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나를 리셋하는 시간
[칼럼]나를 리셋하는 시간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7.11.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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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가을색이 흩날려 지워질 즈음 내 마음 어느덧 일엽편주처럼 둥둥 떠밀려가 붙잡을 수 없다.

이럴 때면 출렁이는 겨울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앉아 떠나보낸 시간들과 조우하며 자연이 그러하듯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왕왕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우루루 밀려오는 파도에 시선이 머물면 나도 모르게 저 깊이로 빠져들고 팽팽한 수평선 위로 걸어가기도 한다.

파도가 파도를 넘고 바다가 바다를 삼키는 풍경 너머로 기억을 더듬다 보면 오선지를 적시지 않고도 부르는 바다의 노래에 젖고 만다. 태풍이 이 바다를 휘몰아 시작되듯 끝도 시작도 없는 파도의 노래로 우리의 생 또한 파도처럼 피어나고 파도처럼 사라진다.

따끈한 카푸치노 하트가 찻잔 속에서 사라질 쯤 수평선을 지우며 떠나간 배들이 그 무늬를 타고 돌아오고 있다. 내 추억도 바다 무늬를 지우며 줄줄이 돌아오고 있다.

배들을 영접하는 등대, 영겁을 두들겨도 끝나지 않을 파도의 노래에 귀 쫑긋 세우고 세찬 바람에도 홀로 선 등대는 누구를 지키며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 등대 너머로 거칠게 걸어온 내 한 점 둥둥 어디쯤 떠내려 왔을까?

목적지 분명치 않은 내 항로가 늘 위태로웠듯 거친 바다 또한 평온을 되찾으려 파도를 잠재우고 밀물과 썰물로 제 중심을 잡으려 몸부림치는 모습이 오늘따라 경이롭게 여겨진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잎을 떠나보낸 나뭇가지의 사연도 이에 못지않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감도 때가 되면 모두 내려놓는다. 이듬해 더 눈부시게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자연의 섭리를 어기면 나무든 사람이든 불행하게 된다.

나무는 순리를 철저히 지켜 자신의 나이테를 늘여 왔지만 인간은 때때로 내려놓아야 할 때를 놓치고 만다.

자주 보도되는 갑질 논란만 하더라도 그렇다. 갑은 자신만이 존중 받아야 할 대상이고 을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귀해 어떤 특권층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겸손해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인격이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化無十日紅)이라 하지 않았던가?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언제나 공평하고 높은 파도는 제 스스로 더 깊게 내려 보내려고 애쓰고 있다.

내게도 바람 잘 날 없던 세월, 저 등대 같은 희망의 빛을 잡으려고 여기까지 용케 흘러 왔다. 오늘따라 파도 거세고 바람이 차면 갈매기처럼 날고 싶은 꿈 하나 있어 삶의 행간에 열린 여백 너머로 가슴을 펴고 긴 호흡을 들이켜 본다.

바다가 내 속에 들어와 짠 맛을 토해 낸다. 한 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맘때면 초겨울바다는 몇 장의 여벽을 마련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듯하다.

남은 시간 잘 마무리하기 위해 타다 남은 후회의 불씨는 없는지 잠시 몸과 마음을 돌이켜 보게 하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자신을 정화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때마다 파도에 부서지는 햇살은 악보를 넘기며 은파를 연주해 주곤 한다.

바라보는 이의 상처와 회한을 다 어루만져주고도 출렁이는 바다는 제 스스로 넘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넘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병이 있는 것 같다.

과욕이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욕이란 그릇에 채우는 물과 같아서 그릇이 작으면 넘칠 수밖에 없고 넘치면 다시 담을 수 없다. 자신의 그릇을 더 크고 넓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릇을 키운다는 것은 지혜롭게 살아간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한 지혜는 아픔의 성장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어지는 소중한 열매이기 때문에 함부로 탐 낼 수도 없다.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의 넓이를 키우는 것도 저 바다같이 수없는 상처 속에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는 행복도 높낮이를 조율하면서  잘 가꾸어왔다는 것을 출렁이는 저 바다는 이미 느끼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내 시야에 들어온 바다. 저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압력을 견디며 지탱하고 어두운 그늘의 물고기까지 빠짐없이 부양하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낮은 곳 까지 헤아리는 삶을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수없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겹겹이 포개어져 오는 하얀 파도는 따뜻한 포옹으로 스스럼없이 온 몸을 휘감으며 내 가슴 한 켠에 아득히 저며 든다. 내 삶의 무늬를 읽어내며 절망에서도 희망을 마름질해 결코 낙담하지 않을 용기를 북돋아 준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오는 길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남아 있는 날들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 본다. 파도가 그리는 악보는 내 등 뒤에서 오래 더 크게 들려주는 응원가임에 틀림없다.

겨울은 빛이 약해져 추운 것이 아니라 빛을 받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초겨울 줄어든 빛의 시간과 움츠려드는 마음만큼 따뜻한 사랑의 온도로 덧대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자기 나름의 리셋으로 마음 한구석에 여유를 가져보는 시간도 삶의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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