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청개화성(聽開花聲)
[칼럼]청개화성(聽開花聲)
  • 이두남
  • 승인 2018.08.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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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절기는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다. 처서가 지나자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폭염과 열대야도 서서히 물러나고 조석으로 찬 기운이 감돌며 새벽이슬은 더욱 영롱해진다.

그간 무더위에 지친 마음을 잘 가다듬어 다시 시작할 시점이다. 

옛 성현들은 이른 새벽 햇살이 비치기 전, 꽃이슬을 마음에 떨어뜨리는 듯한 그 청량감, 즉 청계화성(聽開花聲을 소중하게 여겼다. 지금은 이 그윽하고 절절한 풍류가 사라지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향을 가진 네 가지 꽃이 있다.

그중 첫째가 이른 봄 칼칼한 바람에 실려 달빛아래서 맡는 매화의 암향이며, 둘째는 따사로운 봄날 싱그러운 보랏빛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라일락향이며 셋째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자아내는 연꽃향이고 마지막으로 가을에 피어난 작은 꽃잎들이 모여 그 향기를 만리까지 퍼뜨리는 만리향이다.

복더위에는 연꽃 향을 맡아야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는 연꽃은 강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으로 마음을 다스리기까지 한다.
옛 성현들은 자연과 더불어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맑게 했다. 

연꽃은 고상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아름다우면서도 고결한 풍모를 지니고 있어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연상하게 한다. 또한 진흙 속에 몸을 담고 있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의 청정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본시 청정하여 비록 나쁜 환경 속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 자성(自性)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그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어느 날 영산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연꽃을 꺾어 보인다. 아무도 그 뜻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오직 가섭만이 부처님이 든 꽃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한다. 

물이 연잎에 붙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이 탐욕에 물들어서는 아니 됨을 비유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런 연꽃의 깊이를 스쳐 지나고 만다. 탁해질 대로 오염된 현대인의 양심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람은 마음이나 의지로 삶의 길을 엮어 나간다. 마음은 일상생활과 연결되어 생활이 편하고 안정적이면 마음도 이에 비례한다. 원효의 일체유심조 사상도 그렇거니와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

사람의 마음은 지성보다 지혜롭고 충격을 가하지 않아도 쉽게 감동 받는다, 마음은 순수할수록 무게가 더 나간다. 그러나 화려한 것을 보면 눈을 멀게 하고 달콤한 소리를 들으면 귀를 멀게 하여 순수함을 잃어가는 이유가 된다.

물질이 넉넉하지 않았던 옛 성현들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고 더 풍성한 삶으로 채웠다. 또한 새벽 동이 트고 햇살이 비치기 전 연꽃이 몸을 여는 그 청량한 소리와 향기를 마시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얽매이지 않는 여유를 즐겼다. 비록 물질이 가져다주는 넉넉함은 없지만 풍요로운 마음은 곧 성찰의 기회였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계절에 따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에 담을 때 비로소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나라를 나라답게 굳건히 채우는 조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공자는 논어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인구가 많아야 하고, 둘째는 경제가 발전해야 하며 셋째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인구는 나라의 근간이다. 적정수준이 유지되지 않으면 발전의 동력을 잃게 된다. 인구문제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적색신호다. 비혼주의자가 늘고 저 출산 고령화로 인구절벽의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은 인구가 늘어나면 따라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웃나라 일본은 산업의 발달과 함께 1억이 넘는 인구로 내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제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는 실정이다. 반면 내수가 부족한 우리나라는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강대국들의 힘의 원리에 순응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대와 희망을 가득 안은 채 새로운 정부를 응원하며 출발했던 민심은 엄혹한 현실 앞에 점차 실망감으로 돌아서고 있다. 계층 간 소득격차는 사상 최대수준으로 벌어지고 일자리는 늘지 않고 실업률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치솟고 있다.

최저임금의 부작용으로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의 폐업이 가속화되고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나 서민들의 아우성은 커져만 가고 국민들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 경제정책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이럴 때 일수록 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상 시기에는 그만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용기와 지혜로운 리더쉽이 절실히 요구된다. 

국난을 올바른 방향으로 헤쳐 나가려면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 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 역사학자 E.H.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옛 성현들에게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배우고 끊임없이 애민정신을 발휘한다면 위기는 곧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느새 가을이 비집고 들어와 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역사 속에서 위기를 극복한 훌륭한 사례를 본받으며 슬기롭게 헤쳐 나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가올 가을의 향기를 기대하며 은은한 연꽃 향과 꽃과 씨앗이 동시에 맺혀 오늘 하루의 말과 행동이 인과가 되어 내일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연꽃의 지혜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발자국 옮겨 놓을수록 아침이슬이 영롱해지는 가을로 성큼 들어선다. 이 가을, 나라도 우리의 삶도 더 향기롭고 풍요롭게 빛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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