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닦음의 기술
[칼럼]닦음의 기술
  • 이두남
  • 승인 2018.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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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칼럼니스트)

[울산시민신문] 말끔하게 닦은 거울처럼 눈이 시리도록 맑은 가을하늘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 파란 하늘을
그으며 뱅뱅 돌고 있다.

가을걷이 마친 농부들이 흙 묻은 연장을 개울물로 말끔히 씻으며 '연장이 빛나야 마음이 빛난다.' 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 가을 되새겨 본다.

닦는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역할마다 다르게 느껴지지만 장애인 복지관에서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어느 분의 말이 가슴 한 켠 찡하게 남아 있다. 복도에 걸레질을 하는 동안 네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불편한 장애인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보람이 생기고, 둘째는 바닥의 걸레질을 통해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닦아낸다는 것이다. 

셋째는 걸레질을 하다보면 팔과 다리의 근력이 강해지고 밥맛이 좋아 더 건강해졌다는 것이고 넷째는 산길을 1시간씩 걸어 등산하는 기분으로 출퇴근하므로 인생 2모작이 더 즐겁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더러운 바닥을 닦는 직업도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닦는다는 것은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도 빛을 내어 환하게 해주는 것 같다

 닦음에 대한 좋은 글이 있다. 어느 날 중국인 예술가와 희랍인 예술가가 누가 더 훌륭한 예술을 하는지에 관하여 말다툼을 하였다.

보다 못한 왕은 "이 문제를 논쟁으로 해결해 보자."라고 제안을 했다. 중국인이 먼저 자기 나라의 예술성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자 희랍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중국인이 제안하기를 둘에게 각자 방을 하나씩 내주고 그 방을 누가 더 예술적으로 꾸미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이에 희랍인도 동의하여 두 방을 마주보게 하고 가운데를 휘장으로 막았다.

중국인은 왕에게 백가지 물감과 붓을 청하여 아침마다 와서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희랍인은 물감에 손도 대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것으로 일하지 않는다면서 벽을 닦아 광을 내기 시작했다.

날마다 닦고 또 닦아 마침내 하늘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만들었다. 오색에서 무색으로 가는 길이 거기 있었다. 그 길은 가지각색으로 바뀌는 구름과 날씨가 해와 달의 순진에서 오는 것임을 희랍인은 알고 있었다.

중국인은 먼저 작업을 마치고 자기의 작품에 도취되어 무척 행복해 했다. 아름다운 예술의 완성에 취해 북을 울리기까지 하였다. 왕은 중국인의 작품을 보고 현란한 색깔과 세밀함에 감탄을 금지 못하였다. 그러자 희랍인이 휘장을 걷었다.

중국인이 그려 놓은 온갖 형상이 그대로 희랍인이 반짝 반짝 닦아놓은 벽에 비치고 빛에 따라 몸을 바꾸면 더욱 아름답게 살아났다. 왕은 희랍인의 예술이 수피의 길이라며 눈이 휘동거래지고 그의 예술성을 더 높이 평가했다.

희랍인은 자기 삶을 깨끗하게 더욱 깨끗하게 닦을 뿐 바라는 것도 없고 성도 내지 않으며 별과 허공에서 오는 모든 형상들을 되비치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 '중국예술과 희랍예술'을 알기 쉽게 해석해 보았다. 이 시에는 삶의 깊이를 사유하고 있으며 어떤 울림이 가슴 깊이 차오른다.

한 사람은 내면의 세계를 화려한 오색 빛으로 그려 넣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그와 반대로 닦고 또 닦아 텅 비우고 무색의 내면으로 만들었다. 마치 다른 이의 화려함을 더 찬란하게 조명해 주어 투명해지는 것이 더욱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 상이한 욕망을 지닌 개인들이 모여 사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닦으며 살고 있을까?

바쁘고 복잡한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스스로를 닦아 맑아지는 것보다 타인이 내 색깔에 맞추어 주기를 바란다.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나를 만드는 일이 가을하늘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무색투명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시나브로 또 다른 계절을 데려다 놓고 새롭게 시작하라 한다. 온갖 색깔의 욕심으로 덧칠한 세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을이 파란 하늘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지치고 어두워진 마음에 파란 하늘 몇 장 덧대어 더 맑고 깨끗하게 비움으로써 빛을 내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나의 내적세계를 반짝 반짝 닦으며 순수한 마음을 지닐 때 무심한 듯 피어난 파초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아름답게 광휘를 발 할 것이다.

힘들게 찾아온 가을, 낮에는 햇살을 쓸어 모으고 밤에는 달빛을 쓸어 모아 퇴색하려 하는 마음에 위안을 주고 가을 하늘 만큼 투명한 세상이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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