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천 개의 바람이 되어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6.04.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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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신문]어찌 놓아버린 가지를 원망하랴. 허공에 벗어던진 하얀 몸짓들, 애태우던 창공에 흩뿌려놓고 하늘하늘 4월의 대지 위로 사라진다.

꽃잎이 떨어져도 낙담하지 않는 나무는 애써 태연한척 연둣빛 치마로 상처를 가린다.

지난겨울, 혹한을 견디어 내어서 꽃잎은 더욱 붉은 것일까? 꽃잎 떨친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 애잔한 것은 또 왜일까?

이른 봄 시린 눈발에서 피어난 꽃은 무엇보다 일찍 열매를 단다. 한차례 꽃 몸살을 겪은 후 천천히 피어나는 배나 사과 꽃은 붉은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계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떠나보내고 다가온다.

꽃잎 떨친 나뭇가지마다 수천수만의 연둣빛 손을 내밀어 잡아 달라고 바람에게 조르는 모양이 마치 돌 지난 아기가 일어서려고 손을 내미는 풍경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1차 세계대전 후 황폐한 땅에서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을 보고 평화와 희망을 바라는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4월은 새싹의 탄생이고, 화려한 꽃의 만찬이며, 형형색색의 옷차림이건만 까닭모를 먹먹함이 가슴 한켠 잔인한 달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304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만으로 충분히 가슴 아픈 달이다.

온 국민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유가족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진실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로 몇몇은 차디찬 바다 속에서 애타게 영혼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악몽 저 너머로 타이타닉 침몰이 오버랩 된다. 타이타닉의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는 물이 차오르는 선장실에서 끝까지 방향키를 잡다가 목숨을 잃었고, 배의 악사였던 하틀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승객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고 한다.

세월호도 그랬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제자를 구한 선생님들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한 많은 희생자들도 있다. 그들은 극한의 공포 속에서 타인의 목숨을 구하고 꽃이 되어 산화했다. 우리는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아름다운 용기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세월호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우리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천에 연산홍, 철쭉이 붉은 꽃잎으로 우리를 눈부시게 하지만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자꾸만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거리를 거닐 때면 꿈 많은 청춘들의 구원인 듯 연둣빛 가지가 바람에 팔랑인다. 지난 날 떨쳐버린 꽃잎의 아픔을 지워버리려는 듯 안간힘을 쓰며 몸부림치는 듯하다.

그러다 무심결에 잊혀가는 기억을 부추겨 우리의 망각증에 소리 없는 파문을 일으킨다.
때론 망각이란 참 편리한 기능이어서 인간사 아무리 힘들거나 좋은 일이라도 이렇게 속절없이 흘려버릴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4.13 총선도 끝이 났다. 당선된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와 더불어 믿고 지지해 준 것에 대해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 한다. 그 승리의 외침이 일회성 이벤트나 당리당락이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고, 희망을 주며,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진정한 일꾼이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망각보다 앞선 자각으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국민이 안심하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진심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연둣빛 이파리처럼 꿈 많은 청춘들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느낀다.

며칠 지나면 자벌레도 희망에 부풀어 푸른 신록 위로 활보할 것이다.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자벌레처럼 신중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천개의 바람이 천개의 바램이 되어 앞으로 맞이하는 4월은 치유와 희망, 그리고 편안한 안식이길 바라는 마음 바람결에 실어본다.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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