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리 추모제 소식을 듣고
구영리 추모제 소식을 듣고
  • 정은영
  • 승인 2013.11.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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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에게 맞아 죽은 어린이의 영혼을 달래는 추모제가 엊그제 범서읍 구영리에서 주민들 주최로 열렸다고 한다. 참으로 애석한 어린 영혼의 죽음에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그 계모는 아이의 소풍을 못 가게 한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아이를 두들겨 패서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제 그 아이는 하늘나라로 갔다. 남은 자들이 지금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촛불 추모집회를 열고 터지려는 분노를 삭혀가고 있다. 그러나 추모제를 열면서, 분노를 삭이기에 앞서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이웃들에게서 끔찍한 가정 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돌아보면 십 수 년 전 전의 일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아이가 죽지는 않았지만 계모가 아이를 두들겨 패는 일이 심각했다. 이웃들이 경찰에 고발하려 해도 계모의 보복이 두려워서 모두들 외면했다.

당시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다. 가끔 배가 고파서 이웃집 부엌에 몰래 들어와서 밥을 훔쳐 먹었다. 밥을 도둑맞은 집에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만약에 그 아이의 행동을 부모에게 알리면 그날 밤 아이는 매타작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에는 쫓겨나 마을 골목길에서 배회하는 아이를 봐야 했다.

처음 그 아이 집이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올 적에 소문에 계모라고 했다. 그 아이는 머슴애였고 또래 아이들 보다 덩치가 작았다. 그 아이는 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이의 입은 옷이 남루했다. 또 아이가 남의 집에서 음식을 훔친다는 소문도 들렸다.

계모가 잘 먹이지 않고 수시로 두들겨 팬다는 소문도 났다. 사람들은 골목에서 그 아이네 가족들이 지나가면 돌려보내놓고 수군 거렸다.

아이의 계모는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매일 새벽녘에 들어온다고 했다. 이웃들은 어떤 날은 새벽부터 부부 싸움을 했고 그 다음에는 아이가 맞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아이는 점차 기가 죽어갔다.

상황이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수군대기만 했지 아이를 위해 누구 한 사람 경찰에 고발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 구영리 계모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 때 우리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구영리 계모 사건이 불거지자 우리 마을 그 아이, “지금쯤 청년이 됐을 텐데, 뭐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다. 그 때, 그 계모는 혹시 마을 사람들이 고발할까 두려웠는지 “고발 같은 거 하는 사람은 지 죽고 나죽는다”고 공갈 협박했다.

우리 마을 사람 모두는 그 공갈 협박에 넘어가서 아무 말도 못하는 못난 사람이 됐다. 지금 반성해 보면 뭐하나, 그 아이가 바르게 성장 했으면 천만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 우리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 사회 모두가 공동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처절한 반성만 하고 있다.

그 아이와 관련한 또 하나 의문은 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아이의 가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왜 그 아이에 대해 학교 중심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을까, 학교는 가정을 떠나 사회로 난 소중한 울타리이다. 사회적 약자 어린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의 지갑에 손대는 어린이라고 소문이 났다면 당연히 담임선생님은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지금 하늘나라에서, 땅에서 열리고 있는 추모제를 내려다보는 구영리 그 아이는 어떤 심정일까. ‘살아 있을 때 사회적 관심을 조금만 보였다면 나는 지금도 살아 있을 텐데’ 하는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아이의 추모제를 지내면서 제2, 제3의 구영리 어린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망 설치가 절실하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냄비처럼 끓어 넘치다 세월이 가면 언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마저 희미해져서는 안 된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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