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
  • 이두남
  • 승인 2016.06.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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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신문]한 번도 비틀지 못했던 빳빳한 일상을 부려놓으러 바다로 갔다.

하얀 포말로 풀려버린 풍경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느슨한 시간, 몸에 잘 맞지 않는 공간들로 더 숨 가쁘게 했던 나날, 바다로 부치는 느린 우체통에 나에게로 보내는 편지를 띄운다.

바람결에 갓 피어난 해국을 보며 그간 쓸모없는 소리를 담느라 정신의 풍화작용 얼마였던가?

시간의 흐름이 파도를 닮았을까? 달력 한 권을 헐었더니 벌써 반을 훌쩍 넘긴다. 누군가가 등이라도 떠밀고 있듯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호기심과 목마름으로 세상은 늘 새롭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많은 부분이 채워지고 접하면서 현이 늘어진 바이올린 연주처럼 권태로움이 밀려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세상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도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느 날 문득 권태로움이 엄습해 오면 한없이 작아지고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기에 비상구를 찾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미국 센프란시스코 남쪽에 있는 로스알트힐이라는 곳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50여 마일의 거리에 우편물을 배달하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있을 때나, 구름이 덮여 있을 때나 그는 정해진 50마일을 왔다 갔다 해야 했으므로 자기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수심에 잠겼다.

한평생을 50마일의 아름답지도 않은 황량한 길 위에서 마감 할 것을 생각하니 처량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 날 어차피 이 길을 매일 다녀야 한다면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랜 생각 끝에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들에서도 잘 자라는 꽃씨를 사서 매일 다니는 길 중간 중간에 뿌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내자 그가 다니던 길 양쪽으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해마다 계절을 따라 여러 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고 그는 은퇴 할 때까지 아름다운 꽃동산 길목을 다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조금은 낯설게 만들어 스스로 내 안에 활력을 불어 넣으면 삶이 한층 더 기쁘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맨케이브 즉 남자의 통로라고 하여 남자가 간섭받지 않고 취미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서재나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마련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취향과 선택이 존중되고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남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전자제품, 주방, 인테리어 등 하루가 다르게 여성의 편리성을 제공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는 시대에 남성의 탈출구인 셈이다.

결코 짧지 않은 인생, 잠시 휴식의 공간을 내 안으로 들여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과 공간을 갖는다면 남은 여정이 한층 더 행복해질 것이다.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전 우주)를 다 준다고 해도 내 몸 하나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비록 팍팍한 세상,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살아있는 지금 이 시간은 우주를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감사한 마음은 물론 이 일상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는 것도 소중할 것이다.

가끔 헤어짐과 만남의 틈새로 이어진 카페에 들러 내 가는 길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에머랄드빛 지중해 햇살이 피어오르고, 창 너머 바다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해맑은 해국처럼 힘든 날에도 웃으며 잘 견뎌왔다는 듯 쌉쌀한 커피향이 온 몸을 감싼다. 풀어진 시간들이 철썩 나를 재촉한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잘 걸어 왔다고 토닥이며 달라진 내 모습과 벗이 되어 길을 재촉한다.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이 길을 따라 나선다. 한 해의 반환점을 돌아가는 즈음, 지난 온 길은 반성과 격려를,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희망과 용기를 듬뿍 불어 넣으며 힘찬 발걸음 내딛었으면 좋겠다.

소소한 행복들을 나에게로 초대하면서...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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