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로
어떤 위로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6.03.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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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신문]아버지 지게에 올라 앉아 아리랑 곡조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집으로 향하는 길은 고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아직 가시지 않는 ‘귀향’의 먹먹한 여운을 안고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 들으며 산사에 오릅니다. 그 경이로운 소리는 내 몸의 세포를 깨워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기에 충분합니다.

요 며칠 꽃샘추위 때문인지 가뜩 부풀었던 나무와 찬바람의 힘겨루기를 느끼면서 산사에 도착할 쯤 반가운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리려는지 까치소리가 기분 좋게 들립니다.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보니 까치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보다도 긴 나뭇가지를 물어와 총총히 걸치고 단단하게 기초공사를 합니다. 그 위로 서로 어긋나게 나뭇가지를 끼워 넣으며 강풍이나 폭우에도 끄떡없을 보금자리를 한 뜸 한 뜸 정성들여 엮고 있습니다.

반가운 손님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려는 배려로 높은 곳에 집을 짓는 마음은 봄 햇살을 닮았습니다. 보름쯤 후면 적당한 바람과 빗물이 잘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사랑과 정성을 담아 소박하지만 행복한 보금자리가 완성되겠지요.

아마도 그들은 남쪽으로 창을 내어 얼마만큼의 햇살을 들이고 하늘을 소유해 태어날 새끼들에게 둥지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작고 소박한 집에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며 웃음 또한 잃지 않습니다.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만큼이나 까치의 집짓기 공사는 감동에 젖게 만듭니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사람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할 따뜻한 위로를 받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올라갈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더 자세히 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얼었다 녹은 질펀한 길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러지지 않고 내려 갈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제 한 몸 불태워 알몸이 될 때까지 추위를 밀어내 주는 연탄처럼 공허한 마음에 새삼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님의 시 구절처럼 그는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가슴이었으리라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넉넉해집니다.

3.1절을 보내면서 산기슭의 까치소리에 위안을 받고 내려오는 길, 누군가의 고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연탄재를 밟으며 뇌리를 붙잡고 떠나지 않는 위안부들의 절규가 들려옵니다.

아직도 위안을 받지 못한 채 원혼으로 떠도는 20만의 꽃다운 소녀들을 대신하여 영화 ‘귀향’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어린 소녀의 몸으로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온갖 잔혹한 폭행으로 상처받고 일본군의 매춘부라고 매도당한 채 평생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치유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위안은 정녕 요원한 걸까요? 아직도 가해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당시 13살에 끌려간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편지에 ‘엄마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 만나는 희망 하나로 살아 왔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렸어요. 막혀 버렸어요. 엄마 우리 꼭 만나요.’ 먼 이국땅에서 88세 할머니가 보낸 편지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돕니다.

내려오는 길, 얼었다 녹은 언덕에 살포시 고개를 내민 제비꽃을 보았습니다. 겨우내 어둡고 칙칙한 흙을 떨쳐 내고 이른 봄볕으로 보상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자연에게서 또는 사람 속에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아름답고 감사한 눈으로 본다면 세상 모든 것이 고맙고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절규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언 가슴은 어떻게 달래야 할까요?

우리는 그 분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어 드려야 할까요?

그분들은 몸서리치도록 아픈 기억을 절대 잊을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분노보다 위로가 되어 연탄재처럼 타 버린 마음이 찔레꽃처럼 하얗게 되살아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난날의 춥고 어두웠던 기억들, 그리고 함께 돌아오지 못하고 원혼으로 남은 그 분들의 영혼만은 둥지로 돌아와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3.1절을 보내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울려 퍼지는 ‘아리랑’의 플래시 몹 (flash mob)이 그 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디 그분들의 아픔에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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