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동행
  • 이두남
  • 승인 2016.05.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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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신문]새하얀 면사포를 걸치고 입장하는 아카시아 꽃 잎 사이로 바람이 일면 뽀얀 이빨 드러내고 웃는 오월을 만난다.

잉잉거리는 벌떼처럼 손을 잡고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했던 짝사랑 그 아이가 온 몸에 베여 그날의 회상에 잠긴다. 보잘것없이 딱딱한 각질의 나무, 어느 여인의 영혼인지, 이토록 가냘픈 잎을 달고, 뽀얀 피부의 향기를 지녔는가?

작은 손가락 끝으로 나뭇잎 튕기며 한걸음씩 나아가던 유년 시절의 하교 길이 청사진처럼 펼쳐진다.

바람 한 점에 쉬이 흔들리면서도 힘든 내색 않고 하얀 꽃잎 피워 내고 또 떨구며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이 나를 반성하게 한다.

아카시아 향기 머무는 언덕 아래로 모내기 준비에 한창인 논에는 개구리 소리가 정겹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농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모판의 파릇한 모를 이양하고 추수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우리의 밥상에 닿을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 작은 기쁨이라도 얻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족 모두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서로 온기를 불어 넣을 때 비로소 행복이 스며든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행복을 한 번 더 생각 해 보게 된다.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삼백예순날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것이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간 사이 큰 딸이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아내가 또 줄여 버렸지 뭡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했다.

다음날 아내에게 옷을 가져 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은 아내에게 “내가 어제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 딸은 도끼눈을 하고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니? 왜 시키는 대로 안 해서 나를 욕먹게 하니.”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 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 하며 소리 쳤다.

이 모습을 지켜본 형은 그때서야 자기의 집에는 왜 항상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작은 일도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집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가정은 자기 일 외에는 관심도 없고 힘든 일은 서로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하다.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그리고 가장 낮은 소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픔을 보듬어 주는 일이 인간성 회복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다.

요즘 백세시대가 도래되면서 웰 에이징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기존 결혼제도의 틀을 깨고 졸혼 (卒婚, 소쓰콘) 이 늘고 있다고 한다. 조금은 낯 선 이야기이지만 이혼도, 별거도 아닌 각자의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졸혼을 찬성하는 부부가 많다고는 하나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산기슭 아카시아 꽃향기에 아련히 젖는 동안 윙윙대는 벌떼소리가 오늘따라 더 크게 들린다. 아카시아 꽃과 벌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서로의 등을 내어주며 기댈 수 있다면 삶은 행복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먼 훗날 지금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아름다운 동행이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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