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단 테
안 단 테
  • 이두남
  • 승인 2017.04.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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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남 논설위원

약육강식의 치열한 생태계에서 ‘느림’을 자신만의 특별한 생존방식으로 삼은 달팽이는 자기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는 제비꽃은 절대 뜯어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앞만 보고 달려온 길 잠시 멈추고 달팽이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살고 싶어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번쯤 속도를 늦춰 채우는 삶보다 비워내는 삶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속도를 지칭하는 빠르게는 우리 국민의 유전자에 깊숙이 스며들어 늘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 배경 속에 살아왔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가난과 폐허에서 헤쳐 나온 베이비붐 세대가 헌신의 노력으로 이룬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중동 신화라고까지 불리던 수많은 도로, 정유공장, 항만, 교량 등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밤에도 불을 밝혀가며 공사 한 나머지 공기를 맞출 수 있었다. 이는 강인한 정신에 이어 신속함의 힘이었다.

전 세계에서 쇠 젓가락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민족으로 손동작이 능숙한 양궁은 신궁으로 불리고 재빠른 손기술은 국제기능올림픽 재패로 빛을 더했다.

이런 빨리 빨리의 힘은 우리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켜 초고속성장과 더불어 선진국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를 짧은 기간에 하다 보니 그에 따른 문제점도 많이 발생했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등은 무조건 빨리만 하는 겉치레의 부작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빨리 빨리의 문화는 우리의 일상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먼저 계산을 하는가 하면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지 못해 닫힘 버턴을 몇 번이나 누르고, 녹색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앞차가 출발하지 않으면 경음기를 울려댄다.

또한 뜨거운 커피를 빨리 마시기 위해 차가운 물을 섞는가 하면 입으로 불어서 식혀 마시기도 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국제전화 국가 번호가 82인 것이 “빨리”의 상징이라는 말까지 생겨나 웃지못할 씁쓸함을 더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배달이 빨리되는 그야말로 배달민족이다.

배달음식을 운반하는 라이더는 거의 곡예에 가까운 수준으로 도로를 누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착시간이 조금만 지체되면 불평을 쏟아 내고, 심지어는 도착한 음식을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

빨리 배달되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속도 또한 빠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식사도중 말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하여 말없이 먹기만 했다.

식사시간이 15분 이내인 사람은 그 이상인 사람에 비해 위염 발생률이 2배 가까이 높다는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염 환자가 많은 것은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은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 8시간 씩 주 5일, 52주 이므로 약 4.8년이 경과되어야 1만 시간인데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다.

취미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하루에 4시간씩을 쓰면 10년, 2시간을 투자하면 20년이 걸려야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작과 동시에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포기하고 만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워 놓고 시간에 쫓겨 스스로의 시간을 갉아 먹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 해 볼 일이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을 저술할 때 첫 문장 하나를 쓰는데도 아홉 번을 고쳐 쓴 후에 만족했으며, 최고의 권위를 갖는 영어 사전을 완성하기 위하여 웹스터는 대서양을 두 번이나 건너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는데 36년을 소모했다고 한다.

또한 김훈은 ‘칼의 노래’ 첫 문장 ‘버려진 섬에도 꽃이 피었다’를 처음에 ‘꽃은’ 이라고 썼다가 길고긴 고민 끝에 ‘꽃이’ 라고 고쳤다고 한다. 조사 하나를 선택하는데도 오랜 시간을 고민한 흔적이 최고의 걸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본다.

지금의 우리는 무작정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빨리 성공하기 위해 고귀한 인생의 탑을 허술하게 쌓아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좀 더 끈기 있고 신중하게 쌓아갈 때 더욱 가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크고 작은 삶, 기다림과 느림은 순간을 영원으로 담아내는 숨은 비밀이며, 분주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사사로운 행복을 들이는 아름다운 몸짓이다. 이두남/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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