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느낌표가 있는 하루
[칼럼]느낌표가 있는 하루
  • 이두남
  • 승인 2018.04.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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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 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신록이 눈부시게 하늘거리고 어느덧 봄의 반환점을 돌아 온 햇살은 꽃을 놓아 버린 봄의 그늘을 쓰다듬는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청 보리밭 이랑을 지나 이 곳 도심을 통과하면서 온통 미세먼지로  보통, 나쁨이란 희뿌연 한 문장을 쓱 긋고 지나간다. 해묵은 상념들이 때 없이 피었다 지고  숨을 고르던 산들도 어느새 연록의 잎들로 층층이 다보탑을 쌓아가고 있다.

한 겨울동안 한적했던 공원 모퉁이에는 등꽃처럼 환한 모습으로 고도리를 잡고 있는 노인들, 어디서 흘러왔는지 도시의 사막으로 밀려든 그들은 한결같이 해묵은 등나무다.

한 때 온 몸으로 지켜왔을 이 땅,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이 그리워서일까? 마주 앉은 주름살 너머로 돋보기, 중절모, 누런 틀니가 따라서 들썩인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 본적 없고 고달팠던 인생살이로 이제는 늙어 땅 바닥 치고 싶은 일 많아서, 세월을 붙잡고 싶은 마음 간절해서 돗자리 위에 탁탁 새를 불러 모은다.

허리띠 졸라매고 부지런히 살아왔지만 가진 것은 없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세월은 어느덧 이마에도 굵은 길을 내었다. 공원 모퉁이 가득한 햇살이 동전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동안 동전을 잃은 이도, 얻은 이도 시린 가슴은 하나 같이 닮았다.

봄을 기다린 등나무만큼 봄볕은 그들의 표정을 까맣게 색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년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일부이지만 파지 줍는 노인 인구가 17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도시의 빈곤층을 중심으로 생겨난 신 넝마주의라 일컫는 그들은 65세가 넘으면 월 20만원 가량의 기초연금을 받지만 월세를 내고 나면 생계가 막막해 버거운 손수레를 끌고 어두운 골목길을 나선다. 골목길을 더듬는 걸음걸이도 꺾이는지 굽은 등이 속도를 무겁게 잡아당긴다.

어슴푸레 새벽을 누구보다 먼저 열고 냉정한 거리에서 파지를 수거하며 쓰다 버린 활자들과 외로운 입담을 대신하는 그들의 월 평균 수입은 약 15만원 정도이다.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좁은 공간이 그들의 보금자리이며 아침은 굶고, 점심은 무료급식소, 저녁은 라면이나 김밥 한 줄로 겨우 허기진 배를 채우며 사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그나마 생계를 도와주던 파지도 종이가격 하락으로 인해 삶은 더 팍팍해져 살아가는 그 자체가 힘들다고 호소한다. 하루하루의 고된 삶에 몸마저 돌볼 틈 없어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의료비까지 가중되어 그들의 삶의 질은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경제고, 건강문제, 소외, 무위 등 이른바 ‘노년의 4고’중 가장 힘든 것이 경제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연신 거친 호흡을 내쉬는 그들의 표정에서 노년의 고단함을 느끼지만 언젠가 다가올 우리의 앞날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한편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실로 놀랄 만큼 고도성장 했다. 그 반면 노인 빈곤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노인 자살률 또한 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세 배가 넘는다고 하니

우리 부모의 세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한 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 진출해 외화벌이를 한 그들이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노인들도 소일꺼리가 있어야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 진다. 과거에 비해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은 65세 노인연령이라고 하지만 얼마든지 경제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나이다.

정부도 노인 일자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일부 제한적이며 1년 단기, 혹은 거리를 다니며 휴지 줍기 등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삶의 질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부족한 청년 일자리와 중복되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자리가 있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웃 일본과는 정 반대다. 청년실업과 저 출산 육아 대책을 위해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어도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 인재들이 일본이나 유럽등지로 대거 유출되는 것도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파릇파릇 다보탑을 쌓아가는 새싹들,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순서를 정해 피어나고 지는 봄꽃들만이 봄의 수식어는 아니다. 요즘 이 봄날은 미세먼지와 황사 등 부작용의 대명사로 덧칠하는 숨은 이면이 있다. 공원 한 모퉁이에서 새 잡기를 하는 노인들, 힘들게 손수레를 끄는 그들에게도 눈길을 돌려 구석진 이면까지 환한 봄날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도 잘 견뎌내었다고 한숨으로 가득 찼던 고단한 하루의 마침표가 조금은 여유롭고 행복한 봄날처럼 느낌표가 있는 하루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빅토르 위고는 미래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약한 자들에게는 가질 수 없는 것이고 소심한 자들에게는 낯선 것이며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눈길이 소외된 곳까지 닿아 남북 평화의 분위기처럼 평화통일의 설렘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연둣빛 봄날로 스케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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