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10.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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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다방
▲ 창문에 다방 이름이 선명하다. 그리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준다. 다방커피가 생각나게 한다.

밀림은 누구의 발길도 닫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처녀림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숲이 빼곡한 밀림은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누구나 동경하게 되고 한번쯤 찾아 가고프게 한다.

다방 주인도 이런 생각으로 밀림이란 간판을 내건지 모른다. 밀림 다방은 상가들이 밀림처럼 빼곡한 중앙시장 중심지역 2층 상가에 있다. 출입문이 하얀 새시인 것으로 봐서 나이 든 티가 역력하다. 중앙시장 여러 건물 가운데 밀림 다방 건물이 가장 오래 됐을 것 같다.

밀림다방 위치는 새로 지은 중앙시장 건물과 8m 소방도로를 마주하고 있는 사거리다. 밀림다방 앞에서 한 바퀴를 돌면 중앙시장 절반은 다 본 것과 같다.

밀림다방에서 중앙시장과 마주한 거리는 먹자골목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그리고 번영로 방향은 유명한 꼼장어(갯장어) 집들이 빼곡 하다. 울산 소방서 방향, 즉 태일약국 쪽은 가방과 일반 잡화를 파는 점포들이 즐비하고 오른편 골목은 신을 파는 점포들이 많은 편이다. 밀림 다방은 이곳에서 30년 이상 영업을 해온 것으로 주변 상인들은 추측하고 있다.

▲ 신을 파는 가게에서 올라가는 다방 입구다. 새시 출입문이 다방 역사의 성문처럼 느껴진다.

창문에 크게 필름으로 상호를 새긴 밀림 다방은 입구가 두 군데다. 신발 가게가 있고 중앙시장 먹자골목으로 통하는 쪽과 태일약국에서 바로 중앙시장으로 내려서면 꼼장어 골목을 만나는 곳쯤에서 다방으로 오르는 출입문이 있다.

이 다방은 중앙시장 상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근래 단골손님은 중앙시장 출신 원로 상인들이다. 장사를 아들에게 물려준 원로 상인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도 소중한 공간이다. 7080시절 잘 나갈 때, 여름이면 냉커피가 불티나게 팔렸던 밀림 다방은 요즘은 한산하다. 아가씨들도 없다. 주인이 그냥 운영하고 있다. 과거 엽차 잔을 날랐던 아가씨들은 모두 떠났다.

추억하건데 태일약국에서 시장으로 들어오는 길목 주변에는 한때 다방들이 수두룩했다. 청자 다방이나 극장 건너편의 맥심 다방. 시장 골목 입구의 월성 다방, 신화 다방들이 성업할 때도 밀림 다방은 주요 고객을 중앙시장 상인으로 한정하고 영업을 했다. 앞에서 밝혔던 유명 다방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유일하게 밀림 다방만 살아남았다. 아이러니라는 단어는 이때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끈질긴 생명력이다. 유명 다방들과 경쟁하기 위해 뛰었더라면 지금 밀림 다방은 살아남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밀림 다방 간판을 보면서 세상에는 영원한 일등도 영원한 꼴찌도 없다는 말을 절감했다.

30여 년 전 밀림다방 부근에서 어머니와 이모님이 잡화점을 했다는 홍대식씨(55)는 그 이전부터 밀림 다방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밀림 다방이 40년 이상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밀림 다방은 계단부터 가팔랐다. 평 면적을 넓히기 위해 계단을 급경사로 했고 계단 폭을 비좁게 했던 것 같다. 두 명이 함께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비좁다.

▲ 한사람씩 줄을 서야 올라갈 수 있는 계단, 그래도 넘어질까 싶어서 난간을 설치해놓았다.

재래시장이 잘 나가던 때, 중앙시장은 울산 중심 시장이었다. 삼산으로 옮겨간 태화강 역이 그 당시 울산역이라는 간판을 달고 지금의 이마트 자리인 학성동에 있었다. 중앙시장에서 철길 담벼락 길을 따라가면 울산역 광장이 나왔다.

그 담벼락길이 한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서쪽으로는 성남동 배수갑문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서 태일약국, 주리원백화점(현 뉴코아 아울렛), 태화극장, 울산 소방서가 있었고 전신전화국, 동원예식장등을 비롯해 울산을 대표하는 중심 건물들이 즐비했다. 울산역 방향으로는 번영로가 지나면서 길이 끊어졌고 현재는 겨우 꼼장어 골목만이 살아남았다.

지리적 요충지로 인해 밀림 다방 주변은 늘 북적였다. 밀림다방 맞은편 샛길은 인심이 후한 칼국수집들이 한 골목을 차지했다. 할머니들이 주인이었고 칼국수가 그릇을 넘칠 만큼 량이 많았다.

무시무시한 ‘칼 탕’이라는 말로 놀라게 했던 칼국수 집들은 지금 흔적이 없고 겨우 추억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 때의 비좁은 골목은 울산 최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인 대우 이안으로 이어지는 역할만 하고 있다. 지금도 과거처럼 리어카 커피점이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주문은 거의 없다.

중앙시장이 사람으로 넘칠 때는 리어카 행상 커피 판매도 자릿세를 주어야 영업이 가능했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상인들은 다방 커피를 마셨고 길거리 행상들은 리어카 커피를 마셨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지 차등은 필수였다.

근래 다방 분위기는 한산하지만 추억은 살아있다. 다방 아가씨의 화장발 웃음에 커피를 사 주던 아저씨들은 호호 백발 할아버지가 돼서 밀림 다방을 찾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밀림다방 맞은편 신발 가게 주인은 어릴 때부터 지금의 신발가게 점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는 평생소원이 이런 신발 가게를 가져보는 것이었다. 옆도 돌아보지 않고 죽도록 일했고 남의 가게로 일터를 옮기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노력한 덕분으로 15년 전 평생소원을 이루었다. 신발가게 주인이 그에게 가게를 넘겨주었다. 너무 기뻐서 몇 날을 잠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야심한 세월은 그를 실망시켰다. 그가 가게를 인수하고 나서부터 울산에도 대형 매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재래시장이 사양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점포를 갖고 있으면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될 줄 알았다고 했다. 지금 판단해보면 무지 무지 잘못된 생각이었다. 세 들어 있는 주변 상인들은 수년전부터 장사를 그만두었다. 점포를 갖고 있는 몇몇 상인들만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있지만 파리만 날린다고 했다. 시절 좋을 때 주인 사장님이 시켜주던 밀림다방 커피 생각이 요즘은 간절하다고 푸념한다.

밀림다방 냉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신을 팔았던 그 때는 배가 불렀던 시절이었다. 근래는 돈이 없다기보다 매출이 없어서 다방 커피를 못 시킨다고 한다. 도시락도 싸 온다고 귀띔했다.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중앙시장 상인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도 밀림 다방은 묵묵부답이다. 그냥 하루가 가고 또 갈 뿐이다. 밀림다방은 오늘도 그냥 커피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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