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대한 판타지
봄에 대한 판타지
  • 이두남
  • 승인 2017.04.0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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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남 논설위원

[울산시민신문]올 봄은 절름발이처럼 느리게 찾아왔다. 역대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 구속 적부심사 등으로 설렘과 기쁨의 맥박은 흐려지고 냉엄한 바람이 더욱 가슴을 조이며 더디게 다가왔다. 

그래도 어김없이 산기슭에 보일 듯 말 듯 제비꽃은 피고 아침 식단에서부터 봄 내음이 가득하다. 달래며 냉이, 쑥과 미나리 등이 각자의 향기를 품으며 마음에서 몸으로 전달되어 봄기운으로 샘솟는다. 

봄은 길을 가다가도 향내 나는 것과 눈부신 것은 다 훔치도록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소곤소곤 서로의 꿈을 속삭이며 움트는 새싹, 예컨대 꽃잎 지고 엄지손톱 만하게 돋아나는 어린잎의 유향, 또 그런 경이로움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일 것이다. 

어느 틈에 데려다 놓았는지 밤새 날아든 반가운 엽서들도 있다. 소리 없이 내려 더 반가운 봄비다.

오랫동안 잠들었던 대지와 딱딱한 가지 끝의 몽우리를 두드려 깨우고 봄의 상찬을 준비하는 듯하다.

홍매며 산수유, 진달래꽃이 익숙한 문장으로 빗장 걸린 내 가슴을 열어젖히고 넘나든다.

한 계절 피었다 가는 길목마다 다 품지 못한 색색의 꽃말들이 연둣빛 잎새로 돋아나는 형상이다.

봄이 왜 몸살로 드러누웠는지 꽃이 봄의 온갖 통증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간다.  

어느 간절함에 피어올라 내 심연에 뻗었던 꽃말들을 헤아려 본다.

그 때는 얼마나 흔들렸던가. 

순백의 원피스 펄럭이며 저 혼자 피어난 하얀 목련꽃, 바람과의 언약이었는지 홀연히 떠날 준비를 한다.

봄의 식단은 특별하다. 한 때 진달래꽃, 찔레꽃, 아카시아 꽃이 음식이었던 때가 있었다.아무리 따 먹어도 배고팠던 시절이다. 아스라이 멀어져간 옛 이야기이지만 그 때의 그 꽃잎들은 푸른 들녘을 수놓으며 색색의 꿈과 희망으로 이어져 있었다.

비록 산과 들을 벗 삼아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견뎌 왔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풍요속의 빈곤으로 살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사교육과 친구 되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몸과 정신이 지쳐간다. 봄이 어디로 새어 나가는지 꽃이 어느 길목으로 피어나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노래하던 한 구절은 한 낱 꿈에 불과하다. 

풍요로움 속에 짓눌린 아이들의 텅 빈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왕성하게 솟아나는 봄의 에너지를 보면서 피어나고 싶은 우리 아이들의 욕구 또한 저 꽃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봄비처럼 가슴 촉촉하고 봄꽃처럼 환한 모습으로 깔깔거리며 마냥 웃을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젊음은 그렇게 밝고 건강해서 무엇보다 값지며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이 있기에 부러운 것이다.

혹한의 바람을 이겨내지 않고 피운 꽃이 없듯 현실의 고난을 이겨 내지 않고는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없다. 이 현실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긍정의 에너지로 그 공간을 가득 채워 그들의 가슴에 봄꽃의 향연처럼 꿈과 희망이 부풀어 오르기를 바란다. 

꽃도 사람도 누구나 자신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앵매도리의 원리처럼  각자의 맛과 개성을 살리고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뽐내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의 묘약을 흩뿌려 놓아 바람마저 물들일 것 같은 봄이다. 우리들도 이 봄에는 젖은 꿈들을 봄볕에 말려 존재의 향기를 드러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절름발이로 찾아 온 봄이지만 녹색의 들숨과 날숨으로 봄의 생명력이 꿈틀대듯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봄이 가슴속 깊숙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 식단이 입 속에서, 가슴속에서 향긋한 봄 내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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