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 해의 끝자락에서
[칼럼]한 해의 끝자락에서
  • 이두남
  • 승인 2017.12.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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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이른 아침 문틈 사이로 노란 엽서 한통이 배달되었다.

숨 가쁘게 지나온 날도, 그리 화려하지 못했던 날들의 이야기도 함께 동봉되었다.

때늦은 바람에 배달된 엽서는 길 잃은 은행잎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년 시절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 겨울이 다 가도록 펼쳐보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마지막 남은 은행잎이 발밑에 바스락 거릴 때 쯤, 먼 산의 나무들은 그 화려했던 봄, 여름, 가을을 지나 용기백배하여 맨 몸으로 겨울을 맞선다. 무성한 잎들을 무장해제 시킨 산은 낮게 내려앉아 감추었던 등고선이 민낯을 보이며 해납백천 (海納百川)하는 바다같이 모든 것을 품어 주는 듯하다.

그 가운데 선 소나무는 겨울 산을 지키는 병정처럼 변하지 않고 푸름을 더한다.

된 서리를 맞은 국화꽃은 상처받은 아이처럼 바짝 움츠려 있다. 그렇지만 그들도 뿌리 깊숙이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꽃피는 봄을 참고 목 타는 여름을 지나 청명한 가을이 오면 자신의 꿈을 유감없이 피워낼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향기로운 순간을 맞이할 것이며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달랑 한 장 남은 달력만큼이나 휑한 마음과 년 초의 목표 개념이 잊혀져가는 것은 왜일까? 

벽속으로 파고들듯 새까만 날짜들 밑에 빼곡하게 적혀있던 계획들도 딱정벌레 기어나가듯 빠져나가고 어느새 송년모임 계획들만 공백을 촘촘히 메우고 있다.

남겨 놓은 이야기도, 작은 미련마저도 떨쳐내야 하는 시간, ‘유종의 미’란 말이 무색하게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 만큼이나 뎅그렁하다. 

올해 달력을 되짚어 보니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바뀔 것 같지 않던 국가 대사도 두 번이나 날짜가 변경 되는 일이 생겼다.

하나는 11월16일에 동그라미를 쳐 놓았던 수능시험일자이고 또 하나는 12월20일에 표시 되었던 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나라의 대사가 바뀌는 일을 겪으며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매일 바쁘게 살아왔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은 크게 변한 것 없이 아직 그대로 인듯하여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본다.

옛말에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실천하기가 어렵고, 실천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끝내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일 년 살이는 년 초 계획도 중요하지만 잘 마무리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다. 머릿속에 빼곡하게 그려보던 계획들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지나온 날들이 하나 둘 어느 계절쯤에서 놓쳐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은 순조롭게만 이어가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일에 너무 구속되거나, 수동적이거나, 매너리즘에 빠져버리는 것은 좋은 흐름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용두사미처럼 추진력을 잃고 흐지부지 되고 만다.

삶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더 중요하다. 매사에 선택과 집중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행한다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충실감을 느끼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나쁜 습성 하나쯤 떨치려고 수 없이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도 떼어내지 못하고 또 한해 끝까지 따라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기도 하지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포기라고 한다면 중도 포기보다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 확률이 높아 질것이다. 

나 자신은 최선을 다 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일을 망치기도 하고, 반드시 될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생각지 못한 이유로 허사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역경에 처했을 때 희망마저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멧돼지가 눈부신 금산을 시샘하여 산을 들이받고 몸을 문지르지만 오히려 금산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설화가 있듯 현명한 사람은 어려움을 만날수록, 한계를 느낄수록 도전하여 자신의 성장과 성공의 양식으로 만들어 스스로 빛나게 한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성공 뒤에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 끝까지 도전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열매를 달기 위해 아름답던 꽃을 버리는 나무처럼, 벽에 달린 달력도 우리에게 떨치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남은 한 장을 건건히 버티고 있는 듯하다.

한 해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음에 쌓인 고단함을 내려놓고 올해 못다 이룬 꿈은 새해의 희망으로 남겨놓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이른 아침 배달된 엽서는 해 넘긴 달력을 거두고 갈 것이다. 때를 묻히고 지나온 달력을 떼어 낸 자리는 맨살처럼 환하게 시작될 것이다. 

힘들거나 아팠던 시간마저 약이 되어 나 자신을 성숙시키는 귀한 시간으로 되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덧 훨씬 짧아진 낮의 길이가 지친 도시인들의 귀가를 서두르게 한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고 토닥토닥 격려하며 응원하고 싶다. 절망과 희망을 넘나들며 숨 가쁘게 지나 온 시간들을 뒤로 한 채 또 한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운다.

새해에 만나는 날들은 조금 더 밝고 희망찬 불씨를 지피겠다는 염원으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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