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참좋은 대통령’ 없나요
어디 ‘참좋은 대통령’ 없나요
  • 강경수
  • 승인 2013.10.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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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동양에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사람이 갖추어야할 의용(儀容)으로 꼽았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인 셈이었다. 그 중 신(身)이 첫째였다.

그러나 신은 부모로 부터 타고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쳤다. 두 번째 기준인 언(言)은 후천적으로 봤다. 물론 서(書)인 문필과 판(判)인 판단격도 타고난 소질과 단련에 의해 우열이 가려진다고 생각했다. 말인 언(言)을 두 번째로 세운 것은 말에서 사람의 지식이나 교양, 그리고 인격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이 곧 사람이다’라는 정설이 등장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언어속에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언어의 집’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에 말에 관한 말이 많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말이 말을 낳느니, 말에 가시가 있다’는 정도는 일상적인 언어다. 말 잘하는 사람은 처세에 유리하다는 뜻의 ‘말만 잘하면 천냥 빚도 가린다’는 속담도 흔히 쓰인다.

“말속에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속에 말 들었다’는 속담은 명언에 가깝다. ‘말은 꾸밀 탓’이라 했던가. 아니면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최근 우리 정치판에는 말로 인한 동티가 예간 아니다.
말이 불씨로 , 부메랑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2007년 1월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개헌을 제안한 노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몰아친 것이다. 그냥 나쁜 대통령이 아니라 참으로 나쁘디 나쁜 대통령으로 매도했다.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맞받아 쳤다. “선거를 앞두고 달콤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공격했다.

그것도 인천의 시민사회대표와의 아침식사 자리에서 던진 말이었다. 지난 2008년 총선 공천 때는 당시 박근혜와 친하다는 친박계가 무더기로 탈락했다. 박 대통령은 주저없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측근을 성토했다.

이번에는 김한길 대표의 비망록이 그 존재를 과시했다. 지난달 26일 경기 수원의 한 어린이집에서 그는 5년전의 수첩을 펼쳐들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공약으로 당선된 박 대통령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속였다‘며 아이도 속고 어른도 속았다”고 빗댔다. 그럴싸한 빈정이다.

기초연금안 수정 등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후퇴를 놓고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의 공박은 이어졌다. 2011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 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밝혔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깨진다면 끝없는 뒤집기와 분열이 반복될 것이다.”라며 수정안에 반대했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와 약속의 상징으로 국민에게 다가섰었다.

그러나 “약속은 쉽고 실행은 어렵다”고 했다. 또 그 약속이 중대하면 중대할 수록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피해는 크다. 당연히 불신이나 분노가 따르기 마련이다. 신뢰도 마찬가지다. 한번 금이 간 유리는 아무리 깨진 조각을 잘 짜 맞추어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한번 잃게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사람간의 신뢰다. 더 더욱 국가지도자와 국민과의 신뢰는 강요로 형성되는 것도 아니고 사과로 용서되는 것도 아니다. 개헌을 제안했다는 이유로 ‘참 나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래도 약과다. 신뢰와 약속으로 대변되던 박 대통령이 ‘참 나쁜 대통령’으로 지칭되는 것이 난제다. 언제쯤이면 우리도 ‘참 좋은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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