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내려받기
달빛 내려받기
  • 울주일보
  • 승인 2016.01.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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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밝습니다. 하얀 달빛마저 얼었다 녹는 길에서 세상 가장 느린 산책을 합니다.

지난 가을 힘겨운 내 발걸음을 휘감아, 용기를 주던 월광곡곡조도, 이맘때면 길모퉁이 바스락거리는 낙엽 밑으로 숨어버립니다. 어쩌면 새봄에 달아줄 새싹의 품속으로 스며들었는지 모릅니다.

언제부터인가 뜬금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달빛에 묶어두기라도 하듯 발길을 멈춘 채 눈도 닫고, 귀도 닫고 달님의 품속으로 안긴 날들이 잦습니다.

가을코스모스이랑 사이로 달빛을 내려 받던 날이 언제였던가?

어느덧 서어나무도 종아리를 내놓고 동면을 취하는 겨울 오솔길로 들어섭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금빛달은 끊어질듯 이어지는 하루의 길잡이가 됩니다.

연 초부터 다짐한 마음 한켠, 어제의 반성문을 쓰게 하고, 오늘은 감상문을 쓰게 하더니, 내일은 참 잘했다고 표창장이라도 내려줄까 설레는 마음입니다.

어머니의 허리처럼 휘어진 그 길위로 스스로를 벌하고, 뉘우치게 하고, 또 누군가를 사무치도록 그립게도 합니다. 그럴 땐 달님을 내안에 불러들여 축쳐진 어깨를 토닥이게 합니다.

이처럼 나를 다지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더 단단해지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 이겨나갈 자신감 또한 충만해집니다.

제 속 비우는데 만 보름이 걸리는 달, 또한 생살을 덧대어 채우는데 보름이 걸리는 달, 어쩌면 우린 너무 빨리 달리는 일에, 남을 추월하는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내 자신보다 남을 비교하면서 행복의 시간을 허비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내 아이가 일등하지 않으면 초조한 나머지 부모자신은 물론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일도 스스럼없이 자행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보기도 합니다.

저 달처럼 조금 더 기다려주고, 조금 더 양보해주고 배려해준다면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자신은 빛나지 않지만 태양의 온기를 받아 어둠의 시간을 밝혀주는 달처럼...

유년시절부터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어둠의 자식으로 전락해 범행을 저지르는 수많은 아이들의 뉴스를 접하며 차가운 가슴을 비추어 데워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 혹 채우기에만 급급해서 넘치는 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그릇을 크게 만들지는 않고 오로지 채우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비워내야 채워지는 것이 극명한 이치일 텐데 우리는 그렇게 욕심 한가득 짊어지고 무겁게 오늘을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멈춰서서 더 자세히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달빛에 나를 비춰봅니다.

갑자기 어린시절 달을 피해 도망다니며 울던 기억이 비칩니다. ‘저 달은 왜 자꾸 나만 따라오는 거지?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왜 자꾸 나만 졸졸 따라 오는 걸까?’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엄마한테 이를 생각으로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시합때보다 더 빨리 달렸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나 먼저 달려와 버젓이 내 머리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 달을 미워한 기억이 스쳐갑니다.
각박한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게 달을 피해 동동 걸음쳤던 추억하나쯤 달아주고 싶은 마음 간절해집니다. 그러면 오늘을 사는 우리아이들의 세상은 달빛처럼 둥글고 환할까요?  얼마전 라디오에서 놀라운 방송을 들었습니다.

‘오늘 시험망쳤어’‘괜찮아 다음번에 잘 보면 돼’ 이 대화는 분명 친구나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여겨질텐데 믿지 못하겠지만 인터넷사이트에서 유행하는 대화라고 합니다.

순간 나는 무거운 뭔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메말랐다 해도 이런 대화조차 나눌 대상이 없다는 것과 그런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의 작은 세상에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숙연해졌습니다.

말로는 세상을 품에 안을 만큼 큰마음으로 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막상 호연지기를 키울 시간조차 없이 가파른 초침소리에 맞춰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조금은 느려도 따사로운 햇살과 어깨싸움도 하고, 토끼가 방아찧는 달그림자도 느껴보면서 저 달처럼 고고한 빛으로 세상을 아우르는 아이들이기를 바래봅니다.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덧 내 상념이 지워지는 달 모서리 어디쯤에서 평온이 찾아듭니다.

이토록 여유도 없이 걸어왔던 길, 이 얼마였던가. 내 삶에 여백이 없었던 지난날을 불러 잠시 쉬게 합니다. 내가 허비해버린 시간들을 잠시 달빛에 말리는 동안 새로운 시간들이 차오릅니다.

은은하게 차오른 달빛노트 위에 일기를 씁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새봄에 움틀 소망하나 피워달라고’ 이렇게 달의 일기장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세상은 조금씩 아름답고 밝아지겠지요

돌아오는 길 삐끗하였으나 다행히 달님이 받아주었습니다. 소설가 박상룡 선생님은 ‘아름답다’를 ‘앓음답다’라고 표기하셨습니다.

앓음의 흔적이 많은 사람이 곧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뜻일 테지요. 많이 앓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달님에게 빌어봅니다. 천년을 일그러져도 변함없이 웃고 있는 달빛처럼.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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