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기적
1℃의 기적
  • 울주일보
  • 승인 2016.02.04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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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우리설이 오늘이고 까치설이 내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까치에게도 질투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작은설을 까치설이라고 했을까요?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하여 왕을 해치려 했으나 까치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위기를 모면 했습니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십이지에 드는 동물로 그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하는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설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설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설 풍경이 창밖의 하늘에 그려집니다. 동네어귀에서는 전쟁이라도 난 듯 펑펑 요란한 소리가 호떡집에 불 난 듯합니다. 동네사람들은 콩 한되박, 쌀 한되박, 더러는 깨한되박씩 들고 나가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섭니다.

동네 꼬마 녀석들은 산고를 겪고 튀어나온 튀밥을 주워 먹느라 해지는 줄도 모릅니다.

설이 가까워질수록 어머니의 허리는 펴 질 새가 없습니다. 인내와 사랑이 삶 자체인 어머니는 온 가족이 먹을 음식 준비에 밤을 지새웁니다.

밝고 건강한 한 해의 소원을 담은 순백의 가래떡을 썰고, 산은 내려와 어머니의 도마 위에서 산나물이 되고, 바다는 어머니의 손끝에서 비늘을 털어냅니다. 어머니가 새로 사 온 설빔을 설전에 입어보려다 혼쭐이 나기도 합니다.

설날이 되면 가족, 친지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며 세배를 하고, 빨리 한 살 더 먹고 싶은 아이들도, 나이 먹는 것이 서글픈 어른들도 떡국을 먹으며 행복한 한해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고, 정성들여 새해소원을 담은 연을 하늘높이 날려 봅니다.

그 때 날린 연은 지금쯤 지구 어딘가에서 소원을 읽고 있지는 않은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개처럼 희미해진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컴퓨터 기계음 소리로 소통하고, 청년들은 겨울한파보다 더 힘든 고용절벽이라는 벼랑 끝에서 까치소리도 듣지 못하고 설날마저 기다려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도시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고향이나 튀밥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나 검색해야하는 낯선 설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 연휴는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인파들로 붐비고, 설음식은 전화 한통에 집으로 날아옵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나 봅니다.

아무리 편한 세상이라 해도 고운 추억까지 덮어 버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어디선가 고운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언제 피었는지 거실 한쪽에 놓여있는 춘란이 기다란 꽃 대궁 두 개를 밀어 올려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지요. 잠시 바쁘다는 핑계로 난이 있는 줄도, 물을 언제 주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의 집은 난 꽃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잊고 물을 주지 않은 사이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외로움의 끝, 그 절정에서 말라버린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동안 삶의 본능이 아니라 생의 무게가 무엇보다 버거운 그 분들을 우리는 잊은 채 살아갑니다.

아낌없이 모든 것 다 내어주고 나니 세월 밖으로 밀려나 설날이 다가와도, 집 밖에 까치가 울어대도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어 겨울은 더 시리기만 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사는 그 분들은 한줌의 햇살이 얼마나 그리울까요?

또한, 가진 사람들은 많은 것 쥐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작은 것 잃고도 세상 다 잃은 듯 각박하게 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사이 혼자 피어난 춘란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물을 주면서 어느 시인의 한 구절을 떠 올립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가지만 도착하는 곳은 같다’고 했듯이 올 한해, 가는 방법은 달라도 가진 사람, 가난한 사람, 배운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저 춘란의 향기처럼 살며시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텅 빈 누군가와 가슴을 나누며 함께 간다면 지구 한 모퉁이마저 따뜻해질 것입니다.

발을 따뜻하게 하면 1℃의 체온이 올라가고, 내복을 입으면 3℃가, 목을 따뜻하게 하면 5℃의 체온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 무려 10℃ 이상 행복의 체온이 상승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온도가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지 우리는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다가오는 설날은 가슴 한켠 숨겨둔 사랑까지 꽃피워 한복의 곡선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명절이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특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경제 상황 속에서 마음의 온도 딱 1℃씩만 데워 온 누리에 춘란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기적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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