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 이두남
  • 승인 2016.12.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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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논설위원

차가운 벽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을 12월의 달력이 나를 바라보며 한 해를 갈무리 하고 있다.

한 장씩 찢겨 나갈 때 마다 기쁨과 후회가 교차했을 시간, 그 소리 들으며 가슴 두근거렸을 것이다.

한 해의 소원을 빌며 새벽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해 뜨는 바다로, 해가 잘 보이는 산으로 달려가 바라보던 신년 첫 날의 해와 달리 마지막 날의 해는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지난날의 단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신춘의 날 부푼 꿈에도 가장 먼 곳에서 묵묵히 기다렸을 시간이 어느덧 일 년을 헤아리며 한 장의 수명만으로 남아 있다. 
 
희망의 빛으로 가득했던 내 우주 어느 한 페이지인 듯 만나고 싶었던 시간을 하얀 캔버스에 낙서처럼 그려 넣었던 지난 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도 거기 있었고, 가끔은 오랫동안 친숙하게 걸어왔던 길 위로 다시 걸어온 듯 진부한 내 발걸음이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낯선 길로 접어들어 뒷걸음질 치던 모습도 그려 넣었다.

지금 그 캔버스에는 명암도 흐리고 원근도 잘 잡히지 않는 혼탁한 색채로 덧칠했는지 사유의 편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에 휑한 바람마저 꾹꾹 찍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허리춤이 시려 오는 한해의 끝자락, 남은 날을 잘 마무리하여 희망찬 새해를 만날 준비를 할 때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하얀 달력에는 무슨 꿈을 그려 넣을 수 있을까? 모든 시작에는 끝이 기다리고 있듯 모든 끝 또한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티브 테일러는 ‘제 2의 시간’에서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간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법을 전하고 있다.
시간의 심리학 법칙은 나이가 들수록, 몰입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자아를 초월하는 순간 시간은 빨리 흐르며, 세대마다 느끼는 체감속도 또한 다르다.

20대가 느끼는 인생의 속도는 20km, 60대가 느끼는 속도는 60k로 달려간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 더 많은 것들을 경험 해 보고 싶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 때가 좋았지’ ‘좋을 때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좋을 때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실패를 하여도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가 주어지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수록 재도전의 시간은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 먹듯 점점 줄어든다. 상대성 원리는 시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이 듦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세간의 모든 것에서 조금 더 초연해지고 더 넓고 깊어진 성숙함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때때로 시간의 제약 속에서 초시계 소리처럼 숨 가쁘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궁금증과 기대감, 그리고 기다림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열두 달의 달력이 여백을 채워가듯 삶의 의미를 채워가는 시간 속에서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은 많이 웃고, 나날이 상큼하고, 오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찬 바람 앞에서도 꺼질 줄 모르던 촛불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동시에 촛불에 담은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역사에 반영해야 할 당위성 또한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이른바 세간적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위대해지자고 마음먹은 사람은 적다.

이 시기에 인간으로서 위대한 인물이 세상의 숨은 소리를 듣고, 그늘진 곳까지 밝혀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2월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해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지나 온 시간의 발자취를 담아 삶의 무게마저 느껴진다.

그 많은 발자국의 행보와 그 많은 꿈들이 어느 틈새로 스며들었는지 반추해 보는 시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 중 열심히 살 수 없는 날은 단 이틀뿐이다. 바로 어제와 내일이다.

오늘은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살아 갈 수 있는 값진 선물이다.

우리에겐 다시 꿈꾸어도 좋을 오늘이 있다.

수수께끼 풀 듯 우리의 작은 꿈 조각들을 엮어가는 마지막 달력이 희망과 미소로 가득 메워 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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