터에 산호다방은 영업이 잘 됐던 것으로 소문이 났다. 다방 아가씨도 3~4명이 있었다. 다방에 가면 이들 아가씨가 아는 척했다. 차를 한잔 사 달라는 신호였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이런 맛에 자주 이 다방을 찾았다.

지하 다방이기는 해도 주변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산호 다방은 무거동 신복 로터리 일대에서 제법 알려지기 시작했다.
산호 아파트가 작은 평형대의 아파트지만 당시로는 새 아파트라는 이유만으로도 인기였다. 주변 상업시설에 경상일보사를 비롯해 다양한 회사들이 입주하면서 주변에서는 산호다방이 유일했고 약속의 중심다방이 됐다.
1994년 봄, 경상일보사가 남구 신정동 축협 앞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당시만 해도 왕복 2차선 도로가 왕복 6차선도로로 확장이 한창이었다. 그 때부터 산호 다방도 서서히 시골 다방의 촌티를 벗고 도시 다방으로 분칠을 했다.

기억하면 산호 다방 1층은 산호 약국이 있었고 다방 입구에는 과일가게가 있었다. 그 틈새로 난 계단이 지하 산호다방으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산호다방은 지하라서 곰팡이 냄새가 났고 겨울에는 석유난로를 가동하면서 석유냄새로 머리가 아팠다.

▲ 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새 건물이 산호다방 터였다. 산호라는 이름은 인근 부동산 건물 상호.

그 시절, 마땅히 갈 곳 없는 청춘들은 석유냄새가 진동하는 다방에서 한나절을 죽쳤다. 지금처럼 승용차가 흔하지 않은 시절, 아가씨와 만난 총각도 목장 우유 한잔 놓고 버티기에 들어갔던 추억의 공간이 산호 다방이었다. 추억을 담았던 공간은 지금 흔적도 없다. 그러나 아파트 준공을 앞두고 멋있는 건물이 들어섰다.

산호 아파트에 살았던 친구는 대뜸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때는 무조건 산호 다방이었다.”고 했다. 차는 아파트 단지 안에 주차를 해놓고 산호 다방에서 볼일을 봤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곳에서 만나 등산도 가고 낚시도 갔다고 그는 추억하고 있다.

지금은 산호 아파트가 헐린 자리에 지하2층~지상25층, 13개동 총 922세대 규모의 대단위 아파트가 곧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아파트 정문까지 깔끔하게 정비하고 주변 환경정비에 한창이다. 이 아파트는 오는 9월쯤이면 입주가 가능할 것 같다.
1993년 그 시절, 경상일보 기자들도 한동안 이 다방을 많이 이용했다. 당시 필자가 경상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을 때 기사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들을 산호 다방에 가 있어라 해놓고 회사에서 기사를 쓰고 있으면 기다리다 못해 다방 아가씨들이 회사로 불이 나게 전화를 했었던 기억이 어제일 같은데 세월은 벌써 20년이 넘었다.

산호 다방 흔적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기존 다방의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남구 신복 로터리에서 중구 우정동 사거리까지 도로변 간판을 살펴봤지만 다방은 우정동 태화루 건너편 2층 건물에 한곳이 있었을 뿐이다.

옛날 다방은 시내에서 씨가 말랐다. 원래 다방은 부동산 업소가 많은 지역에 개업을 했다. 부동산 손님들에게 커피를 배달하는 수입이 짭짤했는데 이제는 부동산 업소에서도 1회용 커피를 이용하는 바람에 다방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다방은 우리들 곁에서 한곳 두 곳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남은 것도 있다.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단어 ‘다방 커피’다. 다방 커피는 1회용 커피처럼 들어 가야할 것들이 다 들어간 커피를 말한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설탕을 빼거나 프리마를 뺀다. 하지만 7080 세대들은 여전히 다방 커피를 즐긴다. 국내 시판 커피의 대부분을 1회용 커피가 차지한다고 한다. 대단한 위력이다.

1회용 커피 원조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니 옛날 다방이 사라지더라도 다방 커피라는 단어는 영원하리라 믿는다. 그나마도 사라진다면 이 시대 산업의 역군으로 살았던 7080 세대들의 추억을 뺏는 것이기 때문이다.

1---그 시절 산호부동산공인중새소 앞을 지나 지하 산호다방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2---무거 자이 아파트가 위용을 드러냈다. 이 아파트는 산호 아파트를 헐고 건축됐다.
3---아파트 전체 전경이다. 왼편 건물에 임대 현수막이 많다. 커피 전문점이 들어설 것 같다는 주민들의 말이다.
4---아파트를 들어가는 입구다. 웅장한 모습이 당당하다.
5---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새 건물이 산호다방 터였다. 산호라는 이름은 인근 부동산 건물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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