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백년의 신화
이중섭, 백년의 신화
  • 이두남
  • 승인 2017.02.28 1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두남(논설위원)

[울산시민신문]실제의 기온보다 마음의 온도가 더 시렸던 겨울이 어느덧 뒷모습을 보인다.

그자리에 한 뜸, 한 뜸 따사로운 햇살이 열매를 꿈꾸는 꽃을 피우며 산과 들에 봄소식으로 꿈틀거리게 한다.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 중, 맨 앞자리에서 봄소식을 전하는 것이 매화다.

퇴계 이황은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불의에도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선비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지금처럼 혼탁한 시대에 새겨 담아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매화 꽃망울이 봄 내음을 자극할 무렵,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희망차고, 행복하고, 절망적이었던 그의 인생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일대기를 담은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회에서다.

전쟁, 식민지, 분단, 가난 등으로 얼룩져 암울했던 시기에 그는 예술혼을 불태우며 정직한 화공이 되기를 소원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우리 민족의 상징인 ‘소’를 서슴지 않고 그리며 한없이 암울한 현실에서도 저항과 용기, 희망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평범한 그림이 감동으로 반추되는 것은 한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떠돌이 외로운 인생이지만 그의 행복한 미소는 가족애의 간절함이 묻어 있는 것 같아 가슴 한 켠 먹먹하기도 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삶이 작품 대부분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이름으로 순응하고 서로에게 호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작품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만남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비록 암울한 현실이지만 한 때 행복했던 날의 추억과 갈망을 강렬한 의지로 작품에 투영시켰다.

‘길 떠나는 가족’은 달구지에 한 가득 가족을 싣고 평화로운 곳에 정착하고 싶은 그의 심정을 담은 그림으로 그토록 보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천사 같은 아내 미사코를 그리며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달구지를 끄는 풍경이 더 애절하게 다가왔다.

어디를 가야 가족을 만나고 지친 소를 쉬게 할 수 있을까? 어디를 가야 잘 생긴 발가락의 아들과 함께 놀아주고, 못내 애달픈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달구지에 올라탄 그의 가족은 함박웃음이고, 춤추며 소를 끄는 그의 모습은 꿈에 지나지 않았다. 가족과 만날 꿈은 요원했다.

현해탄 저 너머 주고받은 편지만 먼지처럼 쌓이고 은지화에 그려진 아이들 발가락만이 담배 연기로 아련히 피어올랐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이용하는 것으로 반짝이는 표면효과가 독창적이다. 이 기법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나 금속공예 기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한국의 전통 미감이 발현된 민족의 화가이기를 소원했다.

원산폭격을 피해 남하하여 부산, 제주, 서울을 전전하며 민족의 한을 그린 순박한 화공, 분단 조국이 어찌 그의 몫이었던가.

사랑하는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을 원망하는 듯 바닷게는 그의 속내를 꽉 집고 끝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오일 페인팅 화폭 위에 가족을 올려놓고 얼마나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었을까?

결코 길지 않은 그의 나이 40, 정신 환란이 그를 데려가기까지 꿈속에 그려온 가족들을 화폭 속에서나마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담배 연기 속에 사랑하는 아내를 또 얼마나 많이 피워 올리며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팔아 돈이 모이면 만나러 가겠다고 수없이 되뇌었던 그 약속, 끝내 지키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의 달구지는 가족 한가득 싣고, 한민족이 하나로 뭉쳐 춤추며 길나서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결국 만나지 못한 가족, 화합하지 못한 민족의 아픔을 억누르고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화폭에 담았다.

우리 민족의 투지와 불굴의 의지를 담은 붉은 황소, 멀리 일본에 떠나보낸 가족과의 만남을 그리며 보낸 편지 그림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식민지에 이은 분단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예술가의 혼을 담아 낸 그의 영혼은 혁혁히 되살아나 우리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고 감동 그 자체였다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진실로 새로운 표현, 진실로 위대한 표현을 끝없이 하겠다.’ 던 그의 말이 매화 꽃망울에 알알이 맺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