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미완성곡
[칼럼]미완성곡
  • 이두남
  • 승인 2018.02.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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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  노을 지는 시린 하늘가에 일렁이는 실루엣이 눈부시다. 어스름히 먼 산을 배경으로 감전된 듯 까맣게 그을린 건반들, 재잘재잘 허공의 음절을 베껴 쓰고 있다.  

태화강변을 엮는 전봇대 행간에 합창을 하고 있는 까마귀떼의 음표는 국민 학교 여선생님 손가락 끝에서 튕겨지는 풍금소리를 닮았다. 이윽고 넓은 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군무는 베토벤의 운명처럼 장엄하고 웅장하다.

해마다 잊지 않고 날아 든 태화강 대 숲은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겨울 하늘을 두드린다. 추운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이곳에 보금자리를 트는 이유는 첫째, 시베리아보다 기온이 따뜻하고 둘째, 울산면적 70%가 논이라 먹이가 많으며 셋째, 10만 마리 이상의 그들이 잠을 잘 수 있는 보금자리 대나무 숲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의식주 해결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마음의 길을 따라 먼 곳으로부터 날아와 저녁 하늘에 음표를 그리는 그들은 하루 일과에 지친 우리들에게 한 폭의 묵화 같은 휴식을 선물해 준다. 겨울에 만나는 이들의 자유로운 향연은 자연의 섭리가 주는 또 하나의 이벤트이다.

엣 시인은 하늘의 섭리는 그저 맞닥뜨릴뿐 그 변화는 어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섭리에서 벗어나거나 인위적인 행동을 하려다 화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온갖 권력을 대를 거듭하여 다 쥔다 해도 세상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역사는 명명백백하게 밝혀낸다.

그리스 에피루스왕 피로스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로마까지 차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장군인 씨네아스는 피로스왕이 로마와의 전쟁을 못하도록 설득하면서 왕에게 물었다.

“각하, 로마를 정복하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를 정복해야지.” “카르타고를 정복하고 그렇게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나서는 또 무엇을 하실 건지요?” 하고 왕에게 물었다.

“그때는 앉아서 즐기는 거지” 라고 왕이 말이 끝내자 “각하, 그걸 지금 하는 것은 어떨까요? 각하에겐 지금도 왕국이 있지 않습니까? 왕국을 가지고도 만족하실 줄 모른다면 온 세상을 가지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물질만능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피로스 왕과 같이 끊임없는 욕심 속에 인생을 살아간다면 사람됨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욕심은 우리로 하여금 원망과 불평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어 결국은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이 조금은 부족한 미완성일지라도 쓸모없는 무게를 내려놓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저녁하늘을 두드리던 미완성 한 소절이 아득해지고 저문 하늘을 서로 공유하고 추운 밤을 녹일 수 있는 그들의 비행이 끝나는 시간이다. 이윽고 까마귀 떼들의 합창이 대 숲 마디 마디 마침표를 찍는다.
음표를 그릴 수 있을 만큼의 자유로운 하늘을 소유하고 댓잎 서걱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동이 틀 때 까지 대숲은 고요히 그들을 품고 하루의 고단함을 보듬어 줄 것이다.

비록 겨울이 지나면 끝이 나는 까마귀 떼의 노래 소리는 미완성이어도 가슴 한 켠 아름다움으로 남아 이 밤을 더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인생도 미완성일 때 제 스스로 꿈을 이어가는 연습을 하게 되고 닫힌 미로를 복원하는 힘을 얻어 출발점에 다시 서게 한다.

우리의 삶 또한 돈, 명예, 권력에 눈멀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에게 눈멀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나눈다면 하늘의 오선지에 그리는 그들의 합창처럼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세계인의 가슴에 평화의 불씨를 지피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고요한 긴장감이 감돌았다면 그 자리에 겨울 하늘 오선지에 그리는 까마귀 떼의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화합과 평화의 축제가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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