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피어나는 천전리의 봄
꿈처럼 피어나는 천전리의 봄
  • 이두남
  • 승인 2017.03.15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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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남 논설위원

[울산시민신문]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두 개의 꽃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바로 ‘ㅂ’과 ‘ㅁ’이다. ‘ㅂ’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과 환경이 어우러져 피어나는 세상의 꽃밭이고, ‘ㅁ’은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가꾸는 꽃밭이다.

마음속에 가꾼 아름다운 꽃밭이 세상의 커다란 꽃밭을 가뿐히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나쁜 마음을 가지거나 걱정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꽃이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핀란드에는 “낡은 말뚝도 봄이 돌아오면 푸른 잎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봄에는 부지깽이도 꽂으면 싹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낡은 말뚝이나 부지깽이까지 새싹의 꿈을 꾸게 하다니 봄의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봄을 기다리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긴 긴 겨울을 기다려도 봄은 쉬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른 봄에 피는 매화꽃이나 제비꽃을 보면 감동이 더해지는 모양이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시샘을 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남녘바람에 매향이 실려 오는 봄날, 또 하나의 감동을 만나러 천전리에 갔다. 천전리 계곡으로 이어진 크고 작은 공룡 발자국, 일억 년 전 어느 날로 들어선 내 발걸음은 공룡이 간 길을 따라 걸었다. 육중한 몸 이끌었던 언덕길에 공룡처럼 내가 걸어갔다.

영겁의 시간을 넘어 온 발자국마다 그날의 무상함을 이겨낸 기상이 역력했다.

바람은 그때의 바람인 듯 오늘 종일 불어댔고, 강물은 그때의 물줄기인 듯 오늘 종일 흘렀다. 그들에게 놀이터였던 바위는 온종일 움푹 패인 채 말이 없었다.

그들이 숨쉬고, 물장구치며 놀던 계곡은 기다림에 익숙한 듯 그대로이다. 인장처럼 찍힌 발자국은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 올 것만 같이 선명하다. 몸 부비며 놀다 잠들었던 바위틈엔 그 때 그 풀이 자라고 그 나무들이 움트고 있는데 돌아오는 길 잃어버렸는지 그들의 포효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을 안아 재워주고 놀아주던 바위의 기다림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문신처럼 패인 흔적은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인양 먹먹하다. 그 때 그 상처 사위어지지 않았으리라. 언제 이곳을 지나칠지 몰라 밤, 낮 묵묵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 같다.

70톤 몸무게로 대곡천 기슭에 놀다 밤이 오면 이 곳 바위에서 별을 안고 잠들었으리라. 아기 공룡은 엄마 품에서 물소리 바람소리를 자장가로 여기며 잠 들었으리라.

백악기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추위의 방하기란 터널에 갇혀 온 몸이 얼어버린 날, 이들을 보듬고 있던 바위는 밤새 뜬 눈으로 지새웠을 것이다. 바람도, 물줄기도 그들을 감싸 줄길 없어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천전리에서 꾸는 꿈처럼 내 가슴 어딘가 싸늘한 빙하기가 지나갔다. 그들을 몰아 다시 돌아가려고 애를 써도 뚝뚝 발자국만 따라왔다.

그들이 남긴 가마솥 같은 발자국에 내 발을 디뎌본다. 어디선가 뿌우웅~ 소리를 내며 다급하게 달려올 것만 같다. 자기들의 놀이터를 침범했다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꺼번에 우루루 몰려 들것 같아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계곡 끝까지 도망을 쳤다.

이윽고 개울건너 맞은편에서 병풍처럼 반듯이 펼쳐진 각석과 마주했다.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라인들을 만났다. 한 여인이 처음 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찾은 이 골짜기를 서석곡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벗들이 모여 문학과 사랑을 이야기 하던 이 자리에서 바위벽에 새긴 글과 그림은 별이 명멸 할 때 까지 그들의 푸른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었을 것이다.

그들을 훔쳐보던 달빛은 미끄러지듯 내려와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씻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들이 놀고, 사랑하고, 공부 하던 그 자리, 오늘은 역사기행 몰려 온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기심을 발동하며 각자의 발자국을 찍고 있다.

언젠가 이 고독한 발자국과 각석의 주인이 이른 봄의 새처럼 고요히 찾아들 때 저 바위도, 계곡의 바람도, 물도 서로의 물음에 대답하며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일억 년의 시간을 거슬러 갔던 내 발걸음은 어느덧 여행 끝에서 새봄을 맞는다. 소생의 힘으로 가득한 봄의 힘을 빌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온전히 보존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원 소망 탑 점등 행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은 유네스코 잠정목록으로만 등재되어 안타까움을 더하지만 문화적, 교육적 가치가 매우 높은 우리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상춘이 고귀한 것은 인동이 있어서다. 향기 없이도 피워내는 매화의 섣부른 호기 앞에 언제나 떠나보내는 그 길 끝에는 처절한 자연의 문향이 서려있음을 느낀다.

봄처럼 부지런하고, 나무처럼 꿈꾸고, 꽃처럼 새로워져 마음도, 세상도 아름다운 꽃밭으로 피어나 사람들 사이에도 향기가 나는 봄이 오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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