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에 담긴 술
질그릇에 담긴 술
  • 이두남
  • 승인 2017.06.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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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로마의 어느 공주가 얼굴이 못생긴 유태인 랍비를 만났다. 공주는 뛰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교만스러웠다. 그래서 랍비의 훌륭한 말을 듣고 감탄을 연발하면서도 못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했다.

“지극히 총명한 지혜가 아주 못생긴 그릇에 담겨 있군요.” 랍비가 이 말을 듣고 공주의 교만함을 고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주님은 왕이 마시는 술을 어디다 담아 놓나요?”

“그야 물론 항아리에 담아 놓지요.” 

공주의 이 말에 랍비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대로마제국의 위대한 왕이 금이나 은으로 된 그릇을 제쳐두고 어째서 그런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 담긴 술을 마신단 말입니까?” 라고 말했다.

“그도 그렇군요.” 하고 대답한 공주는 즉시 금, 은 항아리에 술을 담아 놓도록 명령했다.

며칠 후 신하들과 잔치를 벌이며 술을 마시던 왕은 술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신하를 추궁하였다. 신하는 공주님의 지시로 술을 금, 은 항아리에 옮겨 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왕은 즉시 공주를 불러 술 항아리를 함부로 바꾸어 술 맛이 변했다고 호통을 쳤다.

공주가 분한 마음에 랍비를 찾아가 따졌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공주님. 이제 아시겠습니까? 금, 은그릇이 아무리 좋아도 질그릇만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가장 귀중한 것이 가장 귀중한 그릇에 담겨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라고  

우리는 사람을 보는 잣대를 외모나 재산으로 평가하는 우를 자주 범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이며 인격이다.

최근에 서로 다른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한번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부당한 일을 당하여 금전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힘들어 하여 모 시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기 일처럼 몹시 안쓰러워하며 큰 힘이 되어 주었고 일은 잘 마무리 되었다.

그 후 인사차 찾아 뵌 적이 있었다. 그날도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들판에 피어 있는 야생화처럼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선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 누군가가 급하게 들어와서 몇 천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지갑을 열어 스스럼없이 돈을 내어주며 거스름돈은 꼭 가져와야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시민과의 격의 없는 소통에 그의 따뜻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관공서에 약속이 되어 있어 찾아갔으나 약속보다 인원이 한 명 초과되어 만나게 해 줄 수 없다는 씁쓸한 답변을 듣고 소통부재의 현실에서 시민들이 겪게 될 고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오랜 관습으로 고착된 상사에 대한 과잉충성의 태도라 생각하니 가슴 한편 애처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시민을 위한 열린 행정이란 구호는 오랜 관습에 억눌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듯 했다.

위의 질그릇과 술의 이야기를 비추어 볼 때  권위에 익숙한 공주의 행동이나 관공서 장의 구태의연한 권위주의가 시민에게 끼치는 영향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스스로를 도태시키고 말 것이다.

이처럼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한 계층 간 간극은 소통과 타협의 실종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으며 분열되고 반목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해 매우 안타깝다.

이러한 고착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변화의 단초가 마련되어야 한다.

진정한 권위는 막강한 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솔선수범할 때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한다.

유럽에서는 자전거로 출, 퇴근하는 장관들의 모습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권위와 형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사고의 틀에서 듣고, 흡수하고, 소통하는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통의 행보가 스며들어 자세히 보고, 가깝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만든다. 문제도 해결책도 사람이 만든다.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어리석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만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리더는 손이 세 개 있어야 한다. 오른손, 왼손, 그리고 겸손이다.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손이며, 스스로 몸을 낮추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

허리를 굽히면 진리를 줍는다고 했다. 작은 것부터 타인을 배려하고 겸손을 바탕으로 살아간다면 삶이 더 풍요롭고 삶의 질이 향상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귀를 열고, 눈높이는 낮추어 소통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한다면 한층 밝고 성숙한 사회 구현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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