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산고(産苦)
태화루 산고(産苦)
  • 정은영
  • 승인 2013.12.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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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가 완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8년 로얄 예식장과 주변 건물 철거를 시작하고 지난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이제 일부 단청을 제외하고는 본 모습을 드러내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태화루는 진주 촉석루와 밀양의 영남루 등과 함께 영남 3루로 알려진 대표적 누각(樓閣)이다 태화루는 140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태화사의 한 누각으로 건립된 이후 고려 성종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머물다간 명소이다.

임진왜란 때 사라진 후 420년 만에 복원돼 오는 2014년 3월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태화루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까지 큰 산고(産苦)를 겪었다. 태화루는 울산시 중구 태화동 91~2번지 로얄예식장 부지와 그 일대 약 1만403㎡에 연면적 731㎡ 규모다. 이곳에는 당초 주상복합건축물이 지어지기로 했다.

사실 주상 복합 건축물 허가 까지 났다. 이 때문에 태화루 복원은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돌았다. 지역 언론에서도 태화루 복원이 어렵게 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시민들의 태화루 복원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지자 울산시가 본격 나섰다.

태화루 복원을 위한 용역사업들이 추진되면서 태화루 건립사업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부지 보상을 위한 예산이 마련되고 주변 건축물들에 대한 철거방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역 노동계에서 태화루 복원을 꼭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계는 울산시가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데 5백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서 태화루를 건립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를 따졌다. 노동계는 태화루가 양반들의 놀이문화 터로 이용됐다면 복원이 필요하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노동계의 지적은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태화루 복원은 울산 시민의 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 까지 울산은 울산의 랜드 마크로 드러낼 만큼 한 것이 없었다. 중구와 남구를 연결하는 십리 대밭교가 랜드 마크의 이름을 얻고 있었다.

태화루가 지난 2012년 5월 31일 기공식을 가진 이래 건축물 공사에 들어가면서 울산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주요시설물은 주심포 양식의 본루(233㎡)와 행랑채(32㎡), 대문채(107㎡), 사주문(7㎡), 휴게?문화동(352㎡) 등이 있다.
태화루는 남산 은월봉의 은월루를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는 태화루의 정 방향을 두고 갑론을박 했다. 결론적으로 남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부속 건축물에 대해서도 여러 말들이 많았다. 심지어 부속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태화루 본 건물이 가려진다는 이유로 이를 철거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여하간 우여곡절 끝에 태화루는 이제 울산을 대표하는 상징 건축물로서 우뚝한 위치에 섰다. 태화루가 불타버린 후 태화루 12지 신상 부도 탑이 학성공원 꼭대기에 방치 되다시피 했다. 심지어 불을 피운 흔적들이 있다. 지금은 울산시립박물관 중앙 현관에서 시립박물관의 역사성을 대변하는 문화 유물로 자리하고 있다.

태화루 역시 울산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 그 중심 용금소에 위치하고 있다. 울산 어디를 지나더라도 태화루는 울산의 중심에서 랜드 마크로서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제 내년 3월이면 태화루는 준공식을 가진다.

신라 천년의 문화가 다시 울산 중심에서 살아났음이다. 우리는 태화루 복원을 두고 울산의 옥동자를 낳는 산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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