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3.10.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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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계 정 다방
▲ 정다방 간판이 눈에 확 띈다. 이제는 봉계 유일의 다방이 시화전을 여는 문화공간으로 변화 하기를 기대해 본다.

모기 아래턱이 떨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다. 아직도 한낮은 뜨거운 햇볕이 기승을 부리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 가면 가을바람이 선 듯 선 듯 옷깃을 스친다. 뜨거운 열기에 기진맥진 하는 사이 하늘은 성큼 높아졌다.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음이다. 들녘에는 벼 이삭이 여물어가고 있다.

수확과 축복의 계절 가을은 머지않았다. 영원할 것 같은 가마솥더위도 엊그제 내린 비에 수그러지는 기세다. 계절은 쉼 없이 오고 가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가 보다. 여름이 뜨거울수록 가을은 풍성하고 파란 잎에는 형형 색의 고운 물이 단풍으로 든다고 한다.

얼마나 더웠으면 81년만의 더위라고 했을까,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격언처럼 고생했으니 올 가을의 풍성함을 기대해 본다. 기상 전문가들은 올 가을 단풍이 어느 해보다 고울 것 같다고 예보한다. 그만큼 여름이 길었고 인간들 또한 더위로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다.

가을바람 마중을 가듯 두동면 봉계를 찾았다. 봉계는 생고기로 유명한 불고기 특구다. 20여 년 전 봉계 장터 허름한 식당에서 할머니가 숯불에 올려주는 생고기에 막소금을 뿌려 먹었던 것이 오늘의 봉계 불고기 특구가 된 원조 스토리다.

기억하건데 그 시절, 울산에서 두동면 구미리로 가는 입구에 작은 다리가 있다. 이 다리에서 마주보는 산마루에 당시 울산 연예협회 지부장이었던 한기철씨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베 농장이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우회전 하면 치술령 가는 길이다.

▲ 봉계 중심 불고기 식당들이 밀집해 있다. 그 맞은편이 봉계시장이다.

1990년대 초반 한 지부장 과수원에 놀러가게 되면서 봉계 생고기를 알게 됐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불고기 하면 언양 석쇠불고기가 유명했다. 봉계 생고기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시절이다. 나 역시 봉계라는 지명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만큼 봉계는 오지였다.

울산에서 봉계 가는 길은 전부 비포장 도로였다. 먼지를 뿌옇게 날리면서 달리는 완행버스가 울산과 봉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 당시 봉계는 울주군 두동면에 속해 있었지만 생활권은 경주였다.

봉계에서 울산까지 운행되는 버스는 하루 6~7회 인데 비해 경주는 20여회에 달했던 시절, 봉계는 면 소재지가 아닌데도 경주지역 완행버스가 정차해 있는 시외버스 종점이 있었고 주변 골짝 사람들을 위한 장터가 있었다.

▲ 봉계 중심에 위치한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간다.

이 장터가 지역 상권의 중심이었다. 5일장으로 열렸던 봉계장터는 장날이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장터의 하루가 저물면 볼일을 끝낸 남정네들이나 장꾼들이 하루의 치열함을 달래기 위해 들렀던 곳이 정 다방이었다.

한 지부장과 함께 봉계장터 막고기(생고기)집에서 소금을 뿌려서 간을 맞추었던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흘렀다. 1990년대 말 울산시 교육청 출입 기자들과 봉계를 간적이 있었다. 경주를 갔다가 오면서 봉계에 들렀다. 장날이 아니라서 장터는 이빨 빠진 촌로처럼 자판이 듬성듬성 비었다.

시외버스 종점을 중심으로 나지막한 기와집들이 기억속의 봉계 장터 풍경이다. 그 기와집들 가운데 눈에 띄게 다방 간판을 단 곳이 있었다. 우리들은 호기심에 들렀다. 기와집 추녀가 내려앉아 입구 출입문이 낮아서 고개를 숙여야 했던 정 다방은 실내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어두컴컴한 구석마다 촌로들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언양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그 가운데 정다방도 있다.

우리들도 구석진 곳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커피를 시켰다. 진한 화장의 레지 아가씨가 껌을 씹다말고 엽차 잔을 먼저 날랐다. 짧은 치마, 가슴이 패인 옷을 입었던 아가씨가 커피를 날라다 주면서 한마디 했다. “커피 한 잔 해도 될까요.” 당연히 그러라고 했더니 커피 대신 요구르트를 마셨다. ‘커피는 피부를 거칠게 한다.’고 했다.

▲ 불고기 식당 간판 사이로 정다방 간판이 돋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남아서 다방 영업을 하는 곳은 정 다방뿐이다. 울산에서 봉계로 향할 때 정 다방의 흔적이나 찾아보자고 했던 것이 전부였는데 기대 이상을 수확했다. 정 다방 간판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봉계 시외버스 종점에서 언양 방향을 쳐다봤다. 오후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하는 틈새로 큼지막한 정 다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정 다방은 봉계를 찾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외버스 종점에서 언양 방향으로 30m쯤 되는 곳, 장터와 마주보는 곳에 현대식 1층 건물을 지었고 그 1층이 정 다방 이었다. 외부에서 언뜻 보면 2층 건물 같지만 2층은 그냥 형태만 갖추었고 실제로는 1층뿐인데 정 다방이 전부였다.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다방 앞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3대나 주차돼 있었다. 한 여름에는 냉커피만한 것도 없다. 얼음이 버석거리는 커피 한 모금이 목젖을 타고 넘어갈 때의 알딸딸한 느낌은 그 어느 청량음료와 비교할 수 없음이다.

다방에서 도로를 건너 마주 보는 곳에 전통시장 먹자골목 리어카처럼 아담한 포장마차가 어묵과 튀김을 팔고 있었다. 봉계는 과거 20여 년 전에 찾았던 허름한 장터가 아니다. 불고기 특구로 지정되면서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다. 불고기 식당들은 대부분 기업 형태다. 그만큼 규모가 크다는 말이다.

▲ 약국 건물이 봉계시장 끝자락이고 건너편이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대단한 발전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봉계를 두고 한 말이다. 몰라보게 변해버렸다. 봉계 불고기 특구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봉계는 해마다 언양과 격년제로 불고기 축제를 연다. 가을 밤 봉계 천변에서 열리는 불고기 축제는 봉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낭만과 추억을 선사하는 알찬 행사이다.

울주군 북부지역의 소도시로 발전한 봉계, 다방은 아직도 정 다방이 유일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만도 대단하다. 봉계 정 다방이 지역 문화의 중심공간으로 시화전이 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름다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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