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기 암시
[칼럼] 자기 암시
  • 이두남
  • 승인 2018.12.2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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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 나뭇잎 떨쳐버린 가지 끝엔 찬바람이 내려 앉아 호오 소리를 내곤 사라진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도 끝자락에 와 있다는 신호인 듯,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베풀라고 전하려는 것처럼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말들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의 몸에는 여섯 개의 소용되는 부분이 있다. 그중에 셋은 자신이 지배할 수 없지만 셋은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자는 눈과 귀와 코이고 후자는 입과 손과 발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는 없다. 맡고 싶은 냄새만 선택해서 맡을 수도 없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뀐다.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뀐다.

바꾸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는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인격이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이다.

그래서 사람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두꺼웠던 달력을 다 떼어내고 남은 한 장의 달력에도 몇 개 안되는 숫자가 덩그러니 남았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해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부족했음을 새삼 느낀다.    

올 한 해 얼마만큼 성장하고 또 익어갔는지 마지막 남은 저 달력이 반추하는 듯하다. 늘 그랬듯이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다. 떼어 낸 달력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후회와 반성, 칭찬과 격려, 그리고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왔는지도 투영되어 있다.

서로 다른 사고로 살아온 두 동네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래전부터 두 동네가 이웃해서 살고 있었는데 한 동네는 덕담, 감사의 말을 주로 사용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아 행복동네로 불렸고 옆 동네는 불평, 불만, 다툼이 꾾이지 않아 불평동네라고 이름을 붙였다. 불평동네 사람들은 1년 내내 쉬지 않고 불평, 불만만 털어 놓았다.

춘궁기인 봄에는 배고파 죽겠다며 불평했고 여름에는 모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불평했다. 가을에는 손이 모자라 추수하기도 힘들다며 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치우는 것이 힘들다며 투덜댔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면 빚더미 속에서 태어난 애물단지라고 저주하는 것은 보통이고 좋은 일이 생겨도 혹시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 언제나 불평 속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동네 사람들은 같은 상황인데도 어떠한 일에도 감사했다. 고생을 하면서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며 감사하고 시련을 만나도 자기들을 강하게 만들려는 신의 배려라고 감사했다.

봄에는 꽃향기를 맡으며 행복해 했고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을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황금들판을 찬양했고 겨울에는 나뭇가지에 하얗게 쌓인 눈꽃을 보며 시심을 불태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복덩어리가 넝쿨째 굴러왔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화 하면 저절로 감사의 눈을 갖게 되어 언제나 감사가 샘솟듯 터져 나온다.

하루는 불평동네 사람이 행복 동네에 갔다가 말끝마다 '감사'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불평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며 이해가 안됐지만 그래도 감사라는 말을 배우고 저녁 때 집으로 돌아와 집안 식구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재수가 되게 없는 날이야. 행복동네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괜히 감사만 실컷 하고 왔네. 그런데 행복한 기분이 들어. 참 이상하지."

불행한 사람 눈에는 99% 행복은 보이지 않고 1% 불행 요인만 바라본다. 장미꽃이 눈 앞에 있어도 꽃은 보지 못하고 가시만 보인다. 장미 가시 때문에 꽃 피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장미꽃보다 가시가 먼저 보이는 삶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또한 잘못된 말 버릇이 평생 불운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불평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불평의 조건이 되어 입을 열기만 하면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말씀 언(言)변에 이룰 성(成)이 붙어서 정성 성(誠)이 된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니 말을 건성으로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하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약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에밀쿠에의 자기암시에는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무한 반복하고 무의식에 주입하라고 했다. 그러면 조금씩 점점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앙상하게 버티고 있는 나뭇가지의 생각을 잠시 헤아려 본다.

연둣빛 새봄의 보드라운 싹을 달며 얼마나 행복했을까. 여름날의 말매미와 새들의 휴식처를 
만들고, 알록달록 가을의 옷감으로 춤바람도 났다가 이제 다시 휴식의 겨울을 맞아 아마 새봄의 연둣빛 꿈에 젖어 있으리라.

우리는 인간의 능력 중에 가장 중요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다가올 새로운 한 해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자기암시를 해 보는 것도 특별한 소확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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