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길섶에서 만난 작은 인연
[칼럼]길섶에서 만난 작은 인연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9.01.28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세이>바싹거리는 나뭇잎들이 발밑에서 각자 제 모양의 목청을 높이는 오솔길과 농부의 열망이 이삭처럼 널려있는 무색 들판과 꽁꽁 얼어붙은 강가를 걸으며 사색하는 시간은 나에게 삶의 재해석이다.

문명의 온갖 이기에 길들여져 편리와 속도와 효율이라는 삶의 방식이 몸에 밴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며 겸손함을 배우는 시간이어서 좋다. 또한 강에 거꾸로 선 나무의 풍경을 보며 나를 바로 세우는 자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미세먼지로 뒤덮인 회색빛 도심을 떠나 시려서 더욱 맑은 시냇가를 걸으며 겨울 바람벽에 기대어본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나무들, 야산 숲의 푸서리에서 내 인기척을 듣고 놀란 듯 솟아오르는 텃새들의 비상, 꽁꽁 얼어붙은 냇물 아래로 알몸 수영을 즐기는 피라미들, 이처럼 내가 겨울들판을 찾는 것은 어머니 대지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강한 열망 때문이다

이 고요한 숲속의 이방인이 되어 한참을 걷다 되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작은 텃새들의 지저귐보다는 크고 산속 동물들의 포효보다는 작은 울림이었다.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궁금증이 기어코 두려움을 극복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길섶에 검은 물체가 보였다.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기염소였다. 나처럼 대지의 기운을 느끼며 혼자 산책을 나왔다

길을 잃은 것인지, 매나 독수리에게 납치되어 봉변을 당하고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구원의 손길을 간절하게 바라며 마지막 남은 혼신의 힘까지 다해 나를 향해 외쳤던 것일 게다. 내가 다가가자 그제야 안도했는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온 몸을 파르르 떨었다. 된서리 내린 밤처럼 어둡고 추운 고단함에 지쳤을 아기염소가 가여워 차에 있는 수건을 가져와 감싸 안았다.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던 흔적의 소중함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물이라도 집어들 듯이 조심스럽게 품어 안았다. 그 순간 수건에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까지 당도하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그토록 애타게 울어 대던 울음소리도 뚝 그치고 거친 날숨만 내뱉었다.

아기염소를 데리고 자주 다니는 사찰의 스님께로 갔다. 가는 도중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 드렸더니 스님께서는 이미 밖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스님과 나는 먼저 목욕을 시키고 깨끗이 닦아 온기가 있는 아랫목에 내려 두었다. 다리를 다쳤는지 걸음걸이가 서툴렀다.

다리를 다친 그 녀석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먼저 진료 챠트를 작성해야 했는데 이름을 적는 란이 있어 잠시 고민하다가 그 녀석의 이름을 보리라고 적었다. 이름을 적고 접수를 했지만 이어서 청천벽력 같은 답이 돌아왔다. 개와 고양이만 진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들의 터전에서 느꼈던 소박한 삶의 이력은 온데 간데 없고 인간의 무정함을 들켜버린 것 같아 아기염소에게 미안한 마음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어쩔 수 없이 스님과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와 우유와 우유병을 사기로 했다. 병원 근처의 마트로 가서 우유병을 찾았으나 그것마저 없었다. 스님께서는 오늘은 수저로 떠 먹여 보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나는 스님과 아기염소를 남겨 두고 집으로 왔다. 그 날 새끼염소는 고요한 불경소리와 청아한 풍경소리가 자장가 되어 편안하게 단 꿈을 꾸었을까? 밤새 걱정이 된 나는 출근 전에 스님께 전화를 드렸다.

“스님, 보리는 어떤가요? 밤새 잘 잤나요?” 돌아온 답은 “허허, 스님걱정보다 보리걱정이 더 되시나 봅니다. 밤새 울고 돌아다녀서 한 숨도 못 잤습니다.” 에구 이를 어쩐다. 내가 스님만 괴롭혔구나. 죄송해서 어쩌지. “스님 제가 급한 일을 끝내고 금방 우유병 사서 갈께요.” 라고 말씀드렸다.

사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 식구의 전입소식을 전해들은 분이 우유와 젖병을 사와서 몇 차례 먹였다고 했다. 나도 우유를 한 통 먹이고 자세히 살펴보니 기력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눈동자가 슬퍼보였다.

우리가 보이면 안심하며 울음을 삭였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또 버려질까 두려운지 슬픈 울음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야생의 골짜기로 무자비하게 유린되어 삶의 집착에 까맣게 썩었을 한없는 두려움이 문득 문득 엄습해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리라.

또한 우리가 아무리 측은지심으로 예뻐한다 해도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만 하겠는가? 엄마에게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지배하여 아기염소를 발견한 근처에 농장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려도 근처에 염소를 키우는 곳은 없는 듯 했다.

마침 소를 키우는 축사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 그곳으로 가서 근처에 염소를 키우는 곳이 있는지 물어 보았지만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기염소는 매나 독수리에게 납치당해 이곳으로 유린된 것이 분명했다.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기 직전의 어둑한 저기압 전선처럼 아물 했을 아기염소의 이야기를 듣고 농장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어떤 분이 “제가 염소를 20여 마리 키우고 있는데 데려가서 키워도 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비록 엄마염소는 아니지만 다른 엄마에게 입양되어 그들의 무리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기염소를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로서 나에게 그토록 구원의 외침을 보낸 아기염소와의 만남은 강하지만 짧게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길섶에서 내가 느끼는 어머니의 숨결처럼 그 녀석에게도 엄마의 대지를 안겨주어야 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아기염소와의 교감이 동요되지 않을 정은 아니었는지 보내는 마음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도심에서 잃어가던 정서의 고갈이 아기염소와의 만남으로 조금은 채워졌음에 감사하며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다시는 그 녀석에게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작은 인연에서 마음을 비워갔다. 오욕칠정과 회한 같은 속인에게 어쩔 수 없이 찌들어 갔던 마음의 혼탁을 잠시나마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부디 새엄마를 만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냈다.

겨울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들판과 산과 시냇물은 사람의 마음을 달리 여는 마법을 지닌 것 같다. 산처럼 큰 마음이 사람에게 아낌없이 전이되어 사람을 산이게 만든다. 결코 쓸쓸하지 않는 그 고즈넉함이 고갈되어가던 나의 정서에 와 닿아 아기염소를 만나게 하고 또 보내는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듯하다. 겨울이면 더 맑은 시냇물처럼 혼탁한 세상이 어느 겨울의 첫눈처럼 깨끗하게 정화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