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반고흐
불멸의 화가 반고흐
  • 이두남
  • 승인 2017.08.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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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장미꽃 바람 멈춘 그 자리에 청보라 빛 자태로 피어나 여름의 길목을 밝혀주는 수국, 흔하게 넘나들던 그 시절, 보릿고개 끝자락에 헛배 불러주던 고봉밥 꽃 사레로 다가온다.

시들지 않을 것 같던 한 자락 청춘의 꿈, 빈혈증 앓던 그 눈길도 지우며 폭염 속에서도 기다렸다는 듯 피워낸 그 자태가 거친 한세월 올곧기만 하다.

불멸의 화가 반고흐의 삶도 그랬을까? 숱한 고통과 좌절, 가난 속에서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었고 오로지 그의 꿈을 그렸다. 그리하여 그의 삶과 작품은 세기를 넘어선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오며 전 세계인의 가슴에 영혼의 화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자신의 꿈을 갖지 못하고 성장하는 청소년이 많다. 부모나 남의 눈을 의식한 나머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해 단지 취업만을 위해 다시 전문대를 입학하는 학생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창업을 하기보다 전공과 달리 안정된 월급쟁이 생활 수단으로 공취생에 몰리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청소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며칠 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의 ‘레플리카’ 체험전을 다녀왔다. ‘레플리카’는 원작과 가장 흡사하게 만든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비록 그의 원작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레플리카 전으로도 그의 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작품전은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섹션1은 작품초기로 네덜란드 농민화가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최하층민의 거친 생활을 정직하고 소박한 필치로 표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감자먹는 사람들’로 그의 작품가운데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섹션2는 파리에서의 수련기간으로 고흐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 중 한사람인 고갱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비록 고갱과의 만남은 짧고 불행으로 끝이 났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웠으며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의 시간이었다. 섹션3은 남부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로 100여점이 넘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시기이다.

자연에서 느끼는 빛, 강열한 색채가 그의 작품에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그 중 ‘밤의 카페’는 고갱과의 첫 만남의 장소이며 반짝이는 별과 흔들리는 나뭇잎, 부딪히는 술잔 소리에 매료되어 그린 작품이다.

특히 그의 수작으로 꼽히는 ‘해바라기’ 연작은 고갱을 기다리며 그린 작품이며 고갱과의 우정이 꽃피던 시기를 상징한다. 섹션4는 생 레미 병원에서의 요양시절이다.

그의 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로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고갱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해했다는 설도 있음) 요양치료를 받던 시절로 가장 어두운 시기를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내었다.

섹션5는 37세, 짧은 그의 생이 다하기까지 지낸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머물던 시기이다. 그의 말년에서 볼 수 있는 소용돌이처럼 굽이치는 붓 터치가 유난히 강조되었으며 마지막 유작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그의 죽음을 예견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동생인 테오의 아들 반고흐의 탄생을 기뻐하며 그린 ‘꽃이 피는 아몬드’는 강인한 생명력을 담아내었으며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희망찬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시장을 걸어 나오며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 빈센트, 호젓한 그의 별밤을 걸으며 그가 바라본 밤하늘이 더 없이 푸르고 빛나 눈이 부셨다. 잠시 눈을 감고 이젤 앞에 선 그를 그려보았다.

수척한 얼굴과 빛나는 눈매, 그가 느꼈을 갈증을 내가 느꼈다. 별 한 점 팽창하여 가슴에 가득 메울 때 그의 공복도 함께 느껴지곤 했으리라. 그 시절 보릿고개의 아린 기억처럼 그의 현실도 척박하여 허둥대기만 하였을 것이다.

밤의 카페는 프랑스 와인으로 흥청거리고 넘쳐나지만 그 흔한 와인 한 잔이 그의 목젖을 애태웠을 것이다. 그의 별밤은 더 이상 별이 지지 않고 아침은 다시 찾아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별밤에 초대된 내 발걸음이 머뭇거려졌다.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물감을 뿌려 대었지만 잠시의 위안이었을 뿐 까마귀 떼만 그의 어두운 뇌리를 어지럽히며 날아들었다. 

더 이상 그의 하늘에 별이 뜨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이미 우리의 영혼을 환히 밝혔으며 불멸의 화가로 우리 가슴에 남아 반짝이고 있다.

어쩌면 그의 별이 빛나는 밤이 없었다면 그의 별밤으로 초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밤은 종종 낮보다 살아 있고 더 풍부한 색채를 지녔다. 정상적인 것은 마치 포장된 도로 같아서 그 위로 걷는 것은 좋을 수 있겠지만 그 곳에는 꽃이 자랄 수 없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일반인이 볼 수 없던 빛과 형태를 그는 보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뿌리 채 흔들리는 자신의 혼을 담아내었다.

그는 “모험 할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무엇이 인생이란 말인가?” 라고 했다. 

자신의 색깔도 꿈도 갖지 못한 채 편하고 잘 다듬어진 길만 걸으려고 하는 우리에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잇단 폭염에도 고행의 깨달음 있었는지 보랏빛 고봉밥으로 피워내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수국처럼 혼 불로 그려낸 그의 그림이 내안의 갈증을 달래주는 하루였다.

 ‘반고흐’, 그는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었고 그는 그의 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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