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을 우체국 앞에서
[칼럼]가을 우체국 앞에서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8.10.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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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 바람의 일이었을까? 고추잠자리 한 마리 동네 한 바퀴 빙빙 돌다 다시 나뭇가지 끝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하루 종일 관성의 법칙처럼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며 다시 그 자리에 머무는 모습이 마치 산골 마을의 우편배달부가 매일 같은 시간 쯤 마을을 맴돌며 종종걸음 치는 것과 흡사하다.

한 계절이 바뀌고 또 한 해가 시작되어 쌓인 눈으로 발이 푹푹 빠져도 배달부는 쉴 새 없이 드나든다. 이 가을에는 그리움도 함께 물들어 가는지 일감이 많아져 온종일 노란 엽서 통을 메고 바쁘게 다닌다. 윙윙 엔진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안부를 물으며 엽서를 내려두거나 받아간다.

이른 아침 동네 어귀 정자나무 꼭대기에서 울어대던 까치소리에 좋은 소식을 기다리던 어르신을 위해 그의 눈이 되어 대신 읽어 주며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취인 부재에 배달부의 얼굴은 노란 국화처럼 탈색되는 일도 있다. 신과 함께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햇살 잘 드는 양지에 앉아 배달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주름살 펴고 맞이해 주시던 어르신이 홀연히 떠나가신 것이다.

텅 빈 산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가슴 시린 배달부 뒷모습도 갈바람처럼 싸늘하게 들썩거린다.

아주 멀리서 왔을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배달부의 모습을 다시 상상한다. 잰걸음에 달려왔는지 단풍잎처럼 홍조 띤 얼굴이 찬바람에 더욱 붉다. 한마음처럼 즐거워하고 지친 기색 없이 신이 난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풍경이지만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학창시절 하굣길에 외우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미처 부치지 못한 노란 엽서들도 가을바람이 실어다 주는 아련한 기억이다.

정겨운 기억들을 반추해 보며 산기슭에 접어들면 도토리와 알밤이 지천에 늘려 다람쥐의 먹을거리로 풍족한 가을이 시나브로 다가왔음을 알린다. 봄은 가까이에서 먼저 오지만 가을은 먼 곳에서부터 서서히 물들어 간다. 오랜 동면을 대비해 비축하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넉넉한 계절이다.

귀엽고 날씬한 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다. 어느 날 산 가까운 농가에서 종자를 하려고 매달아 놓은 옥수수를 발견하였다. 빛깔이 고운 옥수수는 적당히 잘 말라서 제법 맛있어 보였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만 옥수수를 먹기 시작했다. 늘 먹던 밤이나 도토리 보다 훨씬 맛이 있었고 특식이었다.

다른 다람쥐들이 찾아오면 빼앗길까봐 쉬지 않고 혼자서 실컷 먹었다. 여러 날을 그렇게 먹다 급기야 전부 다 먹어 버렸다. 다람쥐는 처음의 날씬한 몸은 온데 간 데 없고 통통하게 살이 찐 채 산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농부가 길을 가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농부는 혼잣말로 '살이 너무 많이 쪘구나.'하고 다람쥐를 묻어 주었다. 바로 옥수수를 모두 먹어 버려 몸이 비대해진 그 다람쥐였다.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넘다가 몸을 지탱하지 못해 높은 가지에서 그만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 우리 인생도 욕심을 과하게 부리면 결국 부족한 것 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만큼의 양만 취하고 남으면 서로 나누는 마음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욕심을 절제하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자연처럼 아름답고 밝아질 것이다.

가을 산길, 발 앞에 툭 떨어지는 도토리를 밟으며 시처럼 아름다운 가을풍경에 취하고 만다. 사계절 다양한 결실과 정취를 뿜어내며 우리 인간에게 평온을 주는 자연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살이 너무 쪄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다람쥐 보다 이 산의 다람쥐처럼 한 겨울 버텨 낼 만큼만 취하는 겸손한 지혜를 배우고 싶다.

요즘처럼 남북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쯤 가깝고도 먼 DMZ를 그려본다. 철조망과 지뢰가 묻힌 그 너머 새들만 날아들며 소식을 전하던 그 곳에도 이제는 지뢰를 제거하고 달리고 싶은 철마의 꿈을 지켜주려 한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빨간 가방을 멘 우편배달부가 단풍잎처럼 고운 소식을 들고 가깝고도 먼 그 곳을 자유롭게 넘나들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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